국립중앙박물관,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평안平安' 특별전
원작에 더해진 미디어아트 '볼거리 풍성'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유배 시절 자신을 지지해준 역관제자 이상적(1804~1865)을 생각하며 그린 '세한도'가 프랑스 작가 줄리앙 푸스를 통해 미디어아트로 재탄생했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민병찬)은 2020년 특별전으로 기획한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평안平安전'에서 손창근 선생이 올해 기증한 '세한도'룰 비롯해 '평안감사향연도', 2018년 기증한 '불이선란도'와 '김정희 초상화' 등 15점을 전시하고 '세한도'의 제작 배경과 전래 과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영상 5건을 상영한다. 전시는 오는 24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펼쳐진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프랑스 미디어아트 작가 줄리앙 푸스가 김정희의 '세한도'를 보고 재해석한 작품 '세한의 시간' 2020.11.23 89hklee@newspim.com |
'세한도'는 추운 겨울에도 푸른 절개를 자랑하는 소나무의 변치 않는 마음을 담은 그림으로 19세기 전반 학문과 예술의 중심에 섰던 김정희의 대표작이며 국보 제180호다. '세한'은 설 전후의 혹독한 추위라는 뜻으로 인생의 시련과 고난을 의미한다.
안동 김씨와 세력 다툼에 밀려 1840년 제주에 내려가 유배 생활을 한 추사 김정희는 추운겨울에도 푸르름을 유지하는 소나무처럼 시련 속에서도 자신을 지지해준 제자 이상적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세한도'를 그렸다. 이상적은 김정희를 잊지 않고 그가 원하는 책을 보내주며 위로했다. 생각보다 작은 크기의 원화를 보고 놀랄 수 있지만, 까칠한 종이 위에 진한 먹을 써서 소나무와 측백나무를 거칠게 그리고 그 사이에 집 한채를 둔 '세한도'를 보면 인적 없는 집에 쓸쓸함과 삶의 바닥까지 떨어진 김정희의 인간적인 모습이 진솔하게 드러난다.
무엇보다 원화와 더불어 미디어아트로 재창조된 작품을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전시장이 들어서자 마자 김정희가 겪은 세한의 경험과 감정을 이방인의 눈으로 해석한 7분 영상 '세한의 시간'이 펼쳐져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세한도' [사진=국립중앙박물관] 2020.11.23 89hklee@newspim.com |
영화 제작자 겸 미디어아트 작가인 줄리앙 푸스가 김정희의 고통과 절망, 성찰에 이르는 감정을 녹였다. 실제로 작가는 한밤중에 한라산을 올라 소나무, 야생동물, 어둡고 거친 밤 풍경을 그대로 담아냈다. 극적인 음향과 어우러져 쓸쓸함과 고독함이 사묻히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영상 막바지에는 잔잔한 물결과 제주의 하늘이 띄워지며 위로의 순간을 마주하게 한다.
이어 김정희의 '세한도'와 청나라 문인 16인과 한국인 4인의 감상 글로 이뤄진 두루마리(전체 크기 33.5x1469.5cm) 전모가 14년 만에 공개된다. 20명의 문인들이 적은 '세한도' 감상 글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군자의 곧은 지조를 지키는 행동의 가치를 칭송한 내용이다. 이전 전시 방식과 달리 두루마리 앞쪽의 바깥 비단 장식 부분에 있는 청나라 문인 장목(1805~1849)이 쓴 '완당세한도' 제목을 볼 수 있도록 전시했다.
또한 '세한도'를 초고화질 디지털 스캐너로 스캔해 그림 세부를 자세히 보여주는 영상에서 눈으로 볼 수 없던 김정희의 치밀한 필력도 확인할 수 있다. 건조하고 황량한 '세한'을 그림에 녹여내기 위해 물기 없는 마른 붓에 진한 먹물을 묻혀 사용한 필법은 그가 오랜 시간 갈고닦은 필력에서 나온 결과다. 그리고 김정희와 '세한도'의 의미를 전문가 최완수, 유홍준, 박철상의 인터뷰를 담은 영상이 전시장에 소개된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2020.11.23 89hklee@newspim.com |
김정희의 예술과 학문은 20세기에 서예가 오세창(1864~1981), 김정희 연구가 후지쓰카 지카시(1879~1948) 등에 의해 계승됐다. 후지쓰카가 1940년 일본으로 가져간 '세한도'를 1944년 손재형이 폭격의 위험을 무릅쓰고 무사히 되찾아온 감명 깊은 일화도 이번 전시에서 영상으로 제공한다.
이와 반대로 '평안감사향연도'는 조선시대 관리들이 선망했던 평안감사로 부임한 영예로운 순간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잔치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번 전시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갖고 있는 두 작품을 통해 위로와 감동의 순간을 느낄 수 있다.
'평안감사향연도' 3점을 둘러보기 전 축하연을 방불케 하는 미디어아트가 관람객을 맞는다. 교방 기생들의 춤과 사자춤 등이 현대화된 형태로 다채널 화면에 화려한 수를 놓으며 풍성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야경' 2020.11.23 89hklee@newspim.com |
이어지는 전시공간에는 '평안감사향연도'를 조각으로 나눠 감상할 수 있는 미디어아트가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전시된다. 그림 속 건축물, 인물들, 상황을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삼면이 미디어아트로 제작돼 있어 마치 그림 속으로 들어온듯한 느낌을 준다.
마지막으로 조선의 '야경'을 본뜬듯한 미디어 작품이 관객을 기다린다. 이는 '월야선유도'의 대동강에서 열린 밤의 잔치 장면을 그래픽 미디어아트로 구현한 것으로 어두운 대동강변이 성벽과 강가의 횃불과 강에 띄운 불로 화려한 향연장으로 변하는 과정을 재현한다. 고요 속에서 형형색색의 불빛이 밝히는 야경을 조용히 감상해도 좋다.
원작 '평안감사향연도' 세점을 직점 감상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다양한 미디어아트로 작품 속 이모저모 체험한 관람객들은 원작과 선인들의 시구로 채워진 이곳에서 작품의 깊이와 역사적인 의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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