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조제'가 긴 호흡과 깊은 여운의 로맨스로 올 겨울 극장가를 찾아온다. 몸은 불편하지만 독특한 세계를 지닌 조제의 조금은 특별한 사랑 방식이, 사랑과 이별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영화 '조제'가 베일을 벗었다. 원작소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동명의 일본 영화로 이미 영화팬들 사이엔 유명한 작품이다. 국내 리메이크 버전은 김종관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한지민, 남주혁이 주역으로 출연했다. '조제'는 원작에 비해 조금 더 무게감이 더해진 인물 조제와, 한국적 색깔을 담은 잔잔한 멜로 영화로 완성됐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2020.12.03 jyyang@newspim.com |
◆ 책으로 세상을 보는 조제의 세계…한지민·남주혁의 조용한 교감
대학생 영석(남주혁)은 길에서 전동 휠체어가 고장나 쓰러진 조제(한지민)을 만난다. 그를 집에 데려다주고, 폐지를 줍는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것을 알게 된 후 영석은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추석선물을 가져다주고, 복지관에 부탁해 낡은 집을 고쳐주는 영석을 보며, 조제는 '불편하다'고 말하고 다시 오지 말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영석은 결국 조제를 찾아간다.
한지민의 조제는 원작보다 조금 더 무겁고, 침착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소녀다. 일본 영화 속 조제의 나이가 20대로 영석과 동갑 설정이었지만 리메이크 버전엔 조금 더 연상으로 연령대가 조정됐다. 한지민은 오랜시간 갇힌 공간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든 조제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서툴고 낯설고 두려워하는 인물로 그렸다. 조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직접적으로 와닿지는 않는다. 다만 한지민의 눈빛, 말투, 톤과 분위기를 통해 각자 다른 느낌으로 캐릭터가 전달되는 경험이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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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혁의 영석은 평범하고 심성이 따뜻한 대학생이다. 조제를 돕고 싶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지만, 그게 조제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깊이 생각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조제를 향한 감정에 솔직하게 이끌려 행동하고 결국은 조제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 그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톤의 연기로 관객들이 그를 따라 조제에게 다가갈 수 있게 했다.
◆ 서툴고 투박하지만, 놀라운 조제의 언어…새로운 이별의 정의
영화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잔잔한 톤으로 조제와 영석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그 안에 벌어지는 사건들은 놀랍도록 평범하지만, 영석은 조제의 세계를 탐험하고, 조제의 세계는 영석으로 인해 뒤흔들린다. "쓰레기를 갖다줘서 고맙다" "나는 괜찮은데 왜 불편할 거라고 생각해" 등의 조제의 대사는 영석의 입장에서, 배려랍시고 하던 일상적인 착각들을 들춰낸다. 몸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의 눈으로 보는 세상과, 조제의 세상은 완전히 그 관점이 다르다는 걸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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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는 영석을 향한 감정을 두려워하고 피하려 하지만, 결국은 받아들인다. 그리고 영석을 통해 호랑이 같은 두려움을 마주하고 극복하는 경험도 하게 된다. 숱한 망설임 끝에 시작한 사랑이라고 끝이 오지 않을 리는 만무하다. 그때도 조제는, "네가 옆에 없어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도 책으로 만난 모든 것들을 누렸던, 조제다운 발상이다. 세상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이별의 의미를 완전히 뒤집는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조제의 세계와, 언어를 만날 기회다. 오는 10일 개봉.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