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조제' 한지민이 또 한번의 독특한 연기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그가 연기한 조제는 원작과는 다르지만, 온전히 그라서 표현해낼 수 있는 한지민의 조제다.
지난 3일 한지민과 '조제' 개봉을 앞두고 온라인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지민은 '미쓰백' 이후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며 조용하고 호흡이 긴, 깊은 여운의 멜로 영화를 골랐다. 원작의 팬임을 자처하면서도, 참고는 하지 않았다. 이는 한지민을 캐스팅한 김종관 감독의 뜻이기도 했다.
"조제가 독특한 세계와 언어를 지닌 캐릭터예요. 좀처럼 감정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캐릭터가 아니어서 조제의 마음과 표현을 이해하는 게 어렵긴 했죠. 배우로서는 설레고 즐거웠지만요. 연기하면서 조제의 감정들을 눈빛이나 공간, 소리들로 그 기운을 전달하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매 신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또 나눴어요. 촬영하면서 궁금증이 참 많았던 작업이었거든요. 어떤 감정을 명확히 표출하기보다 또 다른 언어로 표현하고 느리지만 잔잔하게 조제의 세계를 드러내야 했죠. 다 보고 난 지금도 조제의 세계를 과연 다 알고 연기했을까 생각이 들어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조제'에 출연한 배우 한지민 [사진=워너 브러더스코리아(주)] 2020.12.04 jyyang@newspim.com |
'조제'는 원작 소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함께 일본 영화 버전 역시 국내에서도 뜨겁게 사랑받은 작품이다. 한국 리메이크 버전은 어떤 점이 다른지 관심이 쏟아졌다. 한지민은 "다르게 하려는 데에 포커스를 맞추지는 않았다"고 작업 과정을 돌아봤다.
"일부러 차별성을 둔 건 없었어요. 원작을 본 것도 꽤 오래 전이었죠. 그저 감독님이 그리고자 하는 조제의 이야기 안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원작에서 영석이와 함께 20대 동갑내기였던 조제보단 연령대가 좀 높아졌죠. 좀 더 쓸쓸하고 외롭고 차분한 느낌이 생겼어요. 아마 그 시작이 과거의 상처, 누군가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트라우마로부터 온 게 아니었을까 생각했죠. 시나리오에 담기지 않았던 조제의 서사를 구축하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어요. 늘 한정된 공간에 머물고 소통도 적고, 할머니와도 대화를 많이 하진 않죠.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도 낯설어하고요. 영석이한테도 고맙다고 하기보다 '밥 먹구 가'라고 하는 조제의 언어가, 매력적이면서도 어려웠어요. 또 그래서 특별했죠."
한지민의 말처럼, 영화 내내 조제는 좀처럼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지민이 연기를 하면서 좀 더 인상깊게 느껴졌던 조제의 감정이나, 장면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한지민은 조제가 처음으로 뛰쳐나와 영석을 붙잡는 장면을 천천히 떠올렸다.
"영석이를 붙잡을 때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한 것 같아요. '가지마 계속 내 옆에 있어줘'라고 말한 게, 조제의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이기도 해요. 마음을 열지 않다가 처음 표현하는 신이라 개인적으로도 공들여서 찍으려고 집중했었죠. 결과적으로도 인상깊은 장면이 됐고요. 또 제가 좋아하는 조제의 표현이, '호랑이가 담을 넘어왔어도 난 무섭지 않았을 거야. 네가 내 옆에 있으니까'라는 대사예요. 영석이가 옆에 있어줘서 기존의 두려움이 없어졌다는 고백이죠. '물고기들이 보기엔 우리가 갇혀있겠지'도 참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대사였고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조제'에 출연한 배우 한지민 [사진=워너 브러더스코리아(주)] 2020.12.04 jyyang@newspim.com |
한지민이 언급한, 조제와 영석이 눈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깨닫는 신은 관객들에게도 꽤 인상깊은 장면으로 남는다. 당시 한지민이 직접 연기를 하면서 느꼈던 감정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한지민은 "평소 잘 울컥하는 편이다"라며 너무 눈물이 쏟아졌던 그때를 떠올렸다.
"조제가 영석이를 마주할 때 좋아하는 마음이 있음에도 낯설고 두려웠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좋아하니까 괜찮아보이고 싶었던 거죠. 다시 영석이 찾아왔을 때 처음으로 많은 질문들을 해요. 잘 지내? 취직은 했어? 하고요. 원래는 대답도 겨우 하는 편인데요. 오랜만에 본 이 사람 앞에서 괜찮아보이고 싶은 감정이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영석이가 떠난 빈 자리를 보면서 감정에 확신이 생긴 거죠. 뛰쳐나오듯이 철문을 열고 나왔는데 이미 너무 눈물이 났어요. 원래는 얘기하다 눈물을 흘리는 거였는데, 터져나오는 울음 안에서 사랑을 확신했을 것 같기도 해서 감독님과 조금 바꾼 부분도 있었죠. 그때의 대사를 간절하게 내뱉고 싶었고 처음으로 솔직하게, 그러면서도 영석의 눈은 마주칠 용기는 없는. 그런 느낌으로 찍었던 기억이 나요."
영석이라고 조제만큼 망설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조제는 시작부터 이미 두 사람의 이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마지막에,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영석과 울면서 이별을 하지만 두 사람이 왜 헤어졌는지는 명확히 나오지 않는다. 한지민은 그게 감독이 의도한 부분이자, 이 영화의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사랑을 선택하는 것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결정이죠. 영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사랑을 하기로 한 후엔 비단 현실적인 문제로 헤어졌을까 싶어요. 저도 고민을 했는데 감독님도 명확히 왜라는 걸 담고 싶지는 않았다고 하셨죠. 제가 경험한 이별도 그렇고 어떤 이유로 헤어졌다는 건 사랑의 흔적을 어떻게 남기고 싶은지 생각하면서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이 사람이 옆에 없어서 그게 가장 힘들면 이별할 수 없죠. 그렇지 않기 때문에 여러 이유들을 설명하게 되는 게 아닐까요. 비단 장애 때문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나와 그 사람의 마음이 온도와 맞지 않고 그럴 때 이별을 하게 되죠. 조제와 영석이도 그랬을 거고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조제'에 출연한 배우 한지민 [사진=워너 브러더스코리아(주)] 2020.12.04 jyyang@newspim.com |
올해로 데뷔 17년차를 맞은 한지민은 곧 40대의 나이가 된다. 그는 "20대에는 빨리 30대가 되고 싶었다"고 과거를 돌아봤다. 동시에 그동안 겪어온 스스로의 변화를 인정하고,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고 40대를 맞이하는 소감을 말했다.
"연기하면서 경험이 부족하고, 어려움이 많아서 나이가 들면 좀 더 풍부해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어요. 막상 30대 돼서 한 해마다 너무 크게 의미 부여를 하더라고요. 해가 바뀐다는 건 사실 31일에서 1일로 가는 하루 차이인데. 올해는 기쁜 일만 있을 거라 기대하다가 연초에 안좋은 일이 생기면 불안해하고요. 어느 순간부터는 유연해지는 시기를 또 겪었죠. 나이랑 상관없이 삶에 대한 고민은 많이 하는 편이에요. 20대와 30대를 거치면서 예전의 내가 나를 낯설어할 만큼 많이 변했어요. 앞으로 맞이할 인생은 변화가 찾아오더라도 예전만큼 두렵지는 않아요. 그 확신으로 맞이할 저의 미래가 궁금하고 잘해보고 싶어요."
한지민은 조제를 연기하면서 배우로서도, 인간 한지민으로서도 성장통을 겪었다고 했다. 특히나 모두가 힘들었던 2020년 올해는 그에게도 꽤나 잊을 수 없는 해로 기억될 듯 했다. 한지민은 개인적인 아픔을 털어놓으며 "빨리 코로나19가 사라지고 만나서 인터뷰 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간 한지민으로도 성장통을 겪은 한 해였어요. 어릴 때부터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 굉장히 컸는데, 조제도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로드뷰를 보면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죠. 저희 할머니도 지난 여름에 돌아가셨어요. 언니와 조카들도 외국에서 만나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빈 자리가 너무 커요. 앞으로 올 이별도 무섭고 두렵고 울컥하기도 하죠. 정말 코로나의 여파와 의미를 진하게 느끼는 요즘이에요. 늘 이별이 두려워도 조제와 2020년 덕분에 아프지만 굳은살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많은 분들께서 '조제'를 만나시고 잠시나마 찬찬히 사랑,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여러 감정들을 다같이 느끼고 쉬어가셨으면 좋겠어요."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