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왕실 하사품이 완전하게 갖춰진 채 300년 넘게 풍산 홍씨 후손가에 전래된 '기사계첩 및 함'을 국보로 지정했다고 22일 밝혔다.
국보 제 334호 '기사계첩 및 함'은 1719년 59세가 된 숙종이 태조 이성계의 선례를 따라 기로소에 들어간 것을 기념해 제작한 계첩으로 18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궁중회화다. 기로소는 70세 이상 정 2품 이상 직책을 가진 노년의 문관을 우대하던 기관으로 1718년 당시 숙종은 56세였기 때문에 기로소에 들어갈 나이가 되지 않았으나 태종 이성계가 70세가 되기 전 60세에 들어간 예에 따라 입소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기사계첩-경현당석연도 [사진=문화재청] 2020.12.22 89hklee@newspim.com |
행사는 1719년 열렸으나 계첩은 초상화를 그리는데 시간이 걸려 1720년에 완성됐다. '기사계첩'은 기로신들에게 나눠줄 11첩과 기로소에 보관할 1첩을 포함해 총 12첩이 제작됐다. 현재까지 박물관과 개인 소장 5건 정도가 전하고 있다. 문화재청에서 2017년도부터 실시한 보물 가치 재평가 작업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의 기사계첩이 2019년 국보 제325호로 지정됐으며, 이번 건이 두 번째 국보 지정이다.
이번에 지정된 '기사계첩'은 기로신 중의 한 명인 좌참찬 임방(1640~1742)이 쓴 계첩의 서문과 경희궁 경현당 사연(잔치) 때 숙종이 지은 어제(임금이 지은 글), 대제학 김유의 발문, 각 행사의 참여자 명단, 행사 장면을 그린 기록화, 기로신 11명의 명단과 이들의 초상화, 축시, 계첩을 제작한 실무자 명단으로 구성돼 현재까지 알려진 다른 '기사계첩'과 구성이 유사하다.
그러나 다른 사례서는 볼 수 없는 '만퇴당장(만퇴당 소장)', '전가보장(가문에 전해 소중히 간직함)'이라는 글씨가 수록돼 이 계첩이 1719년 당시 행사에 참여한 기로신 중의 한 명이었던 홍만조(1645~1725)에게 하사돼 풍산홍씨 후손가에 대대로 전승돼 온 경위와 내력을 말해준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화첩, 내함, 호갑, 외궤 [사진=문화재청] 2020.12.22 89hklee@newspim.com |
이 계첩은 300년이 넘은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훼손되지 않은 채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내함, 호갑(싸개), 외궤로 이뤄진 삼중 보호장치 덕분으로 보관 상태가 좋은 것으로 보인다. 화첩을 먼저 내함에 넣고 호갑을 두른 후, 외궤에 넣는 방식으로, 조선 왕실에서 민가에 내려준 물품의 차림새를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는 왕실 하사품으로서 일괄로 갖추어진 매우 희소한 사례일 뿐만 아니라 제작수준도 높아 화첩의 완전성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이 외에도 이날 문화재청은 '말모이 원고' 등 조선 시대 회화, 서책, 근대 한글유산 등 6건을 보물로 지정했다.
보물 제2085호로 지정된 '말모이 원고'는 학술단체인 조선광문회 주관으로 한글학자 주시경(1876~1914)과 그의 제자 김두봉(1889~?), 이규영(1890~1920), 권덕규(1891~1950)가 집필에 참여해 만든 한국 최초의 한글사전 '말모이'의 원고다. '말모이'는 말을 모아 만든 것이라는 의미로, 오늘날 사전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주시경과 제자들은 한글을 통해 민족의 얼을 살려 나라의 주권을 회복하려는 의도로 '말모이' 편찬에 매진했다.
'말모이 원고' 집필은 1911년 처음 시작된 이래 주시경이 세상을 떠난 1914년까지 이뤄졌으며, 본래 여러 책으로 구성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ㄱ'부터 '걀죽'까지 올림말(표제어)이 수록된 1책만 전해지고 있다.
'말모이 원고'는 사전 출간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원고지에 고서(古書)의 판심제(책 제목)를 본 따 그 안에 '말모이'라는 서명을 새겼고, 원고지 위․아래에 걸쳐 해당 면에 수록된 첫 단어와 마지막 단어, 모음과 자음, 받침, 한문, 외래어 등의 표기 방식이 안내된 것이 특징이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말모이 원고 [사진=문화재청] 2020.12.22 89hklee@newspim.com |
현존 근대 국어사 자료 중 유일하게 사전 출판을 위해 남은 최종 원고라는 점, 국어사전으로서 체계를 갖추고 있어 우리 민족의 독자적인 사전 편찬 역량을 보여주는 독보적인 자료라는 점, 단순한 사전 출판용 원고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 한 노력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역사‧학술 의의가 매우 크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적극적으로 협조해 이번에 국가지정문화재(국보․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들이 체계적으로 보존‧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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