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 유죄 인정한 원심 파기환송
"계약 불이행, 민사 소송해야...형사처벌 필요 없어"
[서울=뉴스핌] 김신영 기자 = 채권양도인이 임대인에게 채권 양도를 통지하지 않은 채 임대차 보증금을 수령해 썼더라도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양도인이 계약을 불이행한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 등으로 해결하되 별도로 형사처벌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취지다. 이 경우 횡령죄를 인정했던 대법원의 종전 판결이 뒤집혔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대법원 전원합의체. 2021.06.16 pangbin@newspim.com |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3일 횡령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지방법원으로 환송했다.
A씨는 2013년 인천 남구의 한 건물 1층에서 본인이 운영하던 식당 점포를 부동산 중개업자를 통해 B씨에게 양도했다.
A씨는 식당 점포와 순창군 토지, 500만원을 교환하는 조건의 교환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서에는 식당 점포에 관한 임차 보증금 채권 양도가 포함됐다.
이후 A씨와 B씨는 토지의 시가 차이로 인해 교환 대상 토지를 순창군 토지에서 안동시 토지로 변경하는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식당 점포 건물주에게 채권 양도를 통지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임대차 보증금 1146만원을 돌려받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가 횡령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원심은 종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A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이 사건 임대차 보증금 반환 채권을 피해자에게 양도하고 피해자를 위해 보관한다는 사정을 인식한 상태에서 고의로 임대차 보증금을 반환받아 소비함으로써 횡령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횡령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전원합의체는 "채권 양도인이 채권 양도를 통지하는 등 대항 요건을 갖추지 않은 채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추심해 금전을 수령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금전의 소유권은 양수인이 아니라 양도인에게 귀속한다"며 "양도인이 양수인을 위해 이를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어 횡령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봤다.
양도인은 자신이 소유권을 취득할 의사로 금전(임대차 보증금)을 수령한 것이며 채무자 또한 채권자인 양도인에게 금원을 변제한 것이지 양수인에게 이를 지급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다.
전원합의체는 "양도인이 양수인에게 대항 요건을 갖추어주는 것은 의무 이행에 불과하다"며 "양도인이 양수인을 위해 재산상 사무를 대행하거나 맡아 처리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조재연·민유숙·이동원·노태악 대법관은 횡령죄 성립을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양도인이 채권 양도 통지를 하기 전에 채권을 추심해 금전을 수령한 경우 원칙적으로 그 금전은 양수인을 위해 수령한 것으로 양수인의 소유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김선수 대법관은 "종래 판례가 타당하나, 이 사건은 종래 판례가 적용되지 않는 사안이므로 피고인에게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별개 의견을 냈다.
대법원은 "계약 불이행을 형사법상 범죄로 확대해석하는 것을 제한해 온 횡령·배임죄에 관한 대법원 판례의 흐름을 반영했다"며 "채권 양도 영역에서도 횡령죄의 구성 요건인 재물의 타인성과 보관자 지위를 엄격하게 해석함으로써 죄형 법정주의를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태도를 강화하는 입장을 취한 판결"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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