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홈 정치 국회·정당

속보

더보기

[최연혁 교수의 스웨덴 패러독스] ⑦민주주의 건강상태는 누가 챙겨야 할까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뉴스핌 창간 20주년 특별기고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교수

민주주의 건강상태는 누가 챙겨야 할까, 스웨덴 학연정 (학계-연구-정치) 클러스터 모델

인간의 몸은 참 신기하다. 건강하다가도 몸에 과부하가 걸리면 몸살감기가 온다. 조금 쉬어 가며 일하라는 몸의 신호다.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몸 안에서 자동 면역시스템이 작동한다. 육식 위주의 식단을 가진 사람은 동맥경화 현상으로 심할 경우 뇌출혈이나 심장질환이 생기기도 한다. 햇볕을 많이 쬐지 못하면 비타민 D가 모자라 우울증에 걸리기 쉽고 자살 충동도 쉽게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평상시 종합비타민을 섭취하고,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 건강 식단, 정기적 건강진단이 좋다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우리 몸을 습관처럼 돌본다. 모두 예방적 차원에서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보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 미리 챙기고 검사하는 것이 발병하더라도 조기에 빠른 치료와 회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연혁 교수의 스웨덴 패러독스] 글싣는 순서

1. 글을 시작하며
2. 영국, 미국 그리고 스웨덴 3국의 숨겨진 비밀
3. 노조가 존중받는 사회, 스웨덴 노조의 대변신
4. 기업하기 좋은 나라, 사민당의 대변신
5. 만연했던 부패 어떻게 청산했나, 스웨덴 해법의 블랙박스
6. 특권을 걷어낸 정치, 국가경쟁력
7. 민주주의 건강상태는 누가 챙겨야 할까
8. 좌우파의 국가우선주의, 설득을 통한 상생의 정치
9. 정당 내 계파가 없는 이유
10. 성차별이 없는 사회
11. 장애인이 살기 좋은 나라
12.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열어주세요
13. 지방경쟁력은 곧 국가경쟁력
14. 서로의 선을 지키는 사람들
15. 화를 내지 않는 사람들
16. 4차산업시대 노사관계의 대전환
17. 새로운 정치패러다임, K-Politics 전제조건
18. 우리 사회의 대전환, 두 개의 관문
19. 국민 의식의 대전환, 긍정 인자를 깨우자
20.글을 맺으며, 대한민국 패러다임 전환 (끝)

그런데 민주주의에 병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민주주의의 이상 증상은 이렇게 나타난다. 동맥경화 증상인 권력의 과도한 집중, 지역정서와 연고 등을 통해 얻은 정치적 지지를 독식해 생기는 정당들의 지역쏠림 현상과 지역갈등, 정당 간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 부정선거에 대한 제기와 정권 교체 후 발생하는 선거불복과 하야요구, 다수대표제의 승자독식체제로 인해 생기는 과도한 권력쟁탈, 정치적 해결 능력의 부족으로 파생된 각계각층의 불만표출과 갈등, 정권 교체 후 전 정권세력 청산을 위해 투입되는 에너지로 인해 생기는 과도한 국력 소모, 언론의 정치적 중립성 부재와 언론에 대한 불신, 불법과 탈법적 현장에서 정권 눈치를 보는 경찰과 검찰, 교사의 세계관에 따라 좋은 사람(국가), 나쁜 사람(국가)의 정의가 좌우되는 교육현장, 판사에 따라 재판의 결과가 바뀔 수 있거나 객관적 재판 결과가 나와도 극명하게 찬반으로 갈려 갈등이 증폭되는 사회.

결국 지지하는 정당에 따라 반으로 갈리고, 점점 뉴스를 멀리하고, 객관적 사실 조차도 믿으려 하지 않으며, 상대편을 인정하지 않고 단지 이겨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사회분열현상이 심화된다. 결국 국민 전체가 고장 난 민주주의를 고쳐야 한다는 데는 같은 인식을 하고 있지만, 어디부터 시작하고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몰라 불안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국가 정치체제의 건강상태를 피파 노리스(Pippa Norris 1999) 교수는 다섯 가지 신뢰지표로 파악해 볼 수 있다고 제시한다.

첫째, 국가와 사회에 대한 자긍심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국가와 함께 사는 구성원에 대한 신뢰와 존경까지 확대되기도 한다. 국가가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군사적으로 힘이 셀수록 국가에 대한 믿음은 커진다. 높은 삶의 질도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높여 준다. 국제경기에서 국가대표가 우승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승한 아르헨티나는 전 국민이 하나가 되었다. 국민들은 살인적 물가, 실업, 삶의 불안은 잊고 국기를 흔들며 하나가 되었다. 대한민국이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4강까지 올라 갔을 때를 생각해 보자.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다. 그 안에 내재된 심리적 상태는 선수가 경기를 잘 한 것이지만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BTS가 빌보드 차트를 휩쓸고,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감독상을 받을 때 "우리나라 참 대단한 나라"라고 말한다.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어떻게 그런 인재들이 배출되었을까" 생각한다. 손흥민이 최다골을 넣고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을 때 선수를 칭찬하면서도, 우리 대한민국과 우리나라사람의 우수성을 떠올리며 슬쩍 나를 끼워 넣는다. "알고 보면 나도 참 대단한 사람"라고 동화시킨다. 국가와 국민, 너와 내가 일치되기 때문이다.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체제는 안정적이다.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 높으면 살고 있는 국가체제를 인정하고 함께 사는 사람들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독재국가에서 엘리트 스포츠를 왜 그렇게 투자하는지도 알 수 있게 해 준다. 올림픽 경기장에서 국기를 보면서 함께 부르는 국가는 모든 시름을 잊게 해 주는 마취제와 같은 효과가 있다.

두번째로 체제의 원칙에 대한 믿음이다. 민주체제에서 채택한 국민주권, 행복, 인권, 자유, 평등, 평화, 안전 등과 같은 헌법적 가치를 얼마나 잘 지켜 주는지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이다. 독재체재에서 민주주의로 체제전환을 이룬 국가의 국민들은 살림살이가 얼마나 더 좋아졌는지, 자녀의 미래가 얼마나 풍족하고 살기 좋은지, 전쟁이나 범죄에로부터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풍족하며 차별을 받지 않고 행복한 삶을 보장해 주는지에 대한 기대치를 보여 준다. 이 믿음이 낮을수록 체제에 대한 도전은 더 거세지고 불안해진다. 하지만 체제마다 중요시 하는 원칙은 순위를 달리한다. 민주주의 국가는 헌법에 명시된 모든 가치를 동등하게 중요한 원칙으로 간주 하지만, 공산주의 혹은 독재국가들은 강한 국가, 안전국가를 가장 중요시 한다. 개인 인권신장이나 시장의 자유를 위한 원칙을 주장하면 제거의 대상이 된다.

셋째는 체제 기능에 대한 신뢰다. 헌법기능, 삼권분립기능, 입법기능, 행정기능, 예산심사기능, 재판기능, 고위직 인사기능, 인권보호 기능, 자유시장기능 등 민주주의 체제가 갖는 다양한 기능의 작동에 대한 판단에 근거한다. 이 체제 기능들은 두 번째 제시된 원칙을 잘 보호하고 발전시키며 강화시킬 수 있는 정책이 판단기준이다.

넷째는 제도 혹은 기관에 대한 신뢰다. 정부, 의회, 여당, 야당, 법원, 검찰, 경찰, 국정원, 세무서, 군대, 대기업 등 국가를 떠받치고 있는 기관들에 대한 믿음 체계다. 어느 한 기관이 집중적으로 낮은 신뢰도가 나왔다면 그 제도가 중증에 걸려 있다는 증거다. 국회와 정당에 대한 불신이 증가한다면 병의 증세가 심각해 시급하게 수술을 해야 한다는 신호다.

다섯째는 각 기관 속에서 활동하는 행위자들에 대한 신뢰다. 대통령, 국회의원, 판사, 검사, 경찰, 세무관, 소방관, 지방의원, 공무원, 기업인 등 개인에 대한 신뢰다. 각 행위자들이 주어진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하는가, 부패에 자주 연루되지는 않는가, 국민을 위해 얼마나 봉사하고 희생하는가 등에 대한 종합적 판단에 따라 축적된 인식에 따라 평가한다. 개인에 대한 신뢰는 그 들이 속한 기관과 기능에 대한 신뢰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슬 구조로 되어 있다.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가 낮으면 국회(제도)와 입법기능까지 부정적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경찰관들에 대한 신뢰가 높으면 경찰 뿐 아니라 경찰의 질서유지와 안전기능까지 좋은 평가를 내린다.

[사진=shutterstock]

문제는 첫번째 요소인 '국가와 사회'와 두번째 요소인 '민주적 체제의 원칙'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을 때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피파 노리스 교수는 그의 2011년 연구에서 국가와 사회가 신뢰를 잃으면 국민의 불복종과 갈등의 확산, 무질서의 확대로 나아가 무정부상태로 발전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혁명이나 체제전복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민주주의 고착화(consolidation) 과정을 연구한 래리 다이아몬드(Larry Diamond) 교수는 1999년 연구에서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민주주의의 원칙에 대한 신뢰를 잃으면 민주주의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고 조직된 저항이 확산되면서 안정성이 무너지기 시작한다고 보았다.
어떻게 하면 민주주의의 건강상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지속적으로 문제를 개선해 나가면서 제도개혁을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 스웨덴의 경험을 들여다보자.

스웨덴은 민주주의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 두 가지로 접근하고 있다. 하나는 민주주의 조사단(Demokratiutredningen)을 운영하는 것이었고, 그 다음으로 민주주의 장관제를 도입했다.

민주주의 조사단(이후 조사단)은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 동안 민주주의의 기능, 제도, 작동 등을 점검해 그 결과를 정부에 보고하게 하는 제도다. 일종의 민주주의 건강검진인 셈이다. 조사단장은 정부에서 임명하지만 중립적인 학자, 혹은 사회전문가 중 한 사람을 선정한다. 학계 전문가들이 정부, 의회, 옴부즈만, 감사원, 검찰, 법원, 지방 정부, 이익단체, 재계, 국가 및 기관 연구소, 기업연구소, 언론대표 등과 세미나, 워크숍, 여론조사 등을 진행해 국내조사결과를 집대성하는 작업이다. 이 뿐 아니라 해외 저명 학자와 전문가 패널의 자문을 받아 스웨덴 민주주의의 총체적 진단, 개혁방향제시, 법제정과 법개정 등 후속조치를 취하도록 권고한다.

1985년 이후 지금까지 세 번의 조사단이 구성되었다. 1985년 처음 시작한 민주주의 조사단은 스웨덴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국민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삶의 조건을 만들어 가는데 어떤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어디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지, 각 기관과 제도의 기능, 그리고 행위자들은 얼마나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지 5년간 조사를 진행했다. 16개의 대학 연구팀이 각 분야의 권력구조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제출했고, 통계청은 국민, 정치인 및 고급관료, 기업인, 언론인 등의 여론조사 및 인터뷰조사를 진행해 기초자료를 제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23권의 스웨덴어 단행권, 5권의 영문 단행권, 34개의 스웨덴어 연구보고서, 43개의 영문보고서를 출판해 스웨덴의 권력구조를 총체적으로 분석하는 그림을 완성했다. 조사단은 최종 정책조사보고서(SOU 1990:44)를 정부에 제출했다.

두 번째 조사단은 1차 조사 후 7년만인 1997년 다시 구성해 3년간 운영되었다. 첫 번째 조사단이 다루지 못했던 주제들, 즉 스웨덴의 유럽연합 가입이 스웨덴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 투표율 하락 문제, 로비활동, IT와 민주주의, 세계화, 청소년들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위한 투표연령 조정 등을 주제로 전국 18개 도시를 돌면서 주제별로 해외 석학들과 국내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국제회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와 함께 민주주의 도서관 운영, 전국 6개 권역별로 학교방문, 지방의회방문, 지방정당원교육, 장애인 단체별 교육, 노조교육, 시민단체교육 등 다양한 국민교육과 계도, 공청회를 동시에 진행했다. 별도로 32개의 국가보고서, 13개의 단행권 등을 출판해 1차 권력조사단이 다루지 못한 민주주의 제도의 결함, 새로운 환경에 따른 개혁필요성 등을 3년 동안 조사해 2000년 정부에 보고했다.

3차 조사단은 다시 14년만인 2014년에 구성해 2년간 운영되었다. 이전 두 번의 조사단 보다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활동은 더욱 조직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조사단의 핵심 주제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와 문제점, 생동감 있는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한 개혁에 초점을 두고 정당 당원, 청년 정치인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정당의 신인 정치인 발굴과 교육, 충원의 문제, 사회 대표성 등의 새로운 도전과 가능성을 국민과 소통하며 개혁하기 위한 16회 국제학술세미나, 22회의 각계 전문가 회의, 38회 국민설명회 및 공청회의 활동을 펼쳤다. 사회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현실과 동 떨어진 국가제도, 선거제도, 선거권, 오피니언 리더와 정책형성의 핵심주체인 정당들의 제한된 능력, 35,900명의 광역 및 기초단체 선출직의 능력과 한계를 개선하기 위해 국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위한 전제 조건인 시민의식, 학교민주주의교육, 평생교육, 이익집단 간 대화와 소통 등을 통한 국민의 민주정치의식이 제고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3차 조사단은 1-2차 조사단의 제한된 영역이었던 법 개정을 위한 정책제안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조사단의 연구결과는 제도평가와 정책제안의 두 가지 형태로 제시된다. 제도평가는 정부와 언급된 관련 기간이 시급히 고민해 보고 새로운 개선안을 내 놓도록 하는 권고안이며, 정책제안은 정부가 반드시 법 개정 및 제정 혹은 헌법 개정 등의 제안을 의미한다. 따라서 보고서는 정부, 국회, 중앙행정기관, 지방정부 등 모든 공공기관에서 검토 후 입장 발표와 추후 개선안 등을 내 놓아야 하기 때문에 지속적 국가개혁을 위한 기본설계안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민주주의 진단, 개혁, 발전을 위한 두 번째 접근방식으로 민주주의장관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1차 민주주의 조사단 임명은 1982년 당시 부총리가 제안해 시작되어 학계의 전문가 집단, 정부연구기관, 민간 연구소 등이 총망라된 최고 전문가 집단의 국가 권력 작동의 원리와 문제점, 개선점 등에 관한 보고서 제출 후 해체되었다. 이때부터 민주주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는 정부 내 컨트롤 타워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브리타 레이욘 스웨덴 초대 민주주의 장관 [사진=유튜브 Fackförbundet ST 캡쳐]

민주주의 전문 장관제의 도입은 1998년 이루어져 최초 민주주의 장관으로 브리타 레이욘(Britta Lejon)을 임명한 후 지금까지 5번의 정권교체 기간 동안 총 9명의 장관이 임무를 수행했다. 10개 부처에 24명의 장관들로 구성되는 행정부 특성상 민주주의장관은 정권들이 추진하는 주 정책의 방향에 따라 소속 부처가 결정되었다. 1대부터 3대(1998-2006)까지는 법무부, 4-5대 (2006-2014) 때는 부총리 겸 민주주의 장관으로 총리실에 배치되었으며, 6-8대 (2014-2022)는 문화부, 현 9대 장관은 고용노동부에 배치되었다. 현 민주주의 장관은 다양한 부처의 업무를 담당하는 특성상 한 부처의 수장으로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인권, 법치, 노동, 여성, 소수자 권리, 참여, 평등, 협의, 상생, 소외, 시민사회 등을 모두 포괄하는 정책영역이기 때문에 현 정부에서는 노동시장부, 문화부, 법무부, 외무부에 각각 민주주의 특별부서를 두어 유기적으로 협조하고 있다.
새로운 변화의 요구에 따라 국가의 제도를 뒤처지지 않게 바꾸려는 노력은 민주주의 장관제의 도입과 민주주의 조사단의 활동으로 꾸준히 지속되었다. 두 제도의 결합으로 민주주의는 더 이상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라 역동적으로 함께 고쳐가며 개선시켜 가는 대상으로 인식되었고, 정부(정치영역)와 학계 및 연구전문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정학연 클러스터의 형태로 발전되었다. 권력구조 개혁, 선거제도 개선, 지방자치 강화, 선거연령 조정, 소수자 권리 증진 등의 정부와 야당이 국가개혁 로드맵을 만들 수 있도록 전문가 집단이 먼저 중앙에서부터 지방, 공공기관과 시장 주체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체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국내 및 해외의 학계 최고 전문가의 자문과 연구결과를 검토한 후 최적의 개선방향을 제시하면 이것을 정치영역이 받아 의회의 토론을 거쳐 헌법 개정 및 법제정 등 실질적 개혁을 추진해 나가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사회 제 세력 간에 생길 수 있는 다양한 이해관계의 충돌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선거제도와 같은 대개혁을 진행하면서 정당 중심으로 속전속결로 논의해 개혁하는 것은 정당, 당파, 소수의 이익에 부합되는 제도로 급조되는 것이기 때문에 1회용 용기에 지나지 않는다. 매년 선거 때마다 새로 손보는 방식은 국가자원 낭비이자 국민 분열을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 투표율을 높이고, 사회의 대표성을 폭넓게 확대하며, 지역 갈등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선거제도의 개혁을 위해 3년의 국내 및 국제 조사, 의회에서의 토론, 헌법 개정 및 관련법 개정을 거쳐 2018년 선거부터 적용한 스웨덴의 경우 1997년 시작한 2차 연구조사단의 보고서가 기초가 되었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20년의 기간이 소요된 셈이다.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민주주의

몸이 이상신호를 보낼 때 제 때 대처하지 못하면 더 악화되고 결국 생명에 위협이 되듯, 논이나 밭에 자란 무성한 잡초가 농작물의 정상 생장을 어렵게 해 수확이 적어 지듯, 평상시 하수도를 제대로 정비하지 못해 작은 비에도 침수로 고통 받듯, 민주주의에 생기는 이상 증상을 지속적으로 방치하거나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민주주의 체제의 유지와 존속 자체가 위협받게 된다. 민주주의도 우리의 건강, 논밭의 농작물, 하수도처럼 충분한 자양분과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피파 노리스 교수가 지적하듯 국가에 무한한 자긍심과 일체감을 느낄 수 있고 민주적 원칙과 기능, 제도와 정치인까지 신뢰할 수 있을 때 국가는 심각한 사회적 갈등 없이 지속적으로 번영한다. 국가는 인권의 핵심인 인간의 존엄성, 생존, 안전, 행복과 자기실현이 가능하도록 지켜주는 울타리다. 역사적으로 그 어떤 통치 제도도 민주주의만큼 인권을 지켜주지 못했다. 민주주의를 잘 가꾸고 발전시켜야 할 이유다. 자국의 인권문제 뿐 아니라 세계의 인권문제도 함께 고민해 봐야 한다. 강대국에까지도 보편적 인권을 존중하라고 요구할 수 있으려면 스스로를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 스웨덴 외교부는 세계 각국의 인권 및 법치 상황을 파악하고 개선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각국 인권조사 시리즈를 내놓고 있다. 스스로 인권국가임을 천명하고 세계의 인권문제에 눈감지 않고 선도해 나가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필자 최연혁 교수는=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트럼프 '레임덕' 오나…민주당 상·하원 '싹쓸이'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2026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연방 상·하원 주도권을 모두 휩쓰는 '블루 웨이브(Blue Wave·민주당 대승의 파도)'를 일으켰다. 3일(현지시간) 밤, 아직 개표가 한창인 가운데 미국 주요 방송사들은 민주당의 상·하원 다수당 석권을 일제히 예측 보도했다. 민주당은 상원에서 이미 과반인 51석 이상을 확보한 데 이어, 하원에서도 과반(218석)을 무난히 넘기는 대승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전반기의 성적표 격인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대승을 거둔 것은 그야말로 '트럼프 심판론'의 압도적 승리였다. 관세 정책과 이란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고유가·고물가가 미국인들의 표심을 결정적으로 돌려놓았다. 지난 10월 26일(현지시간) 미국 미시시피주 코린스에서 공화당 상원의원 신디 하이드스미스를 위해 지원유세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대에서 내려오는 모습. [사진=로이터 뉴스핌] NBC, CNN, CBS 등 미 주요 방송사의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SSRS가 실시해 이날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5%가 "현재 미국 경제 상황이 악화됐다"고 답했다. 특히 유권자의 65%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경제를 더 악화시켰다"고 응답했으며, 62%는 고물가의 책임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다고 지목했다. 유권자 10명 중 4명 이상인 43%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심판표를 던지기 위해 투표소에 나왔다"고 밝혔다. 이는 상원 승패를 결정지을 핵심 경합주인 조지아, 오하이오, 미시간, 텍사스 4곳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가 과반을 넘어서며 공화당 후보들에게 뼈아픈 악재로 작용했다. 지난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핵심 유권자층의 이탈 징후도 포착됐다. 히스패닉(라틴계) 유권자 중 민주당 지지율은 2024년 39%에서 올해 43%로 반등했다. 이는 불법 이민자 단속 등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반이민 정책이 라틴계 표심의 반감을 사면서 나타난 결과로 풀이된다. 이날 밤 개표 상황을 지켜본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중간선거 결과를 수용할 의향이 분명히 있다(absolutely willing)"며 민주당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혀 일단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이란과의 전쟁이 공화당 선거 패배에 일조했다"고 입장을 밝히는 한편, 민주당이 "터무니없는(insane)" 법안을 내놓을 경우 대통령 거부권(Veto·비토)을 족족 행사하겠다고 강조하며 날을 세웠다. ◆ 입법 주도권 상실… 트럼프 '미스터 비토' 전략과 행정명령 우회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 형성됨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임기 2년 국정 운영 방식은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민주당이 상당한 의석 차로 의회 주도권을 쥠에 따라 주요 국정 과제 관련 입법과 예산안 심의, 인사 청문회 등에서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단 하나의 법안도 통과시키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찌감치 스스로 '미스터 비토(Mr. Veto)'가 될 것임을 경고해 왔다. 그는 지난 1일 폭스뉴스를 통해 선공개된 뉴욕포스트 팟캐스트 인터뷰 예고편에서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 아마 내가 '미스터 비토'가 되어야 할 것"이라며 "민주당이 올린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다 보면 그들도 시간 낭비라는 것을 깨닫고 협상 테이블로 나올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선거 전부터 이미 패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배수진을 쳤음을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8월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출생시민권 및 폴리실리콘 산업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행사에 참석한 모습이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그러나 거부권 행사만으로는 국가 예산안 타결이나 행정부 국정 운영을 지속할 수 없는 한계가 명확하다. 이에 따라 입법권이 막힌 트럼프 대통령이 고유 권한인 행정명령(Executive Order)에 집착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쏠린다. 로이터 통신은 백악관 소식통을 인용해 백악관이 이미 몇 달 전부터 '여소야대' 정국에 대비해 비밀 대책 수립을 마쳤다고 보도했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과 러셀 보트 예산관리국장(OMB) 등 핵심 참모진은 지난 4월부터 법률고문실과 협력해 이민 정책, 관세, 주택 비용 감축 등 의회 승인 없이 행정권한만으로 강행할 수 있는 조치들을 정밀 검토해 왔다. 하지만 행정명령 역시 예산 뒷받침이 없으면 효력이 제한적인 데다, 사법부의 가처분 신청 등에 가로막힐 위험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 레임덕 회기 속 공화당의 '속전속결' 입법전  민주당이 새 의회의 의사봉을 쥐는 내년 1월 3일 전까지, 공화당이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는 남아있는 '레임덕 회기' 동안 양당 간의 치열한 입법 전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선거 패배를 직감한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지도부는 레임덕 기간을 활용해 시급한 국정과제와 법안, 공직 인준안을 전격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우선 과제는 당장 내달 11일 만료되는 연방정부 임시 예산안(CR)의 연장 및 2027 회계연도 정식 예산안 타결이다. 다만 상원 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무력화하려면 60표가 필요해, 민주당과의 타협이 필수적이다. 여의치 않을 경우 국방 예산 등 핵심 부처 안을 먼저 통과시킨 뒤 나머지 항목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차선책도 거론된다. 2027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 처리도 시급한 과제다. 현재 하원 안만 통과하고 상원 군사위원회 안은 계류 중이다. 이 역시 민주당의 필리버스터를 고려하면 협상이 필수적이다. NDAA에는 주한미군 규모 유지, 미 해군 함정 정비·건조 관련 한미 조선 협력 등 한국의 안보 및 통상 이해관계와 직접 결부된 사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국내 산업계와 정부도 초유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불은 연방정부 부채한도(현 41조 1,000억 달러) 상향이다. 한도 도달이 임박한 상황에서 이를 늘리지 못할 경우 향후 2년 간 국정 수행 자체가 마비될 수 있다. 민주당은 이를 지렛대 삼아 복지 정책 확대를 요구할 태세다. ◆ 민주당의 대대적 청문회와 '트럼프 가족 비즈니스' 조준… 탄핵 국면 재현되나 상·하원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하게 된 민주당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실패와 각종 사법 리스크를 향해 대대적인 청문회 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의회 조사의 핵심 타깃은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가족 비즈니스다. 출구조사에서도 고물가에 이어 '부패와 사적 이익 추구'가 주요 불만 이슈로 지목된 만큼 민주당의 고강도 조사는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지난 10월 26일(현지시간) 저속 셔터로 촬영한 미국 워싱턴DC의 연방 의회의사당. [사진=로이터 뉴스핌] 로이터의 지난 9월 말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자산은 집권 2기 들어 가상자산, 드론, 인공지능(AI), 예측시장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약 22억 달러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민주당은 민간 기업의 경우 대통령 행정권 특권을 이유로 의회의 자료 제출 요구나 소환장 발급을 거부할 법적 명분이 없다는 점을 집중 공략할 방침이다.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역시 "개원 첫날부터 철저히 책임을 묻겠다"고 공언했다. 주요 조사 대상으로는 트럼프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파트너로 있는 '1789캐피털'이 투자한 희토류 스타트업 '벌칸 엘리먼츠'가 거론된다. 이 회사는 투자 불과 3개월 만에 국방부로부터 6억 2,000만 달러 규모의 대출을 승인받아 특혜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동 국유펀드와 사모펀드 거래를 이어간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이해충돌 의혹, 대선 기부의 대가로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은 석유 기업들, 카리브해 바하마 결혼식 비용의 러시아 올리가르히 대납 의혹 등도 파상공세 대상이다.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을 차지함에 따라 과거 1기 임기 당시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1·6 의사당 난입 사태' 때처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하원 탄핵소추안을 다시 추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실제 대통령 파면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하원에서는 과반(218석 이상) 찬성으로 탄핵안을 통과시킬 수 있지만, 상원 탄핵 재판에서 최종 유죄를 확정하려면 출석 의원의 3분의 2인 67석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을 탈환하더라도 의석은 51석을 조금 넘는 수준에 그쳐, 상당한 공화당 상원의원 이탈표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한 상원 문턱을 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트럼프 2기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민주당의 파상적인 청문회 공격과 하원의 탄핵 시도, 이에 맞선 트럼프 대통령의 연쇄 거부권 행사와 행정명령 강행이 맞물리며 미국 국정이 극심한 대치와 경색 국면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wonjc6@newspim.com   2026-11-04 15:21
사진
은행·제2금융·증권사 등 보안 모두 뚫렸다 은행을 시작으로 증권사와 카드사 뿐 아니라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까지 해킹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금융사 보안 체계는 외부 공격과 내부 관리 부실 앞에서 허점을 드러냈고 사고를 사전에 탐지하거나 피해를 신속히 차단하는 대응 역량도 도마 위에 올랐다. 뉴스핌은 총 4편의 기획을 통해 업권별 사고 원인과 보안 실태를 규명하고 인공지능(AI) 기반 보안체계 구축과 망분리 규제 개선 및 실질적인 제도 개선 방안 등을 모색한다. [서울=뉴스핌] 김양섭·김가희 기자 = 국내 금융권이 한 달 넘게 이어진 연쇄 해킹에 업권을 가리지 않고 뚫렸다. 지난달 1일 신한은행의 고객정보 유출 공개 이후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캐피탈사, 새마을금고중앙회로 번진 침해사고는 지난달 말 대신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 미래에셋생명, 빗썸으로 이어졌고 한양증권에서도 유출이 확인됐다. 금융당국이 지난달 14일 집계한 침해 금융사만 16곳, 유출 정보는 약 10만건이었다. 뚫린 곳은 대부분 핵심 뱅킹망이 아닌 외곽 시스템이었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4일 사고를 세 유형으로 나눴다. 본인확인 없이 대출신청 내역 등을 조회할 수 있던 정보조회 서비스, 기기 접근통제가 빠졌거나 웹 취약점이 있던 프라이빗뱅커(PB)·기업금융 담당자(RM) 등 직원 업무지원 서비스, 이미 알려진 취약점으로 악성코드가 심어져 고객정보가 담긴 로그파일이 빠져나간 홈페이지다.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555곳의 자체 보안점검 결과를 공개한 지 2주 만에 증권·보험업권에서 추가 사고가 나오면서 체크리스트 방식 점검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AI 일러스트= 김가희 기자] ◆ 모집인 조회서비스 뚫리자 고객 정보까지…신한 2만5729명·국민 2210명 유출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연쇄 해킹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 신한은행 사고는 모바일 홈페이지 'M신한'의 대출모집인용 조회 서비스에서 시작됐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는 서비스였다. 신한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공격자는 9월 28일 저녁부터 고객번호 등 입력값을 무작위로 바꿔 넣으며 조회를 반복했고 휴대전화 인증 우회도 시도했다. 8개국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를 바꿔가며 들어왔고, 은행은 15시간26분 뒤에야 이상을 알아챘다. 유출 고객은 2만5729명이다. 이름·전화번호와 연소득, 산출 대출한도 등이 빠져나갔고 주민등록번호 66건과 연계정보(CI) 97건도 포함됐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4일 은행 4곳과 예가람·웰컴저축은행, 현대캐피탈 등 7개사 사고 가운데 여러 곳에서 동일 공격자로 추정되는 IP가 발견됐고 인공지능(AI) 도구를 활용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비슷한 접근 시도를 받은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에서는 유출이 확인되지 않았다. 우리은행은 대출모집인이 지정 태블릿에서 별도 인증서와 생체인증을 거쳐야 업무시스템에 들어갈 수 있고, 농협은행은 모집인에게 내부망 접속 권한이나 별도 업무시스템을 주지 않는다. KB국민은행은 직원용 모바일 업무지원 시스템 'RM 에이전트'와 'PB 에이전트'가 뚫렸다. 지난달 2일 고객 119명 유출을 밝혔다가 26일 재조사에서 고객 1631명과 임직원 460명을 추가로 확인해 피해가 2210명으로 늘었다. 하나은행은 영업지원시스템(ODS)에서 고객 89명의 주민등록번호·주소·직장명 등이 유출됐다. 최병호 고려대 휴먼인스파이어드AI연구원 교수는 이번 사고를 개별 회사가 아닌 금융권 전반의 구조적 취약점 문제로 봤다. 그는 "이번 사고는 본사가 아닌 외곽 조직이 털린 것이어서 망분리와는 관계가 없다"며 "외곽 조직은 업무 편리성이나 직원 복지, 매출 때문에 보안 등급을 의도적으로 낮춰온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 인간 해커는 목표를 정해 오래 준비했지만 AI 에이전트는 수천 개가 금융권 전체를 실시간으로 훑다가 취약점을 찾으면 바로 공격한다"며 "관행처럼 해오던 부분을 AI 에이전트가 간파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AI 일러스트= 김가희 기자] ◆ 자체점검 '적정' 대신증권도 뚫려…협력사 연계서버서 3만8490명 유출 대신증권은 지난달 17일 투자일임 비대면 계좌개설 연계서버에서 비정상 접근을 포착했다. 고객 3만8490명의 이름·이메일·주소와 암호화된 계좌번호 등 8개 항목이 유출됐다고 지난달 28일 밝혔다. 대신증권은 당국의 12개 항목 자체점검에서 미흡사항이 없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뚫린 연계서버는 당시 점검 대상에 들어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같은 날 미래에셋자산운용도 업무용 웹 시스템에 외부 IP가 비정상 접근해 일부 업무 정보가 유출됐다고 밝혔다. 고객정보 유출은 없었다고 했다. 한양증권도 지난달 29일 외부 그룹웨어에 대한 비정상 접근으로 고객정보 15건을 포함한 개인정보 31건이 유출된 사실을 확인했다. 주민등록번호가 포함된 건은 3건이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운용업계는 개인 고객 정보를 직접 다루는 일이 적어 그동안 보안 투자 우선순위가 은행·증권·카드보다 낮았던 게 사실"이라며 "중소형사는 자체 보안 인력을 꾸리기 어려워 전산을 외주에 의존하는 곳이 많은데, 외주업체가 뚫리면 같이 피해를 입는 구조적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신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 사고가 알려진 뒤 점검 수위가 한 단계 더 올라갔다"며 "외부에 노출된 시스템을 전수 파악해 접근통제를 다시 확인하고 점검 범위를 외주·연계 구간까지 넓히고 있다"고 전했다. 빗썸은 사내 모바일 그룹웨어가 뚫려 고객 6444명과 임직원·협력사 직원 715명의 정보가 유출됐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고객 844명분은 암호화되지 않은 채 노출됐고 주민등록번호·신분증 사본 등이 포함됐다. 빗썸은 당국 자체점검 때 최신 보안패치 적용이 미흡하다고 보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보험사 가운데 처음 해킹 유출을 신고한 미래에셋생명은 지난달 25일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 홈페이지와 청약시스템 일부가 침해돼 이름·주민등록번호·계좌번호 등 홈페이지 서비스 관련 정보가 빠져나갔다. 유출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 10년 된 데이터베이스 쓰던 예가람 4만3246명 유출…웰컴·현대캐피탈은 닷새 뒤 인지 예가람저축은행에서는 고객 4만3246명의 정보가 유출됐다. 규모가 공개된 사례 가운데 가장 많고 상반기 말 거래자(16만2731명)의 4분의 1이 넘는다. 이 중 320명은 주민등록번호·계좌번호·거래내역 등 다른 항목까지 빠져나갔다. 해커는 9월 16일 고객정보 서버에 접근했지만 은행은 14일 뒤에야 이를 알아챘다. 국정감사에서는 침해 관련 시스템에 2016년 출시된 구버전 데이터베이스(DB) '레디스(Redis) 3.0.7'이 쓰였고 1년 전 공개된 취약점도 패치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예가람저축은행은 사고 당시 금융보안원 회원사도 아니었다. OK저축은행은 지난달 11일 대출신청 웹페이지, 15일 모바일 수신서비스 홈페이지가 잇따라 뚫려 고객 250명의 연소득·대출금액 등과 268명의 계좌번호·잔액 등이 유출됐다. 웰컴저축은행과 현대캐피탈은 9월 27일 공격을 받고도 닷새 뒤 금융보안원이 공유한 공격 IP로 접속 기록을 살피다 침해를 확인했다. 웰컴저축은행에서는 법인 인터넷뱅킹 아이디·대표자 이름 등 2370건(중복 포함)이 유출됐다. 현대캐피탈은 주택대출 모집인 조회페이지가 공격받아 모집인 146명의 주민등록번호가 노출됐다. 새마을금고중앙회 공제 홈페이지에서도 회원 400여명의 정보가 빠져나갔고, 중앙회는 약 60시간 뒤 금융보안원이 전달한 의심 IP를 분석하고서야 이를 알았다. 김명주 인공지능안전연구소(AISI) 소장은 최 교수와 달리 뚫리지 않은 회사도 있는 만큼 개별 회사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기업마다 부가서비스로 했거나 보안을 등한시했던 부분이 계속 뚫리고 있다"며 "금융권도 보안을 비용으로 보기 때문에 사고가 안 나면 아까운 돈이다 보니 몇 년씩 사고가 없자 늘려야 할 투자를 계속 줄이다가 이번에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금융권 정보보호 인력 비중은 수년째 10%를 밑돈다. 금융감독원이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올해 6월 말 7개 업권의 정보기술(IT) 인력 2만7508명 가운데 정보보호 인력은 2654명(9.6%)으로, 은행(8.8%)과 증권(9.5%)은 평균에도 못 미쳤다. ◆ 555곳 중 130곳 '미흡'…패치·인증·관제 기본 항목서 구멍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14일 공개한 긴급 자체점검에서 금융회사 555곳 가운데 130곳(23.4%)이 보안패치 미적용, 기술지원이 끝난 노후 시스템 관리 미흡, 24시간 보안관제 미구축, 대외시스템 인증·인가 누락, 다중인증(MFA) 미도입 등 미흡사항을 보고했다. 나머지 425곳은 '적정'으로 보고했다. 신진창 금융위 사무처장은 지난달 14일 "수 차례에 걸쳐 전수점검과 관리 강화를 주문했음에도 금융회사에서 기본적인 부분이 잘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발견된 것은 매우 뼈아픈 부분"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도 금융권의 이행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사고 전부터 기본 보안 통제 보완과 외부 접점 악용 주의 등을 전파했고, 긴급 체크리스트 점검 때 필수적인 경우를 빼고 외부 접근을 원칙적으로 차단하도록 했지만 가시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전날 임원회의에서 "사고 회사가 유의사항과 자체점검을 제대로 이행했는지 살피고, 종합금융투자사업자·보험사 등 대형 금융회사도 은행권과 같이 CEO 등 경영진 책임까지 엄중하게 물으라"고 지시했다. 대부업·가상자산업·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등 전자금융거래법 미적용사를 포함한 전 금융권의 외부 접점을 전수 점검하고, 형식적 점검에 그친 곳은 엄중 조치하라고도 했다. 오는 5일에는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5대 시중은행장·금융협회장 등과 간담회를 열고 AI 해킹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최 교수는 미국·유럽처럼 외부 공격을 가정해 취약점을 찾는 '레드팀' 점검을 상시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은 체크리스트로 점검하거나 자기 보고에 의존해 보고할 때는 문제가 없다고 했을 것"이라며 "정부가 보안 품질을 평가하거나 보안 성과를 공시해 주가에 반영되도록 하면 기업이 돈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보안을 투자로 보는 인식과 CEO가 책임지는 구조를 개선 과제로 꼽았다. 그는 "지금은 CEO가 아니라 개인정보·정보보호 담당자가 책임을 지고, 사고가 나면 그 사람을 잘라버리면 끝"이라며 "갈수록 AI를 쓴 공격이 늘어날 텐데 이전 보안 시스템으로는 막을 수 없는 만큼 은행도 AI 시스템을 갖춰 미리 방어에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금융위원회] ssup825@newspim.com 2026-11-04 06:00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