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렌터카·車리스, 상품 성격 차이 없어
장기 렌터카만 자동차세·지방세 혜택 부여
"세금 혜택 줄여 형평성 찾아야" 목소리 커
[서울=뉴스핌] 한기진 기자 = # 몇해 전 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인플루언서가 수억원대의 슈퍼카 3대를 임차해 본인과 가족의 개인 용도로 사용하고도 렌트비, 유류비 등을 업무상 비용인 것처럼 위장해 탈세를 하다가 국세청에 적발됐다. 이 때 이용된 것이 '장기 렌터카'로 고소득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고가의 수입차를 이용하는 것이 세금을 아끼기 위한 방법으로 악용된지 오래다. 포르쉐, 메르세데스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등 최근 판매량이 많은 고급 수입차들 중 상당 수는 장기 렌터카라고 한다. 차량을 이용해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을 위해 장기 렌터카에 세제혜택을 주면서 생긴 부작용으로, 오히려 고소득층의 세금을 줄이려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이러자 우리 나라만의 기형적인 상품 구조 '장기 렌터카'의 위법성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30일 자동차 임대업계 및 캐피탈업계에 따르면 렌터카업체들이 누리는 세제 혜택이 어느 정도인지는 비슷한 상품인 리스업체들과 비교하면 잘 알 수 있다.
[서울=뉴스핌] 한기진 기자 = 2023.06.30 hkj77@hanmail.net |
우선 자동차세의 경우, 차량의 배기량에 따라 2500cc 이하 차량을 렌터카로 이용하면 최대 19원/cc, 2500cc 초과 시 24원/cc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비슷한 자동차 임대상품인 리스는 1600cc 이하 차량 이용 시 최대 140원/cc, 1600cc 초과 차량에는 200원/cc의 자동차세가 부과된다. 배기량 2000cc의 차량을 리스로 이용할 경우, 렌터카 대비 세금을 열 배 이상 내야하는 부당한 상황인 것이다.
지방교육세 역시 렌터카는 면제인 데 비해, 리스 차량은 자동차세의 30%가 추가 과금된다. 여기에 취등록세, 공채매입 할인가격 등을 모두 포함하면 세제혜택 차이는 더욱 커진다. 예를 들어 벤츠 E클래스(E350 4Matic)의 경우, 4년 리스로 이용 시 렌터카보다 644만원 이상 더 내고 타야 한다. 비슷한 배기량에서 국산차 대비 훨씬 가격이 높은 수입차를 렌터카로 이용하면 더 큰 절세효과를 누릴 수 있는 셈이다. 차량 가격이 올라갈수록 혜택이 더욱 커지는 구조로, 고가의 차량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장기 렌터카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이 벌어진 이유는 장기 렌터카와 자동차 리스 사이에 차별적인 과세 구조 때문이다. 원래 장기 렌터카에는 개별소비세, 교육세 등 국세 혜택이 있었다. 상품간 차이가 없는 자동차 리스에는 없는 세제 혜택이었다. 이 문제가 조세의 형평성과 투명성을 헤친다는 이슈로 커져 2014년에 장기 렌터카에 주는 국세 혜택이 없어졌다.
하지만 지방세 혜택만은 없애지 못했다. 당시 렌터카 업체의 강력한 반발과 영세 렌터카 업계가 고사할 수 있다는 국토교통부의 우려가 반영돼 지방세 인상안이 유보된 것이다. 택시 등 영업용 차량에 면세 혜택이 큰 것처럼, 대부분의 단기 렌터카 역시 공항이나 관광도시를 기반으로 한 영업이라는 목적이 뚜렷했다. 덕분에 대여기간 한 달 이내의 단기 렌터카는 관광산업과 지역 경기 활성화를 많은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서울=뉴스핌] 한기진 기자 = 2023.06.30 hkj77@hanmail.net |
이러한 렌터카의 대여 기간에 대한 별도 규제가 없다는 점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대 60개월까지 렌터카를 장기로 이용해도 주어지는 세제 혜택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는 입소문도 확산됐다. 이를 계기로 업무용으로 렌터카를 장기 임대하는 사례가 빠르게 증가했고 지금의 장기 렌터카 시장이 만들어졌다. 해외사례를 보면 우리나라 렌터카 시장의 기형적인 구조가 드러난다. 미국의 경우, 4개월(영국 3개월, 호주 4개월)을 기준으로 그 이하로 자동차를 대여할 경우에는 렌트, 그 이상 대여할 경우에는 리스로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장기 렌터카는 고소득층의 절세와 대기업 렌터카 회사의 이익 증가에 기여했다. 대형 렌탈사인 롯데렌탈은 2023년 1분기 기준, 오토렌탈 부분의 영업수익은 4415억원이다. 이 중 장기 렌터카 영업수익은 3759억원으로 전체 오토렌탈 수익의 85% 이상을 차지해 단기렌탈 부문을 압도했다. 특히 2020년 대비 2022년 영업수익이 15%(14.5%) 가까이 증가했을 정도로 확장세도 가파르다. 대기업 계열 렌탈사인 SK렌터카 역시 올해 3월 발표된 한국신용평가의 리포트에 따르면, 전체 영업수익 중 장기렌탈이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비중 역시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장기 렌터카에 대한 지방세 면세로 인해 지방자치단체는 지방 세수가 감소하는 영향을 받는다.
캐피탈업계의 분석에 따르면 올해 가장 많이 팔린 차종인 현대자동차 그랜저(2500cc, 차량가 3450만원)를 4년동안 리스와 렌트로 각각 이용할 경우, 지방세율 격차는 차량가 대비 약 13%P에 달한다. 이 수치를 적용해, 2022년 장기 렌터카 신규등록 대수(20만5000대)를 리스로 이용하거나 구매했다면 약 1조1584억원 가량을 추가 지방세수로 거둘 수 있었던 셈이다.
한 자동차 임대업계 관계자는 "현재 장기 렌터카에 제공되는 파격적인 세제 혜택은 지방재정을 희생시켜 대기업 렌터카 회사들의 이익을 늘려준다"라며 "세금이 새는 것을 막고 애초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정책 개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hkj7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