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서울시무용단의 신작 '엘리자베스 기덕'이 서양인이 그린 우리나라 풍경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무대에 구현했다.
2023 세종시즌 레퍼토리 '엘리자베스 기덕'이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됐다. 올해 '일무'로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연을 마친 서울시무용단의 신작으로 일제강점기 조선, 한양으로 들어온 영국인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 작품을 한국무용 작품으로 재구성했다. 직관적인 연출과 총 7장의 무대로 표현된 엘리자베스 기덕의 그림을 무대로 옮겨내며 동작 하나하나 공을 들인 표현력이 돋보인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서울시무용단 '엘리자베스 기덕'의 한 장면 [사진=세종문화회관] 2023.11.06 jyyang@newspim.com |
◆ 100년 전, 서양인의 눈에 비친 한국 풍경…현대에도 깊은 여운
'엘리자베스 기덕'은 1919년부터 한국에 방문해 80여 점의 한국 풍속화를 남긴,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과 편지 내용을 담은 창작 무용 작품이다. 1921년에는 서양인 화가 최초로 서울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영국인으로 기록될 만큼 한국에 애정이 깊었던 그의 시선으로 풀어낸 한국의 전통문화, 일상, 풍경들이 그림 속에서 빠져 나와 무대에서 생동한다.
'엘리자베스 기덕'에서는 그녀의 편지 내용을 토대로 조선에 대한 그의 감상을 내레이션으로 전달하고, 무용수들이 등장해 '시골 결혼잔치','신부행차','원산 학자와 그 제자들'등 총 24점의 그림을 무대에 그려낸다. 100년 전 이방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한국과 주권을 빼앗긴 당시 상황은 역사를 아는 관객들에게 독특하고 신선하면서도 깊은 여운으로 다가온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서울시무용단 '엘리자베스 기덕'의 한 장면 [사진=세종문화회관] 2023.11.06 jyyang@newspim.com |
극이 시작되면서 엘리자베스 기덕 본인이 무대에 등장하고, 그의 복색과 생김새 역시도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해소한다. 색동옷을 입은 아이, 백의 민족이라 불린 서민들의 흰 저고리와 바지, 신부의 족두리와 활옷, 차분하면서도 생동감있는 색감과 전통과 현대적인 미감을 모두 담은 소재에서 눈으로 보는 즐거움을 극대화한다.
◆ 서양과 동양, 과거와 현재를 잇는 힘…한국 창작무용 새 페이지
서울시무용단 단원들은 쉽지 않았을 작업들을 무대 위에서 역동적인 동작과 창의성이 넘치는 동작들로 꽃피웠다. 기덕이 접한 조선의 문화들, 감정과 감상들을 표현하는 동시에 시대상과 무기력과 저항을 오가는 당시의 정서들도 담아내려 노력한 흔적들이 역력하다. 특히 2장 '신랑없는 결혼식', 4장 '무당과 영혼의 춤'에서 느껴지는 절절한 한의 정서와 우리 나라만의 특수성이 담긴 장면들은 해외에서도 또 한 번 주목할 만한 특별한 요소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서울시무용단 '엘리자베스 기덕'의 한 장면 [사진=세종문화회관] 2023.11.06 jyyang@newspim.com |
2, 3장과 6장 '키스, 기덕이 되다'에서 기덕이 시대상과 당시 정서에 깊이 교감하는 장면은 현재를 살아가는 관객들의 마음에도 가 닿는다. 낯선 풍경과 문물, 문화, 사람들을 접하고 한데 어우러져가는 '키스'가 어느 새 '기덕'이 돼가는 과정은 인종도 국적도 뛰어넘는 문화와 소통의 힘을 이야기해주는 듯하다. 서울시무용단은 서양과 동양, 또 과거와 현재를 잇는데 성공하면서 또 한 번 한국 창작 무용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