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도박 청소년 예방치유원으로 인계
올 1분기에만 300명…지난해 대비 2배↑
"치료 의지 없이 상담 받으러와…분위기 흐리기도"
상담사 1명당 내담자 200명…상담 질 저하 우려도
[서울=뉴스핌] 노연경 기자 = 범정부 차원에서 '온라인 도박 근절'에 나서면서 경찰이 도박 청소년을 상담소로 인계하는 건수가 급증했다.
경찰이 올 1분기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예방치유원)으로 인계한 청소년 수는 이미 지난해의 2배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예방치유원은 도박문제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만든 기관으로 도박 전문 상담 인력을 갖추고 있다.
학교 폭력이나 보이스피싱 등 2차 범죄로 연결되는 청소년 도박 특성상 발견 초기 단계에서 중독을 끊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단순히 도박 청소년을 예방치유원으로 인계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일선 상담소에선 경찰이 도박 청소년을 인계해 줘도 해당 청소년이 연락을 받지 않고 잠수를 타버린다거나, 집단 상담의 분위기를 망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상담소 인력은 늘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의 인계 건수만 늘면서 '상담의 질'이 나빠질 우려도 있다.
1일 예방치유원에 따르면 올 1분기 경찰로부터 인계 받은 도박 청소년은 300명 이상으로 이미 지난 한 해(152명) 수준을 넘어섰다.
이는 범정부 차원에서 청소년 도박 근절 대응에 나섰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국무회의에서 "청소년을 상대로 한 불법도박 개장은 국가의 미래를 좀먹는 악질 범죄"며 범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후 올해 2월 윤희근 경찰청장은 도박범죄 척결을 국민체감약속 5호로 내세우며 "청소년 사이버도박은 절도, 금품 갈취 같은 제2의 범죄를 양산하는 원인"이라며 경찰력을 집중 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찰 조직 내에서 도박 청소년을 예방치유원으로 인계하는 조직은 보이스피싱, 불법 도박 사이트 등을 수사하는 사이버수사대다.
각 지방청 사이버수사대는 불법 도박 사이트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청소년이 도박 대금을 입금한 사례가 나오면 해당 청소년의 인적사항 등을 확보한 뒤 그 지역에 위치한 예방치유원으로 보낸다. 예방치유원은 서울에 중앙센터를 두고 총 13개의 지방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경찰을 통해 예방치유원으로 온 도박 청소년은 치료에 대한 의지가 없거나 비협조적인 경우가 다수 있다는 것이다.
박은경 예방치유원 치유재활지원팀장은 "검찰에서 넘어 온 청소년은 기소유예 조건으로 4시간 교육, 6시간 상담을 받아야해서 상담 진행 '강제성'이 있지만, 경찰에서 넘어 온 청소년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이 보낸 청소년은 부모 동의서를 위조하거나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가 있다"라며 "내담자도 준비가 돼있어야 치료가 가능한데, 경찰에서 온 치료 의지가 없는 친구들이 집단 상담 분위기를 흐려놓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경찰에서 인계되는 도박 청소년이 급격히 늘고 있지만, 상담사 인력은 한정돼 있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예방유치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도박 청소년 내담자는 ▲2021년 1242명 ▲2022년 1460명 ▲2023년 2093명으로 해마다 급증했다.
예방치유원은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 치료까지 맡고 있다. 작년 청소년, 성인 구분 없이 예방치유원에서 상담을 받은 도박 중독자는 총 2만1824명이다. 상담사(전체 109명) 한 명당 200명을 상담한 셈이다.
경찰도 예방치유원의 인력 한계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마땅한 선택지가 없다는 설명이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상담사 선생님들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알고 있다"며 "그래서 범정부 차원에서도 예산 증액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현재로선 경찰에서 도박 청소년을 넘길 수 있는 곳이 예방치유원이 전부라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여성의전화처럼 촘촘한 망으로 도박 청소년도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게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며 "그간 관심이 덜 했던 청소년 도박 문제는 현재 범정부 차원에서 체계가 잡혀가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ykno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