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동훈 기자= 문재인 정부 시절 필자로선 해괴하기만 한 용어가 갑자기 들불처럼 일어났다. 바로 '공시가격 현실화'다.
이동훈 건설부동산부장 |
공시가격을 현실화한다니 무슨 뜻일까?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결국 현실화하는 것은 공시가격을 실거래가와 동일하게 맞추는 것이었다. 즉 공시가격을 실거래가와 동일하게 책정하는 것이 현실화라는데 그럼 그것이 과세 정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용어의 장난질로 마치 낮은 공시가격을 적폐로 몰아버리는 정치적 수완이겠지만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 이 용어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할 부분이다.
실거래가란 실제로 거래된 가격을 말한다. 실제로 거래되지 않은 '옆집의 거래 가격'은 한때 유행했던 '피해호소인'이란 용어처럼 '언어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 강남에 있는 내집 옆집의 전용 84㎡ 아파트가 20억원에 팔리면 이게 우리 집의 실거래가격일까? 아니다. 옆집이 20억원에 팔려도 내가 집을 안팔았다면 내집의 실거래가격은 20억원이 아니다. 팔아야 실거래가격이기 때문에 '실거래 추정가격'에 지나지 않는다.
실거래가격이 적용되는 대표적인 세금이 바로 양도소득세다. 실거래가 있고 소득이 발생해서다. 다만 양도세는 양도차익이란 소득에 매겨지는 세금이기 때문에 실거래가격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관련 세금을 크게 올리기 위해 실거래가격(정확히는 실가 추정가격)을 적용하는 세금이 많아졌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공히 부동산 공시가격을 높이 끌어올린 시기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타깃으로 '부유세' 개념의 종합부동산세를 신설하면서 현재의 공시가격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10년 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에서는 공시가격을 현실화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공시가격 현실화의 배경이 됐던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67억5000만원에 강남구 삼성동 자택을 매각했다. 이 저택의 공시가격은 2017년 초 기준 28억7000만원이다. 시세 대비 공시가격의 비율(시세 반영률)이 42.5%였다. 이는 바로 옆의 시세 19억원, 공시가격 13억 400만원인 롯데캐슬킹덤 전용면적 170㎡의 시세 반영률이 68.6%와 비교되며 논란을 이끌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이 점을 적극 공략해서 '공시가격 현실화'라는 '괴이한' 용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윤석열 정부에도 그대로 이어져 2023년부터 증여세, 상속세 부동산분야는 물론 지방세인 취득세까지도 실거래가격(시가 인정액)으로 세금이 매겨진다. 취득세는 실제 거래 이후 내야하는 것인 만큼 과세 표준이 되는 실거래가격이 있다. 하지만 증여세나 상속세 역시 '남의 집 거래가격'으로 세금이 매겨지는 셈이다.
하지만 보유세는 다르다. 내가 집을 팔지 않아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데도 나오는 세금이 보유세다. 노무현 정부 이전 부동산 보유세를 매기는 기준은 국세청 기준시가였다. 당시 부동산 보유세는 국세가 없었기 때문에 기획재정부나 국토교통부가 직접 나서지 않고 국세청이 '공시지가'를 바탕으로 지방세의 과세 기준을 만들었다. 이는 각 지자체가 재산세 과세표준으로 활용했는데 재산세 과세표준은 실거래가 추정액의 60% 이하였다. 이 가격이 크게 바뀐 시기가 2005년 세계 유일의 국세 부동산 보유세인 종합부동산세가 탄생한 때다.
결국 실거래가를 적용할 수 없는 보유세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공시가격을 올려야한다. 이 때문에 공시가격을 실거래가에 비슷하게 맞추는 '현실화'를 추진하게 된 것이다. 즉 공시가격 현실화란 세금 인상을 위한 재료 그 이상 그 이하 아무 것도 아니다.
그리고 세금을 올리는 것과 공정 과세 역시 상관관계는 없다. 저가 주택은 공시가격을 낮추고 고가주택은 올리는 행위 없이 모든 주택에 대해 현실화를 추진했기 때문이다. 단지 시세를 알기 어려운 단독주택에 대해서만 현실화율 목표치가 아파트보다 낮을 뿐이었다.
무릇 모든 국가 정책과 제도는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공시가격 현실화'라는 허울 좋은 단어가 생겼을 것이리라. 하지만 이런 식의 대국민 눈속임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 필요에 따라 부동산 보유세를 올리기 위해 공시가격을 올리려면 차라리 공시가격 인상이라는 용어를 써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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