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안전특별법, 발주자·시공자 등 권한에 맞는 책임 강조
업계 "과징금·영업정지 처분 과도해"
노동계에선 중대재해 줄이려면 꼭 필요한 법안이라 주장
입장 차 명확… 국회서 심도 있는 논의 이뤄질 듯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건설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기업이 벌어들인 연간 매출의 3%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1년 영업정지 처분을 내려야 한다는 내용의 '건설안전특별법'이 국회에 등장했다. 사업자 안전관리 책임을 제도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등장한 법안이지만, 건설업계에선 가뜩이나 유동성 부족으로 휘청이는 다수 기업의 줄도산으로 이어질 것이란 의견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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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사망사고 관련 형사처벌 규정. [그래픽=홍종현 미술기자] |
◆ 국회 세 번째 등장한 건설안전특별법… 업계 '초긴장 모드'
4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정현·손명수·윤호중 의원 등 10명과 함께 '건설안전특별법'을 대표발의했다. 현재 국토교통위원회에 회부돼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문 의원은 발의 이유로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발주자나 시공자 등 상대적으로 권한이 큰 주체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하지만, 실제로는 하수급 시공자와 건설종사자들이 지는 경향이 있다"며 "발주자는 적정한 공사비용과 공사기간을 제공하며 시공자가 안전관리를 책임지도록 하는 등 건설공사 참여자별로 권한에 상응하는 안전관리 책임을 부여하고, 이를 소홀히 해 사고가 발생하면 적절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적었다.
이어 "사고손실 대가가 예방비용 보다 크다는 인식을 확산해 안전관리에 우선적 투자를 유도하는 방안"이라며 "건설공사 특수성에 맞게 안전한 작업환경을 조성해 건설사고 위험성을 낮추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발의된 법안에 따르면 사망사고 발생 시 건설사업자, 건설엔지니어링사업자, 건축사 등 사업자는 최대 1년 영업정지에 처해지거나 연매출의 최대 3% 과징금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이때 개별 공사의 도급액이 아닌 전체 기업 매출을 기준으로 한다.
발주자, 설계자, 시공자, 감리자 등이 법에 따른 안전관리 의무를 소홀히 해 사망 사고가 발생했음이 드러나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사실상 건설공사에 관여하는 대부분의 사업자가 형사처벌 대상으로 묶이는 셈이다.
건설업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평균 영업이익률이 3% 내외인 상황에서 매출액 기준으로 3%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기업 존립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공사 참여 전반에 형사책임이 부과되는 구조의 경우 실무 현장에서 책임이 불분명한 상태로 확산되면 오히려 안전관리의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법이 발의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교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38명의 사망자를 낸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를 계기로 발의한 바 있다. 이후 건설현장 사고 관련 처벌 규정을 명시하고 있는 타 법과 중복된다는 이유로 노동계와 건설업계, 관계기관 등 의견을 청취한 후 2021년 재발의했다. 그러나 약 2년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다가 결국 폐기됐다.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반대하는 이들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으로 제재가 가능함에도 무리하게 새 법을 만드는 것은 이중규제에 해당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 의원의 재발의 법안이 국회 계류 중이던 2022년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국내 기업 193개사를 대상으로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필요성을 질의한 결과, 응답 업체의 85.0%가 반대 의사를 표했다. 그 이유로는 '산업안전보건법 규정과의 중복'(42.1%)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별도 법률 제정 불필요'(40.9%) 응답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의무 위반으로 사망자 발생시 시공자에게 부과하는 1년의 영업정지나 매출액 3%에 해당하는 과징금에 대해도 92.0%가 '불합리하다'고 답했다. 이들 중 약 3분의 1이 '행정제재 부과 시 신규수주 중단으로 업계 퇴출'(31.8%)에 대해 걱정의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형법에도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사업주 책임을 묻는 형사처벌 규정이 있다. 이 같은 중복 처벌이 법적으로 문제되진 않는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하나의 죄를 여러 법으로 처벌하더라도 요건 등 각 법령마다 구체적인 요건이 다르기에 입법은 가능하다"며 "다만 중복되면 양형에서 어느 정도 형량이 조정될 순 있다"고 말했다.
◆ 건설업계 vs 노동계 첨예한 입장 차… 신중한 입법 요구
현장 일선에서도 거센 반대가 예상된다. 최근 건설업계는 고물가로 인한 수주 부진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등을 이유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어서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 결과 건설업의 부실 확률은 2019년 3.3%에서 2024년 6.1%로 최근 5년 사이 약 2배 가까이 급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건설업 업황과 자금사정 BSI(기업경기조사)는 40 전후로 하락하면서 건설업 전반의 체감경기와 심리가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에 근접했다. 문 닫는 회사도 역대급으로 많은 상황이다. 올 1월부터 6월까지 접수된 폐업 신고 중 '사업 포기'가 82%(250건)를 차지했다. 회사 도산(8건)과 경영악화(5건)를 포함하면, 경기 침체로 폐업한 건설업체는 전체의 87%에 이른다.
한 대형 건설업체 관계자는 "지금도 원가율이 95%를 넘기면서 '뭘 지어도 남는 게 없다'는 말이 나오는데, 사망사고 1건으로 매출액 3%를 내야 한다면 한 해 벌어들이는 영업이익이 전부 과징금으로 빠질 수 있다"며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것보다 기존 중대재해처벌법 등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토교통부 시공능력평가 10위권 대형 건설사 중 매출원가를 공개하지 않은 삼성물산 건설부문을 제외한 9개 업체의 올 1분기 평균 원가율은 91.2%였다. 전년 동기(92.3%)보다는 소폭 줄었으나 4년 연속 90%대를 유지했다. 수주를 통해 100억원을 벌었을 때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8억8000만원이라는 의미다.
영업정지와 과징금 중 어떤 것을 선택해도 회사 존폐에 즉각적인 영향을 받는 중소 건설사의 근심은 더욱 크다. 매출이 안 나와 자본금이나 기술 인력, 보증 가능 금액 등 건설업 등록 기준도 충족하지 못하는 업체가 수두룩한데, 여기서 추가 규제까지 받게 되면 사실상 문을 닫아야 해서다.
임우택 경총 안전보건본부장은 "영업정지에 따른 사업중단을 막기 위해 과징금 처분을 선택하더라도, 그 기준이 사고현장과 관련 없는 매출액이다 보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금액이 부과돼 폐업 수순을 밟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노동계는 전체 산업재해 사망 사고의 과반수가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만큼 보다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 589명 가운데 46.9%(276명)가 건설현장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한국건설안전학회 관계자는 "건설안전특별법이 제정되면 모든 사업 참여자의 안전 책무가 명확해지면서 사고로 인한 시민의 사회적 비난과 불안이 해소되고, 관련 규정의 단순화로 법령의 준수율도 높아질 것"이라며 "안전을 우선한 건설활동으로 발주자의 과욕을 자제시켜 건설 부조리를 근절하고, 수급인의 보호로 경제의 민주화도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는 법안 통과시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거칠 방침이다. 현행 중대재해처벌법도 자리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규제롤 도입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표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건설안전특별법이 본회의에 상정되려면 국토교통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거쳐야 한다.
chulsoofrien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