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년 시절 시인 꿈, 팔순 앞두고 실현
오랜 세월에 걸친 연륜의 힘과 지혜 담아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문학소년 시절에/ 시인이 되고 싶었지요.// 소녀에게 편지를 썼지요.// 꽃씨를 넣어/ 흙벽돌을 만들어/ 초가 한 칸을 짓고/ 봄비에 젖으면/ 우리 집은/ 온통 꽃대궐이 된다고…// 소녀가 도망갈 수밖에요.// 살만큼 살았으니/ 그 꽃씨를 가슴에 심어/ '마음의 꽃'을 피우고 싶었네요.' -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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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소설가 김홍신의 생애 첫시집 '그냥 살자'. [사진 = 작가] 2025.07.16 oks34@newspim.com |
밀리언셀러 소설 '인간시장'의 작가 김홍신이 서정시집 '그냥 살자'(작가)를 출간했다. 이어령과 박경리가 시를 쓰고 시집을 낸 것만큼이나 새롭고 또 놀랍다. 김홍신은 '인간시장'을 필두로 한 장편소설들로 낙양의 지가를 올린, 한국 문학 최초의 밀리언셀러 작가다. 그가 문학소년 시절 꿈을 실현하기 위해 팔순의 나이를 앞두고 처음으로 시집을 펴낸 것이다.
김홍신 시집 '그냥 살자'에는 우주 자연과 인생 세간을 보다 큰 눈으로 관조하면서, 오랜 세월에 걸친 연륜의 힘과 지혜를 담아내고 있다. 그러기에 그의 시를 읽는 일은 우리 인생의 경륜을 연마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자신의 생애와 문학 전반을 디딤돌로 하여 제시한, 독자를 위한 각성과 성찰의 디딤돌로서 소임을 다하는 시의 세계다.
'하늘에게 어찌 살라느냐 물으니/ 대나무처럼 살라 하네/ 대나무는 가늘고 길어도 쓰러지지 않아/ 마디 있고 속 비어 그렇다네/ 인생의 고비가 마디요/ 속을 비우는 건 마음 내려놓는 거라네' -'대바람 소리' 부분. 이 시집의 첫 번째 시 '대바람 소리'의 첫 연이다. 대나무에 마디가 있고 속이 비어 있기에 가늘고 길어도 쓰러지지 않는다는 언표(言表)다. 시인은 곧바로 대나무의 모형을 인생사의 면모에 대입한다. 뒤이어 둘째 연에서 대나무에게 물으니 '바람'처럼 살라 하는데, 이 모두를 넘어서는 힘은 '사랑과 용서'에 있다는 것이다.
'술잔에 뜬 별을 마신다/ 별이 웃으며 심장 속으로 들어왔다/ 심장이 벌렁벌렁 춤춘다/ 술잔은 시시덕거렸다' - '술잔이 비었노라' 부분. 술잔에 달이 뜨거나 별이 뜨면, 이는 매우 고급한 풍류의 시심을 증명한다. 시인은 술잔에 뜬 별을 마신다. 자연과 시적 화자 또 우주와 시적 화자가 물아일체의 지경으로 진입하는 이 순간부터, 하늘과 별과 달이 함께 호응한다. 이를테면 시인이 시공을 초월하는 물심일여의 연대를 꿈꾸는 형국이다.
'품었던 욕망은 참으로 부질없나니/ 얼기설기 쌓은 인연은 낙엽 되어 흩어지더라/ 켜켜이 늘어붙은/ 애착은 가소롭고/ 사람은 본디 짐승이었다더라/ 참사랑과 따스한 용서와 자유를 누리기에/ 사람이 되었다 하더라' - '사람으로 태어나 무엇을 남길 텐가' 부분. 이 시의 서두에서 시인은 '인생은 짧은데 흔들리며 산 세월은 왜 그리 길었는가'라고 탄식한다. 더불어 '사람은 본디 짐승'이었으나 '참사랑과 따스한 용서와 자유'로 인하여 사람이 되었다고 술회한다. 이렇게 보면 그가 품고 있는 인생관은 언제나 가치 지향적이고 순방향적이며, 동시에 그러한 사유가 시로 발현되고 있다.
'가슴에 꽃 한 송이 키우고/ 머릿속엔 부싯돌 두 개를 넣어 두라/ 꽃을 피우기 위해/ 그대 가슴은 붉은 피 흘려야 하고/ 먹구름이 몰려들어 모두 젖어야 하고/ 세포가 폭발하듯 고통 삭여야 한다' - '청춘들아' 부분. 이 시는 시인이 청춘에게 전하는 사랑과 격려의 말이다. 일찍이 호머가 '델로스 섬에서 아크로폴리스 신전 곁에 하늘을 향하여 땅으로부터 치솟은 종려나무를 보는 것 같다'고 칭송한, 그 청춘들에게 주는 고언(苦言)이다. 시인은 종내 청춘이 엄혹한 단련을 거쳐서 제 몸과 제 혼을 온통 불사르는 '거대한 천화(天火) 한 송이'가 될 것으로 규정하고 그렇게 권면했다.
'회초리 꺼낸 울 엄니/ 버선발 위로 치맛단 올리고/ 회초리를 내 손에 쥐어주었네/ 자식 잘못 가르친 어미를 때리라며// 아이고 울 엄니 왜 이런다냐/ 정녕 새 엄니는 아니네/ 나는 회초리 내던지고/ 엄니 품에서 목 놓아 울었지' - '울 엄니 1' 부분. 철딱서니 없는 시절에 다리 저는 아이를 놀린 화자에게 '울 엄니'는 엄벌을 내렸다. 아들에게 어머니 자신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치라는 것이다. 어디서 익숙하게 보던 현모(賢母)의 그림이 아닌가. 다른 애들에게는 없는 이 징벌에 '새 엄니'인가 반문도 해 보지만, 마침내 회초리를 내던지고 그 품에서 목 놓아 운다.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어머니의 참사랑이다.
'사랑이라는 별이 있다네요/ 누구나 사랑앓이를 하지요/ 사랑병은 황홀한 통증/ 도깨비 닮아/ 툭 건들기만 해도 달라붙어/ 드잡이를 하지요' - '사랑앓이' 부분. 사랑이라는 별이 있고 누구나 사랑앓이를 한다는 시적 진술은, 갑남을녀를 막론한 사랑의 보편성을 말하고 있다. 사랑병이 쉽게 드잡이를 한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시인은 사랑을 두고 다음 시행(詩行)에서, 괴이쩍기로 지옥 같고 살갑기로 엄마 품속 같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이 사랑의 얼굴은 우리 삶의 어디에나 있고, 어느 부문에나 개입한다. 사정이 그러하니 사랑이야말로 인생길의 변함없는 도반(道伴)인 셈이다.
김종회 문학평론가(한국디지털문인협회 회장)는 평설에서 "김홍신의 시에는 언어의 기교나 관념의 유희가 없다. 소박하고 조촐한, 그러나 품격 있고 의미 깊은 인생론의 언사들이 오랜 격언처럼 줄지어 있다. 이 시의 행렬은 그가 살아온 세월의 경과와 그 연륜의 원숙성을 반영한다. 그의 시들은 주로 구어체의 어법을 빌려 독자와의 소통을 도모하며, 이는 한결 친숙하고 편안한 공감을 촉발하는 데 유익하다. 왜 김홍신이 이와 같은 시를 쓰고 시집을 간행하려 할까. 이야기의 형식으로 풀어서 말하는 소설의 발화법을 한편으로 밀쳐두고, 비유와 상징과 압축의 방정식을 동원하는 시의 기법이 그에게 절실했던 까닭이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곧 김홍신 시의 존재 양식을 말하는 것이 된다"고 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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