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 역대 최대
'민생 범죄' 점점 교묘해져...피해 방지 노력해야
[서울=뉴스핌] 고다연 기자 = "내일 오후에 법원 등기 받는 거 가능하세요?" 몇 달 전,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스스로를 법원 직원이라고 밝힌 사람이 대면으로 등기를 받을 수 있냐며 몇번이고 물었다.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에, 법원에서 받을 등기도 없었지만 순간 당황했다. 뒤늦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고 전화를 끊었다. 검색해보니 요즘 유행하는 보이스피싱 수법이었다. 대면으로 법원 등기를 받을 수 없다고 하면 악성 앱 설치를 유도한다고 한다. 당연히 다음날 등기나 연락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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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연 사회부 기자 |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8545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제 보이스피싱 범죄는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범죄가 되었다. 지인들에게 보이스피싱 이야기를 꺼내자 너도나도 피해를 입을뻔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전화를 이용한 사기 외에도 피싱 문자는 이제 한주에도 몇 번 꼴로 마주하곤 한다. "네 휴대폰이 망가졌다는 문자를 받았는데 피싱인지 아닌지 몰라 전화했다"는 가족의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
여기에 사기 범죄를 비롯한 민생 범죄의 본질이 있다. 피싱 범죄 종류와 수법들을 알고 있어도 막상 '내가' 그런 종류의 문자나 전화를 받으면 순간 당황한다.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경찰, 법원 등을 사칭한 전화를 받고 두렵고 긴장하는 마음, 가족의 휴대폰이 망가졌다는 문자를 받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이용하는 것이다. 약해지고 판단력이 흐려지는 순간을 노린다는 점에서 '악질'이다.
평범한 국민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민생 범죄'들은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대중에게 개념과 수법이 널리 알려졌음에도 완전 예방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가장 약한 부분'을 파고든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마약 등 다른 범죄들과 결탁해 몸집을 키우기도 한다. 대다수 피해자는 일반 국민들이다. 사기를 당한 후 스스로를 탓하는 경우도 있다.
며칠 전, 캄보디아 거점의 기업형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 검거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30 젊은 세대가 많이 가담했다. 취업이 어렵고 절박한 마음을 이용해 '고수익'을 보장하며 '허위 취업정보'로 조직원들을 모은다는 분석도 있다. 법원에서도 사기 조직에 중간책 등으로 가담해 법정에 서는 젊은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알고 합류했든 모르고 합류했든 범죄 가담 사실이 있다면 철저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기 범죄 조직의 근본 자체가 '약한 마음'을 이용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정작 조직의 '총책' 등은 검거가 어렵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보이스피싱 등 수십년간 사회에 자리잡은 민생 범죄를 하루아침에 뿌리 뽑는 것은 어렵다. 강력한 처벌과 범죄수익 몰수, 진화하는 수법에 대한 대응을 통해 피해를 최대한 막는 것이 필요하다. '약한 부분'을 이용당해 억울한 국민들이 없도록 여러 관계 기관들이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gdy1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