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반부패 기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입법을 추진해 국내외에서 엄청난 역풍에 직면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사태를 바로 잡겠다고 긴급 진화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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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우 로이터=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2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시민들이 반부패 기관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검찰총장이 독립 기관인 국가반부패국(NABU)과 부패 사건 기소를 담당하는 반부패특별검사실(SAPO)을 대상으로 더 많은 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법안에 서명했다. 2025.07.24. ihjang67@newspim.com |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저녁 TV 연설을 통해 반부패 기관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새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이 법안에 반부패 기관의 독립성을 위한 모든 기준이 마련될 것"이라고 했다.
검찰총장이 독립 기관인 국가반부패국(NABU)과 부패 사건 기소를 담당하는 반부패특별검사실(SAPO)에 대해 더 많은 감독권을 행사하도록 규정한 법안에 서명한 지 하루 만이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전쟁 발발 이후 그의 리더십에 가장 가혹한 타격을 가한 일련의 사태 이후 급격한 입장 전환을 단행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젤렌스키 정권의 반부패 기관 감독 강화에 크게 반발했다.
22일 집권 여당이 해당 법안을 압도적 표결로 통과시키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하자 시민들은 수도 키이우의 마이단 광장 등에 몰려들어 법안 반대 등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는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기습 침략 이후 처음이었다.
시민들은 젤렌스키 정권이 반대자를 탄압하고 권력 강화에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수사·안보 당국은 NABU를 70여차례 수색하는 등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고 직원 1명을 러시아 간첩 혐의로 체포했다.
시민들은 2013~2014년 '마이단 혁명'을 통해 친러 독재 정권을 쫓아내고 민주와 자유, 인권을 지켜냈던 우크라이나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무시하고 과거 어두운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 아니냐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NYT는 "마이단 혁명으로 탄생한 NABU와 SAPO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부패 척결 및 EU 가입 열망의 중심이었다"며 "이 기관들은 외국 원조를 보호하는 데 일조했고, 우크라이나에 재정 지원을 제공하는 국가들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고 했다.
시위대 규모는 23일 더욱 커졌다. 현지 매체 키이우 포스트는 "(키이우) 시위 참가자가 점점 더 많이 늘고 있다. 오늘은 전날의 약 3배인 1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모였다"며 "이는 유로마이단 혁명 이후 최대 규모"라고 말했다.
반부패 활동가 다리아 칼레뉴크는 "지금은 젤렌스키가 계엄령과 전쟁의 현실을 악용하여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순간"이라며 "그는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침묵시키고 반부패 기관을 무력화하고 정치적 반대자들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도 강력한 우려를 표명했다.
우크라이나 주재 주요 7개국(G7) 대사들은 21일 우크라이나 사법 당국의 NABU 수사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한다"는 성명을 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23일 젤렌스키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갖고 강한 우려와 함께 사태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특히 EU는 이 같은 젤렌스키 정권의 행보가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EU 대변인은 "법치주의 존중과 부패와의 싸움은 EU의 핵심 요소"라며 "가입 후보국으로서 우크라이나는 이같은 기준의 충족이 기대된다. 이는 타협의 여지가 없는 부분"이라고 했다.
요한 바데풀 독일 외무장관은 엑스(X·옛 트위터)에 "우크라이나 반부패 기관의 독립성을 제한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EU 진출 길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