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회 이미지21 대표 (미래기술문화연구원장)
"진짜 아기인 줄"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실제 신생아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정교하게 제작된 아기 인형을 입양하듯 들여 돌보는 문화가 번지고 있다.
'리얼베이비돌(Real Baby Doll)'이라는 불리는 이 실리콘 맞춤 인형의 한 개 가격은 5천~1만 달러. 고가임에도 많은 구매자들이 '치유의 도구' 혹은 '마음의 위안'이라며 찾고 있다. 유튜브와 틱톡에는 인형에게 우유를 먹이고 외출을 시키는 '가상 육아' 브이로그가 수십만 조회 수를 기록한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유산이나 사고로 자녀를 잃은 이들, 외상후장애스트레스장애(PTSD), 알츠하이머,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인형을 돌보는 행위가 일종의 심리치료처럼 트라우마 극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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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민회 이미지21 대표. |
하지만 이미 브라질 등 일부 국가에서 공공장소에 리얼베이비돌 반입을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됐을 만큼 거부감 또한 만만치 않다.
퇴근 후 최고의 말벗이 되어주는 챗봇부터 품에 안겨 있는 리얼베이비돌까지 감정과 관계에 끼어드는 '존재' 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사람이 만들어낸 '정서적 대체물(emotional surrogate)'이다. 즉 인간관계나 사람 간 정서적 소통을 대신하는 존재다. 정서적 대체물은 기술의 진보가 만들어낸 따뜻함처럼 포장되지만 오히려 우리 사회 내면에 깊이 스며든 감정의 구조적 결핍을 보여주는 단면에 가깝다.
본래 사람은 분노, 상실, 고립 같은 감정의 원인과 직접적으로 마주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할 때 감정에너지를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접근 가능한 대체 대상으로 이동시켜 정서적 균형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상사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집안에 있는 무생물(인형, 베개) 등에게 풀거나 연인을 잃은 상실감을 오히려 반려동식물에 애정으로 쏟아붓는 것과 같다.
하지만 최근 눈에 띄는 정서적 대체물의 확산은 적잖이 우려스럽다.
우선 그 원인이다. 팬데믹으로 인한 고립과 단절, 디지털 관계에서 오는 소통의 질적 저하, 불안정한 노동 등은 사람들이 정서적 안정과 소속감을 찾기 어렵게 만들었다. 고령화, 1인 가구, 미혼 가구의 증가 같은 가족 구조의 변화 역시 외로움을 가속화한다. 만성적인 외로움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정서적 대체물은 일종의 진통제처럼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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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유비텍 공식 홈페이지] 중국 로봇 개발사 유비텍(優必選∙유비쉬안∙UBTECH, 9880.HK)이 출시한 중국 최초의 상용화된 전신형 이족 휴머노이드 로봇 워커(Walker). |
경제적인 부담과 감정 소모를 피하려는 흐름도 정서적 대체물 확산의 한 요소다. 사람 간의 정서적 교류에는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고 상호성이 요구된다. 리얼베이비돌은 천문학적인 양육비용을 들이지 않고 돌봄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편이 될 수 있다. 바쁘고 지친 현대인에게 AI챗봇 연인은 감정의 줄다리기가 없어도 되는 이상적인 대상이다. 갈등도 없고 언제든 내가 중심이 되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이들 정서적 대체물을 더 편안하고 더 안전하게 느낄 수 있다.
현실과 경계를 흐리는 SNS와 콘텐츠 산업 역시 정서적 대체물을 새로운 영역의 소비 시장으로 만들고 있다. 베이비 돌을 입양하는 브이로그, 챗봇과의 가상 연애 담 같은 영상이 엄청난 조회수를 올리며 '나도 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부추긴다.
현실의 책임이 필요치 않은 모성부성의 경험이나 자기 중심적인 연인 관계는 충분히 흥미롭지만 현실 관계의 정체성 마저 흔들 수 있다. 특히 어린 세대가 이러한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부모 역할, 사랑, 관계의 본질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갖게 될 위험성도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정서적 성숙을 방해하고 사회적 연대를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자기 감정을 알아채고 다루고 조절할 줄 알아야 타인과의 감정 교류가 가능하다. 감정적 상호작용 경험이 부족하면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미숙한 사람으로 남게 되고 사회적 관계 형성이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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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유비텍 공식 홈페이지] 중국 로봇 개발사 유비텍(優必選∙유비쉬안∙UBTECH, 9880.HK)이 출시한 판다 휴머노이드 로봇 유유(優悠). |
우리가 기술을 통해 취하고 있는 '감정 노동의 최소화'는 어쩌면 감정 인식력을 약화시키는 독 인건 아닐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01년 영화 A.I. (Artificial Intelligence) 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학습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설계된 소년 로봇 데이빗이 등장한다. 병에 걸린 아들을 잃은 부부(모니카와 헨리)가 감정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데이빗을 입양하지만 아들이 회복되어 돌아오자 '데이빗'을 버리는, 정서적 책임 없이 대체물을 사용하는 인간의 모순을 보여준다.
머지않아 외양뿐 아니라 움직임까지도 깜쪽 같은 휴머노이드 아기로봇이 등장하고 지금은 대화 밖에 나눌 수 없는 AI챗봇에게 물성까지 주어진다면 '정서적 대체물(Emotional Surrogate)'은 더 이상 대체물이 아닌 대상이 될 지도 모른다.
우리가 만든 정서적 대체물과 더불어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사람이 왜 그것을 찾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사회적 대응이 필요하다.
"우리는 왜 기계에게 감정을 가르치고 사물을 인간화 하는 걸까?"
기술이 한 걸음 나아갈 때 마다 우리는 잊지 말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하민회 이미지21대표(미래기술문화연구원장) =△경영 컨설턴트, AI전략전문가△ ㈜이미지21대표 △경영학 박사 (HRD)△서울과학종합대학원 인공지능전략 석사△핀란드 ALTO 대학 MBA △상명대예술경영대학원 비주얼 저널리즘 석사 △한국외대 및 교육대학원 졸업 △경제지 및 전문지 칼럼니스트 △SERI CEO 이미지리더십 패널 △KBS, TBS, OBS, CBS 등 방송 패널 △YouTube <책사이> 진행 중 △저서: 쏘셜력 날개를 달다 (2016), 위미니지먼트로 경쟁하라(2008), 이미지리더십(2005), 포토에세이 바라나시 (2007)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