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케미칼·애경 前 대표 사건
1심 무죄→2심 금고 4년→대법 파기환송
[서울=뉴스핌] 홍석희 기자 =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을 이용해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의 파기환송심 첫 재판에서 법원이 검찰에 공소장 변경을 주문했다.
서울고법 형사6-1부(재판장 정재오)는 13일 오후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홍 전 대표·안 전 대표 등의 파기환송심 1차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재판부가 준비기일을 피고인별로 분리 진행해 이날은 홍 전 대표 측 변호인만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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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을 이용해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의 파기환송심 첫 재판에서 법원이 검찰에 공소장 변경을 주문했다. 서울고등법원. [사진=뉴스핌 DB] |
공판준비기일은 본격적인 심리에 앞서 피고인과 검찰 양측의 입장을 확인하고 입증 계획을 논의하는 절차로 피고인의 출석의무는 없다.
재판부는 대법원이 SK케미칼·애경산업과 옥시레빗벤키저(옥시) 사이에 과실범 공동정범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파기했다며 양측에 "기존 공소사실 중 어디까지 인정하나"라고 물었다.
검찰 측은 "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의해도 상대방 가습기살균제의 결함에 대한 인식 가능성이 존재해 피고인의 과실범 공동정범이 인정된다는 취지로 주장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에 홍 전 대표 측은 "과실범의 공동정범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대법원이 명확히 판단했다"며 "그 부분은 기속력이 미치기 때문에 추가로 심리할 실익이 없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해 검찰 측에 "대법원은 판결문 8페이지를 보면 '관련 사건의 피고인과 이 사건 피고인이 서로 상대방 가습기살균제 개발·출시 등을 인식했다거나 서로 연락했다고 인정할 사정도 발견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며 "따라서 이 법원은 그 부분에 기속돼야 한다. 검찰은 과실범 공동정범을 추가로 입증하려면 새로 발생한 사정이 무엇인지 명시적으로 의견서에 밝혀 달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만약 새로운 사정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검찰은 공소장 변경을 검토해야 한다"며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주원료 제품만을 사용한 단독 사용 피해자와, CMIT·MIT 제품과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주원료 제품을 함께 사용한 복합 사용 피해자를 명확히 분리해서 명시하라고 주문했다.
재판부는 안 전 대표의 준비기일을 진행하고 쟁점 사항을 명확히 정리한 뒤 첫 공판기일을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홈 크리닉 가습기 메이트', '이마트 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 뉴가습기 당번' 제품을 단독 또는 복합사용한 피해자 98명이 사망하거나 상해를 입은 사건이다.
홍 전 대표는 2002~2011년 CMIT·MIT 등을 원료로 만든 홈 크리닉 가습기 메이트의 원액을 제조·제공한 혐의, 안 전 대표는 CMIT·MIT 등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해당 제품을 유통·판매한 혐의로 각각 재판에 넘겨졌다.
옥시싹싹 뉴가습기 당번은 옥시가 제조·판매한 제품이다. 앞서 이 사건으로 신현우 전 옥시 대표는 징역 6년을 확정받은 바 있다.
1심은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나 2심은 이들에게 각각 금고 4년을 선고했다. 1심은 가습기 메이트 등 제품의 주원료인 CMIT·MIT와 피해자들의 상해·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은 반면, 2심은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2심은 홍 전 대표 등과 신 전 대표 등이 공동정범 관계에 있으며, 복합사용 피해자그룹의 다수가 옥시 제품 등을 보다 많이 사용했더라도 인과관계가 부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같은 과실범 공동정범 성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어떠한 제품이 개발·출시된 후 경쟁업체가 기존 제품과 주요 요소가 전혀 다른 대체 상품을 독자적으로 개발·출시한 경우에는 사망 또는 상해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정을 공동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볼 여지가 없다"고 판시했다.
옥시 제품의 주원료는 PHMG고 SK케미칼 제품의 주원료는 CMIT·MIT다. 즉 옥시 제품과 SK케미칼 제품은 용도나 용법만 동일할 뿐 주원료 등 주요 요소가 전혀 달라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개량한 제품이라고 볼 수 없고, 각 가습기살균제에 모두 결함 내지 하자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두 사건의 피고인들 사이에 묵시적 의사 연락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원심이 근거로 든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인정하는 형사정책적 목적이나 취지, 소비자들이 주원료의 차이를 알고 구매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점 등은 홍 전 대표 등과 신 전 대표 등의 인식 내지 의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런데도 원심은 두 사건의 피고인들 사이의 공동정범 성립을 인정했고, 이를 전제로 공소시효 완성에 관한 피고인들의 주장을 배척했다. 또 원심은 홍 전 대표 등의 업무상 주의의무위반과 피해자들의 사망 또는 상해 결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지에 관해서도 판단하지 않았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hong9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