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압적인 이란 정권에 대한 분노 표출
국제영화제 '트리플 크라운' 기록한 수작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유력 후보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자파르 파나히는 이란에서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감독 중 한 명이다. 그는 줄기차게 이란 국민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자행하는 이슬람 공화국의 정책을 비판해 왔다. 이로 인해 여러 차례 체포되었으며, 2022년에도 체포되어 7개월간 구금됐다가 단식 투쟁 끝에 석방됐다. 65세의 파나히는 활동 금지 처분에도 불구하고, 이란에서 영화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해외에 배급하는 데 성공했다. 자파르 파나히의 최신작 '그저 사고였을 뿐'(It Was Just An Accident)은 14년 만에 여행 금지가 해제된 뒤 첫 영화다. 당연히 이란 정권에 대한 분노와 맹렬한 비난으로 가득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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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의 한 장면. [사진 = 그린나래미디어㈜] 2025.09.30 oks34@newspim.com |
이 영화에 대한 세계의 반응은 뜨겁다. 제78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선정작으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최고작', '자파르 파나히의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등의 극찬을 받으며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라는 '트리플 크라운' 기록을 세웠다. 최근 막을 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카데미도 이 영화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는 고요한 밤의 정적 속에서 시작된다. 한 남자(에브라힘 아지지)가 임신한 아내와 어린 딸을 태우고 차를 몰고 가다가 길 잃은 개를 들이받는다. 어린 딸은 개를 치어 죽게 한 아버지를 원망하지만 아내는 '그저 사고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자동차가 고장 나고, 차를 고치기 위해 마을을 찾는다. 그가 찾은 집에 있던 바히드(바히드 모바세리)는 삐거덕거리는 의족을 한 채 걷는 남자를 보고 몸서리 쳐지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 의문의 남자가 몇 년 전 자신을 고문했던 정부 검사관이라고 의심하는 바히드는 그를 납치하여 사막으로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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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의 한 장면. [사진 = 그린나래미디어㈜] 2025.09.30 oks34@newspim.com |
복수를 위해 구덩이를 팠던 바히드는 선뜻 실행하지 못한다. 만약 이 남자가 그의 인생을 파괴한 사람이 아니라면? 확신 없이는 무고한 사람을 살해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바히드는 자신과 이란 정권에 의해 비슷한 피해를 입은 다른 사람들을 찾아나선다. 그중에는 결혼을 앞둔 골리(하디스 팍바텐)와 그녀의 남편(마지드 파나히), 이들의 결혼 사진을 찍고 있는 사진작가 시바(마리암 아프샤리),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당장 복수를 원하는 다혈질 하미드(모하마드 알리 엘리아스메르)가 있다. 그러나 그들의 복수는 결코 쉽지 않다.
'그저 사고였을 뿐'은 복수와 도덕적 죄책감에 대한 조용하지만 파괴적인 탐구다. 파나히 감독 특유의 롱테이크와 와이드 프레이밍으로 촬영된 이 영화는 긴장감을 서서히 고조시키며,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고뇌가 프레임 안에서 살아 숨 쉰다. 영화적 장치가 별로 없어서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 결과, 배우들은 멜로드라마로 치닫지 않으면서도 국가 폭력의 감정적 여파를 탐구하는 연기를 선보인다. 마지막 장면은 납치범이 나무에 묶인 채 부인하고, 항의하고, 간절히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울부짖는다. 그 뒤에 결말로 가서는 더욱 충격적인 장면이 기다리는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1980년대 '고문 기술자'로 이름 높았던 이근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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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의 한 장면. [사진 = 그린나래미디어㈜] 2025.09.30 oks34@newspim.com |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른다면서 '우리는 살인자가 아니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라고 말하는 피해자들의 절규가 이 영화의 핵심이다. 파나히 감독의 신작은 여기에 대해 쉬운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관객들에게 고통스러운 답변을 요구한다. 파나히는 이 영화를 통해 이란과 국민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냉소적인 폭력의 악순환을 드러내는 동시에, 영화 예술 형식 밖에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자신의 분노와 격노를 표출할 수 있는 출구를 스스로 마련한다. 10월 1일 전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개봉된다.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