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 경험칙 대입하는 시장
회사채 러시가 촉발한 경계
"안전벨트 없는 로켓 탑승"
'경제 재편' 철도투자 비유도
[서울=뉴스핌] 이홍규 기자 = "다른 기술 인프라의 투자 사이클에서처럼 [일부 기업은] 많은 돈을 잃을 것이다."
인공지능(AI) 시대의 문을 연 주인공이자 AI 인프라 투자 열풍의 한복판에 있는 오픈AI의 샘 알트먼 최고경영자(CEO)가 기술 업계의 설비투자 과열 여부를 묻는 질문에 답한 말(올해 8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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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픈AI의 샘 알트먼 최고경영자(CEO) [사진=블룸버그통신] |
그는 AI에 대해 "기술 자체의 장기 가치는 분명하다"며 선을 그으면서도 "진짜 중요한 기술에는 과잉 기대가 생기기 마련"이라며 과열의 불가피성을 인정했다.
과거 혁신이라고 불렸던 기술들이 '경쟁 낙오의 공포'와 '선점 이익의 기대' 속에서 과잉 투자와 버블로 귀결됐듯 AI 역시 이 법칙에서 예외가 아닐 것으로 본 셈이다. AI 투자에 뛰어든 기업이 모두 살아남는다는 보장은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버블 경험칙의 대입
최근 주식시장이 AI 기술에 대해 '장기적 혁신 기술'이라는 기대와 '과열' 염려의 양가적 감정 속에서 요동치는 것은 과거같은 버블로의 귀결 가능성을 염두에 둔 긴장감의 표현일 수 있다.
시발점은 종래 자체 자금으로 투자하던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회사채 발행에 나서면서다. 과거 버블로 이어진 어느 투자 붐에서나 '채무 상환'과 '수익'의 도래 시점은 항상 일치하지 않았다는 경험칙이 관련 기업들에 대입되기 시작된 것이다.
최근 한 달 사이 주가가 30%가량 폭락한 오라클이 대표 사례다. 오라클은 거액의 회사채를 발행해 AI 인프라를 대폭 확충하겠다고 했지만 관련 인프라의 최대 고객이 될 오픈AI의 계약 이행 여부에 의문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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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비용 추세상 오픈AI의 적자 탈출 예상 시점은 사실상 무기한 밀린 상태다. 혹자는 지금같은 구도라면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 양사의 계약이 중단되거나 축소되면 오라클은 그만큼의 채무 부담과 운영 비용을 홀로 떠안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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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생태계를 구성하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인프라 기업 사이의 복잡한 자본 관계도 불안을 유발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엔비디아와 오픈AI가 축이 되는 AI 생태계의 '순환금융'은 스스로가 '투자→구매 계약'을 반복하며 공멸의 위험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광기' 수준 업계
기업들이 신기술을 계속 쓸지 판단할 때 기준이 되는 생산성 향상은 AI 설비투자 증액 속도에 비해 아직은 떨어진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올해부터 내후년까지 하이퍼스케일러의 설비투자 누적액은 1조1500억달러로 2022~2024년의 2.4배가량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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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금보다 부채가 많아진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자료=도이체방크, 11월18일] |
하지만 일반 기업의 생산성 향상은 아직은 미약하다. 가트너의 'AI 도입 기업 최고재무책임자' 설문 결과에 따르면 매출 증대와 비용 절감을 경험한 곳은 6%와 8% 그친 것으로 보고됐다. AI를 도입해 일은 빨라지고 무언가는 만들어 내지만 정작 '돈'으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이달 초순 대형 데이터센터 콘퍼런스에 참석한 바클레이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인프라 업계 상황은 '광기' 수준이라고 한다. 바클레이스는 당시 현장 관계자 사이에서 '안전벨트 없는 로켓을 타고 있다고 생각하라', '예산은 제약 요인이 아니다', '가능한 최대한 빨리 건설하라'와 같은 말이 오갔다고 했다.
◆철도 버블의 유사성
최근 월가에서는 과열 지적을 받는 AI 설비투자 상황을 두고 19세기 영국과 미국이 경험한 철도 투자 버블에 비유하는 시각이 나온다. 당시 철도는 현재의 AI처럼 경제 전반을 재편할 범용 기술로 여겨졌다.
오픈AI의 사라 프라이어 최고재무책임자도 지난달 하순 사우디아라비아 국제금융회의에서 "믿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인터넷 보급기(닷컴버블 당시 의미)의 투자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며 "현재 상황은 철도 도래의 여명기에 가깝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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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니온퍼시픽의 기관차 [사진=블룸버그통신] |
철도 버블은 당시 산업혁명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석탄·철강의 운송 고비용화에서 비롯됐다. 영국 리버풀-맨체스터 철도가 개통돼 운송 시간을 수일에서 수시간으로 줄이고도 이익을 내자 막대한 자본이 유입됐다. 1840년대 영국에서 철도 투자는 국가 총투자액의 절반을 차지하기도 했다.
열광 끝에는 파산극이 이어졌다. 철도 투자 버블이 뒤늦게 온 미국에서는 1877년만해도 55개사 파산했고 이듬해까지 60개사가 뒤를 이었다. 과잉투자로 수익성이 악화한 가운데 1893년에는 사채 상환 자금이 방아쇠가 돼 유니언퍼시픽, 노던퍼시픽 등 주요 철도회사가 파산했다.
장기적으로는 경제를 재편했다. 버블이 남긴 철도망은 영국 전역을 연결했고, 운송 비용을 극적으로 낮췄다. 또 석탄과 철을 실어 나르며 중화학공업을 성장시켰다. 현대적 기업 경영 기법과 회계 제도 모두 철도 산업의 탄생에서 비롯됐다.
◆버블 부정론도
월가에서 나오는 철도 버블 유사성 이야기는 AI 설비투자 역시 과열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대규모 투자가 유발할 비용 하락과 AI 기술의 보급화는 장기적으로 경제를 재편하겠지만 초점은 누가 살아남느냐에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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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 [사진=블룸버그통신] |
일부는 버블론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AI에는 2차적, 심지어 4차적인 산업적 파급 효과가 있기 때문에 지출과 성장은 지속될 것이라는 관점에서다. 웨드부시의 대니얼 아이브스 애널리스트는 "버블이 아니다"며 "AI용 설비투자 지출이 다음 사이클로 이행할뿐"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미국에서도 AI 도입을 진행 중인 곳은 3% 정도에 불과하다"며 "유럽이나 아시아 등에서의 국가 주도 투자도 이제 막 시작된 단계다"고 했다. 그러면서 "닷컴버블과 비교하면 거품이 붕괴되기 전의 1999년이라기보다 1996년의 시기에 가깝다고 했다.
bernard0202@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