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배상희 기자 = 미국-이란 충돌이 촉발한 '원자재 쇼크' 가능성이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금융시장의 새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유가·금 가격이 이미 단기 급등세를 보이는 가운데, 중동 지정학 리스크가 장기화될 경우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은 '2차 원자재 충격'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향후 원자재 가격 변동성과 글로벌 경제에 미칠 파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AI 도구를 활용해 전문가들의 최신 의견을 취합해보고 이를 바탕으로 원자재 쇼크의 재발 가능성을 예측해 보고자 한다.
◆ 유가, 호르무즈 리스크가 만든 '리스크 프리미엄'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습 이후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주말 사이 6~7% 가까이 뛰며 단숨에 배럴당 70달러대 중후반을 회복했다.
미국 CNN은 에너지 전문가들을 인용해 "개장과 동시에 유가는 급등 출발이 불가피하며, 정제마진과 유럽 가스 가격까지 동반 상승하는 '보편적 가격 점프'가 나타날 것"이라고 평했다.
시장 시선이 집중된 지점은 전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20% 이상이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다. 이란은 과거 분쟁 때마다 해협 봉쇄 카드를 꺼내들었고, 이번에도 해협 인근 군사 충돌과 선박 공격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운임과 보험료 상승이 유가에 추가 프리미엄을 얹고 있다.
태국 SCB CIO는 최근 보고서에서 "기본 시나리오(현실화 가능성 65%)는 단기간 고강도 충돌이 이어지다가 협상 국면으로 전환되며 브렌트유가 70~80달러 박스권에 안착하는 그림"이라고 진단했다. 같은 보고서는 최악의 경우(현실화 가능성 10%)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장기간 폐쇄될 경우 브렌트유가 최대 12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BNEF)도 이란 수출 차질과 트럼프 행정부의 대이란 거래국 관세 부과 가능성을 반영할 경우 "2026년 말 유가가 90달러를 넘어설 상방 리스크가 옵션 시장에서 뚜렷하다"고 진단했다.
글로벌 IB들은 당장은 '리스크 프리미엄 상승 → 변동성 확대' 국면으로 보는 분위기다.
네덜란드 라보연구소(RaboResearch)는 "중동발 공급 차질이 현실화될 경우 원유·LNG 전반에 '에너지 비용 쇼크'가 번지며 사실상 모든 상품·서비스 가격에 파급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단기 급등 뒤 일정 부분 되돌림이 나오더라도, 지정학 프리미엄이 일정 기간 상방에 남는 구조라는 의미다.
◆ 금·은·달러, 전통적 안전자산으로 쏠리는 자금
유가와 더불어 가장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자산은 금이다. 미·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 직후 금 선물은 온스당 5300달러를 상향 돌파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영국계 상품 리서치 업체 인텔렉티아는 "이번 급등은 단순 기술적 돌파가 아니라 '전면전 가능성'을 의식한 포트폴리오 재조정의 결과"라며 "지정학·인플레이션 헤지 수요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FX엠파이어(FXEmpire) 등 글로벌 금융시장 데이터 제공업체들은 금 가격이 5100달러 저항을 상향 돌파하며 5600달러를 향한 중기 레인지에 진입했다고 분석한다. 이들은 "호르무즈 해협, 홍해 등 핵심 항로가 봉쇄될 경우 에너지발 인플레이션 기대와 안전자산 선호가 겹치면서 금의 '이중 프리미엄'이 형성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흥미로운 점은 비트코인이 더 이상 지정학 쇼크 국면에서 '디지털 금'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FXEmpire는 "최근 두 달간 비트코인은 고변동성·유동성 경색 국면에서 오히려 매도 압력을 받았고, 이번 분쟁에서도 자금이 금·현금으로 이동하는 패턴이 재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이는 향후 위기 국면에서 전통적 안전자산으로의 회귀가 강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 단기적 급등세 이어 중기적 고변동성 지속
전문가들은 이번 미·이란 충돌이 단기간 유가·금 가격의 급등을 유발하겠지만, 가격 레벨 못지않게 변동성과 체감 위험도의 상승이 더 큰 이슈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싱가포르계 브로커리지 Axiory는 "이번 주 유가는 이미 6% 이상 뛰었지만, 중요한 것은 하루 변동 폭이 평시의 두세 배로 커졌다는 점"이라며 "주말 사이 추가 충돌 뉴스가 나올 경우 '갭업 개장'이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동 정세가 예측 불가능한 만큼 시장은 '뉴스 헤드라인 매매'에 가까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ING는 최근 코멘터리에서 "미·이란 협상 전망이 안갯속인 만큼, 유가는 협상 진전 뉴스가 나올 때마다 일부 리스크 프리미엄을 덜어냈다가도 군사 충돌 뉴스에 다시 상방을 테스트하는 패턴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절대 가격 수준보다 변동성 자체가 기업·투자자 의사결정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태국 Phillip Securities는 "현 분쟁은 단기간에 종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이란 내 정권 교체 가능성 등 정치 변수까지 겹쳐 시장이 '재료 소멸'을 가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향후 몇 분기 동안 에너지·귀금속 시장의 고(高)변동성은 기본값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 에너지·귀금속·산업금속 '원자재별 시나리오'
중동 리스크의 직격탄은 에너지와 귀금속이지만, 산업금속·농산물로의 파급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럽·아시아의 경기 민감 업종이 위축되고 글로벌 제조업 지표가 다시 둔화될 경우, 구리·알루미늄 등 산업금속은 '공급 쇼크 vs 수요 둔화'의 힘겨루기 속에서 방향성이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계 자산운용사 로베코는 최근 코멘터리에서 "현재까지는 에너지와 금에 집중된 '국지적 가격 쇼크'이지만, 분쟁이 확대될 경우 글로벌 리스크오프가 심화되면서 위험자산과 경기민감 원자재는 오히려 조정을 받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즉 유가와 금이 뛰는 동시에 구리·철광석은 상대적으로 부진한 '비동조화 장세'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한편 농산물의 경우 직접적 공급 차질보다는 운송·비료 가격 상승을 통한 2차 파급이 관건이다.
라보연구소는 "에너지 가격 상승은 전력·비료·운송비를 통해 식품 가격에 시차를 두고 반영된다"며 "이미 높은 글로벌 식품 인플레이션이 다시 자극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에너지·식품을 중심으로 한 헤드라인 물가 재상승 압력을 의미한다.
◆ 글로벌 인플레이션·통화정책에 미칠 파장
유가 및 원자재 가격 재상승은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경로에도 직격탄을 날릴 수 있다.
인베스팅닷컴은 "브렌트유가 이미 연초 대비 20% 가까이 상승한 만큼, 미 연준을 비롯한 주요 중앙은행이 기대했던 '에너지발 디스인플레이션' 시나리오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과 신흥국은 충격에 더 민감하다. 로베코는 "유럽은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 축소 이후에도 여전히 에너지 가격에 취약하며, 중동발 LNG·원유 공급 차질이 겹칠 경우 2022년과 유사한 '에너지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재부상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시아의 경우, 이란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중국·인도가 대체 수입선 확보에 나설 경우 아시아 전체의 에너지 조달 경쟁이 심화될 수 있다.
이러한 물가·성장 리스크는 통화정책의 '고금리 장기화'를 정당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로베코는 "현 상황이 장기화되면 중앙은행들이 성급한 금리 인하 대신 인플레이션 재가열 여부를 보겠다는 쪽으로 기우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금리·유가·달러 강세가 동시에 나타나는 3중 압력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 투자자·기업에 대한 전략적 시사점
전문가들은 현재 국면을 '방향성 베팅보다 리스크 관리가 우선되는 장세'로 규정한다.
외환 중개업체 페퍼스톤(Pepperstone)은 "중동 긴장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금 가격의 리스크 프리미엄은 한동안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일방향 매수보다는 변동성·포지션 관리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에너지 관련 자산에 대해서는 선택적 접근이 권고된다.
태국 증권사들은 "엄스트림 탐사·생산 업체와 선박·운송주는 유가·운임 상승의 수혜를 보겠지만, 정유사·석유화학 등 다운스트림 업종은 마진 압박과 수요 둔화 리스크를 동시에 안게 된다"고 분석했다. 유가 상승이 단순 호재로만 작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실물 기업 입장에서는 단기 헤지와 중기 조달전략 재점검이 동시에 요구된다.
에너지 집약적 제조업·항공·해운사 등은 옵션·선물 등 파생상품을 통한 가격 헤지 비중을 늘리되, 전력·연료 효율화 투자와 공급선 다변화를 병행해야 한다.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한 만큼, 원자재 가격 자체에 대한 '단기 방향성 맞히기'보다는 비용 구조와 재무 안정성을 개선하는 쪽이 보다 지속가능한 대응책이라는 지적이다.
향후 원자재 시장의 향방은 본질적으로 군사·외교적 변수에 달려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전면전이 아니라도 '만성적 긴장 상태'만으로도 에너지·귀금속 시장의 고(高)변동성이 상당 기간 고착될 수 있다"고 한 목소리를 낸다.
지정학적 변수가 다시 글로벌 자산가격의 핵심 변수가 된 지금, 투자자와 기업 모두에게 있어 리스크 시나리오를 전제한 보수적 전략 수립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pxx17@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