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사전 승인' 선박만 통과해 수송량 급감…블랙록 "유가 150달러 땐 세계 침체"
4차례 쏟아낸 무력 타격 최후통첩 무색…에너지 시설 파괴 시한 10일 연장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호르무즈 해협의 완전한 개방을 촉구하며 무력 대응을 시사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실질적인 해협 통제력을 마지못해 인정하는 모습이다. 에너지 시장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당초 공언했던 '군사 타격 최후통첩' 시한도 슬그머니 연장했다.
26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각료회의에서 이란 정권이 폭 21마일(약 34km)의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할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그간 "어느 시점이 되면 호르무즈 해협은 저절로 열릴 것"이라며 이란의 통제력을 깎아내리고, 불응 시 "빠르고 폭력적으로(quickly and violently)" 대응하겠다던 기존의 강경한 태도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해협 통과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그래서는 안 되지만, 그들이 조금씩 (통제를)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진행 중인 평화 협상 과정에서 이란 측이 중재자인 파키스탄 국기를 단 대형 석유 선박 8척의 통과를 허용하기로 한 약속을 지켰다며, "우리가 올바른 사람들과 거래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 사실상 '거부권' 쥔 이란…사전 승인 선박만 통과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변화는 현재 호르무즈 해협이 처한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란이 누가 해협을 통과할지에 대해 사실상 거부권(veto power)을 행사하면서 선박 교통량은 급감했다.
선박 추적 서비스 마린트래픽(MarineTraffic)에 따르면, 현재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의 '사전 승인'을 받은 선박들만 통과할 수 있는 상태다. 일부 선박은 실제로 통과를 거부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 이전에는 전 세계 원유의 약 20%를 비롯해 하루 100척 이상의 선박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났지만, 현재는 이란 반관영 매체가 주장하는 '우호 국가' 선박 등 극소수만 운항하며 사실상 수송로가 멈춰 선 상태다.
◆ 150달러 유가 경고음…글로벌 경제 후폭풍 우려
이란의 완강한 버티기는 전쟁을 신속히 끝내고 '역사상 최대 석유 충격' 수준으로 혼란에 빠진 에너지 시장을 안정시키려는 백악관의 구상에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적대행위를 종료하고 해협 문제를 타국에 맡기는 방안도 거론되나, 경제적 후폭풍에 대한 우려가 크다.
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적대행위가 끝난 뒤에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위협으로 남아 있다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아 세계 경기침체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국제 원유 기준물인 브렌트유와 미국 WTI 선물 가격은 전쟁 발발 이후 40%가량 급등해 배럴당 100달러 부근을 맴돌고 있다.
◆ 4차례 최후통첩 무색…군사 타격 데드라인 4월로 연장
그간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과 관련해 무려 4차례나 최후통첩을 쏟아냈다.
지난 9일 이란을 향해 "20배 더 강하게 타격하겠다"고 경고한 것을 시작으로, 석유 인프라 제거 위협은 물론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며 독자적인 무력 사용을 시사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주말에는 "48시간 이내에 위협 없이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개방하지 않으면 이란의 여러 발전소를 공격하고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하지만 생산적인 대화가 오갔다는 이유로 이 최후통첩 역시 번복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각료회의에서 당초 예고했던 '에너지 시설 파괴' 계획을 미루고, 협상을 이어가기 위해 시한을 미 동부시간 기준 오는 4월 6일 오후 8시로 10일간 추가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에너지 시장과 해운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이란과 "올바른 합의"가 이루어져야만 비로소 해협이 열리고 안도할 수 있을 전망이다.
kwonjiu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