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넝쿨 한 장만 찍고 오면 안 돼요?” 테이블 위에 올려진 오래된 폴라로이드의 용도를 묻자 대뜸 “결례를 무릅쓰고 부탁 하나 하겠다”고 운을 뗀 그가 물었다.
인터뷰 장소 한편에 있던 담장 넝쿨을 찍고 싶었던 모양인데 빡빡한 일정 탓에 아직 한 장도 못 찍은 모양이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오죽하면 이런 부탁을 할까 싶어 선뜻 그러라고 하자 감사 인사와 함께 급히 밖으로 나갔다. 오래지 않아 모습을 드러낸 그는 회심(?)의 미소를 보이며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잉크가 마르지 않은 사진을 기다리며 배우 유연석(30)과 대화를 시작했다. 물론 이야기의 첫 주제는 자연스레 사진으로 흘러갔다.
“50년 된 폴라로이드를 직접 개조해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사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군대 있을 때죠. 아버지가 오래된 수동 카메라와 사진 원서 다섯 권을 주셨어요. 여가 시간도 있고 하니까 취미를 가져보라고요. 덕분에 저도 제대로 사진에 대해 접하게 됐고 이렇게 취미가 됐네요. 집에 폴라로이드만 다섯 개 정도 있는데 카메라마다 느낌이 달라서 재밌어요. 사실 이번에 ’꽃보다 청춘’(꽃청춘) 촬영 갈 때도 카메라만 들고가게 해달라고 부탁했거든요. 가서 제작진 카메라 빌려준다고 했는데 제가 완전히 속았죠(웃음).”
그간 영화 ‘건축학개론’, ‘늑대소년’,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 등을 통해 나쁜 남자로 각인됐던 유연석이 로맨틱남으로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하기가 무섭게 또 방향을 틀었다. 이번엔 주변의 거센 비난에도 꿋꿋이 자신의 신념을 따르는 연구원이다. 존경했던 선배 배우 박해일과 호흡을 맞춘 신작 ‘제보자’는 줄기세포 스캔들을 다룬 진실 추적극. 유연석은 극중 제보자 심민호로 영화의 타이틀 롤 자리를 꿰찼다.
“타이틀 롤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좀 부끄럽죠(웃음). 제보자로서 하여금 사건을 계속 만들어 나가고 변화시켜 나가서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처음엔 가제니까 개봉 때까지 이어질 거라는 확신도 없었고요. 사실 ‘응답하라 1994’(응사) 끝날 때쯤 주변에서 좋은 작품을 많이 권해주셨죠. 하지만 아무래도 칠봉이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고민하다가 칠봉이와는 상반되는 심민호가 끌렸 거죠.”
모두가 알다시피 ‘제보자’는 지난 2005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스캔들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물론 실제 사건에서 영감만 얻었을 뿐 영화적으로 재구성된 픽션이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영화를 보는 내내 실재 인물을 연관 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다. 유연석 역시 마찬가지일 거로 생각했고, 그렇기에 망설임이 있을 거라 예상했다.
“논란이 됐던 사건이니 알고는 있었죠. 근데 영화를 찍으면서 제가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했다는 걸 알았어요. 저 역시 언론에서 하는 말을 여과 없이 받아드린 사람 중 하나죠. 그 부분에서 반성도 됐고 아쉬움도 남았어요. 촬영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도 하게 됐고요. 앞으로는 내 생각을 갖고 신중하게 사회 문제를 바라봐야겠다 거죠. 하지만 그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해서 출연을 망설이진 않았어요. 배우는 극화된 시나리오의 인물을 표현하는 거잖아요. 배우가 어떤 캐릭터를 수행하는 건데 질타를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요?(웃음)”
그에게 어떤 망설임도 주지 않았던 심민호라는 캐릭터는 난치병에 걸린 딸의 치료를 위해서 이장환(이경영) 박사와 함께 인간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해왔던 연구팀장이다. 하지만 논문이 조작되고 실험과정에서 벌어진 비윤리적 행위에 양심을 가책을 느낀 그는 연구팀을 나와 윤민철(박해일) PD에게 아무도 밝히지 않았던 줄기세포의 진실을 밝히게 된다.
“스스로도 질문을 해봤어요. 과연 진실 앞에 당당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러려고 노력은 하고 살죠. 하지만 심민호는 원칙을 지켜나가는 진실을 왜곡하지 않는 수준이 아니죠. 그는 진실만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걸 포기한 거잖아요. 사실 그건 쉽사리 결론을 못 내리겠어요. 물론 이해는 해요. 본인의 명예나 속물적인 뭔가 얻으려고 제보한 건 아니잖아요. 또 그에겐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아픈 딸아이가 있었고요. 의사 출신이다 보니 생명 윤리에 관해서는 본인에게 특히 엄격했던 거죠. 그거 하나만은 지키고 싶었던 거예요.”
지난해 전국에 ‘응사’ 칠봉이 열풍을 일으켰던 그는 최근 ‘응사’ 손호준, 바로와 함께 ‘꽃청춘’에 출연, 가을 여심을 제대로 흔들었다. 그야말로 핫 아이콘이다. 게다가 영화 ‘상의원’, ‘은밀한 유혹’의 개봉과 ‘그날의 분위기’ 촬영도 앞두고 있을 만큼 충무로에서도 돋보이는 존재다. 하지만 “운이 좋았다”는 그의 말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1년 사이에 기적처럼 일어진 일이라기 보다는 10년이란 시간과 노력이 낳은 결과임을 알고 있으니.
“물론 들어오는 작품이 많아졌고 주변의 기대가 커진 건 확실해요. 많은 것이 달라졌죠. 하지만 제가 달라진 건 없어요.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들을 지키기고자 스스로 채찍질도 하고요. 환경이 변했다고 해서 변한 저를 좋아해 줄 사람은 없죠. 저 역시 힘든 순간도 많았어요.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라면 다른 거 바라지 않고 10년 정도는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죠. 특히나 이 일은 정해진 길이나 승진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무엇을 바라고 시작했다면 못 버티죠. 그렇다고 제가 또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에 저를 믿고 버텼죠(웃음).”
스타덤에 오르고도 욕심 많은 이 남자는 여전히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다. 물론 일에서 벗어난 인간 안연석의 삶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꽃청춘’ 촬영을 마치고 친구 세 명과 함께 터키와 그리스로 여행을 떠났다는 그는 세계 패러글라이딩 3대 명소라는 터키 페티에를 탔던 일화부터 셀카봉 이야기까지 쉴 새 없이 내놓는다. “가을 전어철이라 내일은 소속사 식구들과 낚시를 갈 거”라며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새어나왔다.
“일단 성격적으로 새로운 걸 경험하고 배우는 걸 즐겨요. 그냥 보내는 건 아까워요. 주어진 시간 안에서 잘 쓰고 싶죠. 집에서 마냥 자는 거보다는 하나라도 배우고 경험하는 게 좋잖아요. 전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게 싫어요. 적어도 해보면 후회는 안 하니까요. 괜히 겁먹고 안 하면 분명 나중에 가서 후회하거든요(웃음). 이 일을 계속 했던 것도 어쩌면 같은 이유죠. 물론 앞으로도 이 마음으로 계속 연기를 하고 싶어요. 그렇다고 해서 하나의 역할이라든지 장르, 나잇대라든지 그런 걸 정해놓고 싶지는 않아요. 특정 이미지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모습 보여드릴게요(웃음).”
어깨 깡패, 그리고 거지 엄마 유연석에게는 별명이 제법 많다. 그중에서도 최근의 그를 대표할 수 있는 별명 몇 개를 꼽자면 바로 어깨 깡패와 거지 엄마. ‘어깨 깡패’는 넓은 어깨를 가져서 붙은 별명이고 거지 엄마는 ‘꽃청춘’이 방송된 후 시청자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두 가지 별명 모두 알고 있다”는 유연석은 “좋은 의미니까”라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진짜 깡패는 아니잖아요(웃음). 특히 여자 시청자들이 넓은 어깨에 대해서 좋은 반응을 해주는 거니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더군다나 ‘응사’ 촬영 당시 칠봉이 캐릭터가 야구 선수, 투수였잖아요. 그래서 어깨운동을 많이 하다 보니 그렇게 됐는데 고맙게 생각해요. 거지 엄마 역시 좋은 뜻으로 지어주신 별명이라 감사하죠. 귀엽게 봐주신 거니까요. 사실 막상 ‘꽃청춘’ 촬영할 때는 제가 거기서 그러고 있는 줄 몰랐어요(웃음). 근데 방송 보니까 다르더라고요. 그 속에 저는 그냥 저 자체예요. 유연석이 아니라 온전히 안연석으로 일주일 동안 있었던 거니까요.” 사족을 덧붙이자면, 실제로 마주한 유연석은 화면보다 더 넓은 어깨를 가지 진정한 ‘어깨 깡패’이자 (이제 더는 거지가 아니지만) 엄마처럼 섬세하고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