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 기자] 지난 9월 4일 서울 강남 한국전력 본사. 이날 산업통상자원부 주최로 열린 '에너지 신산업 대토론회'에 참석한 박상진 삼성SDI 사장은 비장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했다.
"일본, 중국이 ESS(에너지저장장치·energy storage system) 시장의 패권을 차지하려고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부터 풍력발전기와 ESS를 함께 설치하면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의 육성 정책이 필요합니다."
박 사장의 이같은 요청을 귀담아 들은 박 대통령은 "매우 좋은 아이디어다. 적극 검토하겠다"라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업계의 각고의 노력 끝에 ESS 수출이 자랑할만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치하했다.
사실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던 시절부터 ESS 관련 부품사업은 LG화학, 삼성SDI 등 민간업체가 주도하며 힘겹게 성장산업으로 키워왔던 부분이다. 정부가 관심을 갖게된 이후에도 관련법 개정이 빠르게 진행되지 못하는 등 육성 지원은 더뎠다.
그 사이 ESS의 높은 가치를 알아 본 전세계 선진국들은 블루오션인 ESS 주도권을 잡기위해 발빠르게 움직였다. 뒤처진 감은 있으나 이날 박 사장의 발언이 박 대통령의 '적극 검토'라는 화답을 이끌어내면서 국내 ESS 관련 부품 산업이 개화기를 꿈꾸게 됐다.
◆ESS '고성장' 사업...배터리 분야 2020년 16조원 규모 형성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력불안이 반복되는 현실에서 ESS 산업은 정책의 핵심인 수요관리 중심의 에너지 정책상 매우 중요하다. ESS 장치 개념은 간단하다. 저장된 전기를 방출하는 것이다. 전력수요가 적은 시점에 유휴 전력을 저장하고 수요가 급증하는 시점에 전력을 공급하는 장치가 바로 ESS다. 핵심은 단연 배터리 기술일 수밖에 없다.

발전 능력과 소비 수요 사이에 완충장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도 ESS이 중요성은 높다. 추가적인 원전 건설없이도 전력난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전력난의 필수 요소이지만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제대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원전 건설보다 경제적 효과가 크다. 현재 1GW 용량의 ESS를 설치하는 비용은 약 1조2500억원으로 같은 용량의 원전 1기를 추가 건설하는데 약 3조원이 들어간다. 원전의 경우 기타 송전선 설치 및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면 3조원을 훌쩍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전 건설 비용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경제성에 위험요소를 감안하면 안전성까지 덤으로 갖춘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세계 ESS 배터리 시장은 날로 성장성이 커지고 있다. 일본 2차전지 조사기관 B3에 따르면 이 사장은 지난 2012년 기준 8억8900만달러(약 1조원)에 불과했으나 올해 32억4200만달러(약 3조5000억원) 수준까지 2년만에 고성장을 이뤘다. 오는 2020년에는 144억7100만달러(약 16조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점쳐진다. 시장조사업체인 네비건트 리서치에 따르면 ESS 산업 전체로는 지난해 16조원 규모에서 2020년 58조원 규모로 연평균 53%의 폭발적인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ESS의 가치를 알아본 전세계 선진국가들은 이미 ESS 주도권을 잡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가장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일본이다. 가전과 반도체, 소형전지 등의 전자왕국의 몰락을 경험한 일본은 시장탈환의 한 방향으로 ESS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2012년 3월부터 ESS 설치 보조금 사업을 추진했고 파나소닉, NEC 등 IT기업들이 다양한 ESS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삼성SDI는 지난 5월에 세계적인 전기부품 제조사인 일본 니치콘에 1조원 규모(약 30만대)의 가정용 ESS를 공급하는 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미국도 ESS 시장 활성화에 팔을 걷었다. 이미 캘리포니아주는 세계 최초로 ESS 설치 의무화 법안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올해부터 공급전력의 2.25%를 ESS로 해결하고 2020년까지 5% 의무설치를 규정해 놨다. 유럽 역시 건설된 태양광주택에 리튬이차전지를 연계하는 Sol-ion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2020년까지 유럽내 태양광발전 시설의 12% 설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에너지저장 기술 개발 및 산업화 전략(K-ESS 2020)을 수립하고, 6조4000억원 규모의 기술 개발 및 설비투자를 실시해 2020년까지 세계시장 30% 점유율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형 배터리 선발주자 LG화학 '질주'..삼성SDI는 '맹추격 중'
ESS 관련 업체로는 세계적으로 LG화학과 삼성SDI, 미국 존슨 컨트롤, 중국 리센, 일본 히타치 등이 대표적이다. 이중 ESS 장치의 핵심인 배터리 사업 선발주자는 LG화학이다. ESS 배터리 분야에서 세계 1위다. ESS 배터리가 자동차 이차전지 셀을 같이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미 2010년부터 이 분야 사업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LG화학이 2001∼2010년까지 출원한 ESS 관련 특허건수는 총 944건으로 같은기간 관련기업 중 출원건수 1위다.
LG화학은 현재 LG전자, GS칼텍스, 한국전력, 포스코 등과 스마트 그리드 실증사업에 참여하면서 태양광 발전설비,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발전 시스템 등에 활용되는 ESS 배터리 연구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해외에서는 지난 2010년 미국 캘리포니아 최대 전력사인 SCE에 가정용 ESS 배터리를 납품한 데 이어 2011년 11월 세계 최대 전력엔지니어링 회사인 ABB와 메가와트(MW)급 ESS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등 시장 공략을 확대하고 있다. 2013년에는 세계 최대 태양광 인버터 회사인 독일 SMA의 차세대 가정용 태양광 ESS 배터리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전력 엔지니어링 회사인 독일 지멘스와 ESS 사업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향후 지멘스가 추진하는 ESS 사업에서 우선적으로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됐다.
삼성SDI가 LG화학을 맹추격 중이다. 최근의 분위기는 오히려 ESS 시장 선도업체로 손색이 없다. 단일 국가로는 ESS 최대 규모 시장인 중국 전력용 ESS 시장에 현지업체인 선그로우와 합자사를 설립해 뛰어들었다. 중국 시안의 삼성SDI 자동차전지 공장 고성능 셀을 사용해 자동차전지 사업과의 시너지도 강화하게 됐다.
또한 전 세계에서 상업용 ESS 시장규모가 가장 큰 북미 지역 공략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10월 1일 미국 GCN사와 북미 최대인 25MWh 규모의 상업용 ESS 공급계약을 체결했고 추가 수주도 이어질 전망이다. 5월에는 니치콘과의 일본 가정용 ESS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약 1조원 규모의 초대형 계약으로, 내년 상반기부터 약 30만 대의 가정용 ESS를 니치콘에 공급한다. 1조원 규모의 공급 계약은 ESS 공급 계약 중 알려진 바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