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동훈 기자] 정부가 재건축 단지에 칼을 빼들었다. 최근 재건축 사업장의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나타난 무상 이사비 지급이나 재건축 초과이익 부담금 같은 금전 제공을 막고 이를 어기면 시공사 선정 취소와 같은 다양한 벌칙을 도입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은 것.
정부가 건전한 재건축 수주를 위해 시장을 관리해야 하는 것은 옳다. 재건축판을 자유방임으로 놔둬서 온갖 혼잡과 비리가 얼룩지도록 해서는 안되는 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라서다.
다만 착한 규제와 나쁜 규제가 있다고 하는데 이번 정부의 재건축 시공사 선정제도 변경은 지나친 규제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조합원들에게 주는 무상 이사비를 보자. 정부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정법)에서 뇌물 공여를 금지한 것을 근거로 무상이사비 지급을 뇌물 공여행위로 규정, 이같은 제도를 마련했다고 한다.
뇌물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직위에 있는 사람을 매수하여 사사로운 일에 이용하기 위하여 넌지시 건네는 부정한 돈이나 물건"이다.
무상 이사비 등은 조합원에게 우리 회사를 선택해달라는 사사로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매수하는 행위는 맞다.
그렇다고 이를 뇌물로 매도하기는 무리가 있다. 우선 '어떤 직위에 있는 사람'이란 뜻을 보자. 조합장이나 집행부 그리고 그밖에 조합원에게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에게만 준다면 이는 뇌물이 맞다. 하지만 무상 이사비는 조합원 전원에게 주는 것이다. 대지 지분 차이에 따라 다소의 가감은 있겠지만 모든 조합원이 받는다.
또 '넌지시'라는 단어도 뇌물을 규정하는 중요 단어 중 하나다. 뇌물은 비밀스럽게 전해진다. 나쁜 돈, 검은 돈이니만치 비밀스럽게 넌지시 전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반포1·2·4주구 사례에서 보듯이 건설사들은 무상 이사비 등을 조합원 전원에게 지급하겠다고 대대적으로 밝히고 있다. '넌지시'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말이다. 이를 뇌물이라고 보는 것은 보편 타당한 설득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무상 이사비를 많이 줘서 생기는 문제를 보자. 정부는 이번 제도개선 방안에서 이사비 등을 많이 주면 조합원 분담금이 오를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럴 수 있다. 조삼모사식으로 이사비 7000만원을 공짜로 준 다음에 분담금에 7000만원 포함시키면 건설사는 이사비 선 지급에 따라 이자 손실만 볼 뿐 원금을 고스란히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조합원들이 원숭이인가? 분담금이 올라가더라도 무상 이사비를 받겠다는 조합원이, 없지는 않겠지만 다수는 아닐 것이다. 즉 무상이사비가 얼마가 됐던 분담금은 건설사가 제시한 그대로여야 무상이사비 지급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판단할 조합원이 대부분이다. 그동안 20년 넘게 재건축 사업이 진행되면서 조합원들도 사업에 대한 지적 수준이 크게 높아졌다. 건설사의 조삼모사식 돈질에 놀아날 만큼 멍청한 조합원은 없다고 봐도 된다.
그 다음으로는 일반 분양가를 올릴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조합원에게 준 돈을 일반분양가를 올려 뽑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정부의 모순이다. 왜냐면 조만간 민간택지 주택 분양가 상한제가 실시되기 때문.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강남을 비롯한 투기과열지구에서 말이다. 그것도 이번 재건축 수주전 과열이 나타나기 앞서인 지난 8.2대책에서 발표된 것이다.
분양가 상한제를 걸어놓고 심지어 주택분양 보증을 무기로 도시주택보증공사가 직전 최고 분양가 대비 10% 이상 분양가 인상을 허락 않는 상황에서 가능한 일인가? 만약 가능한 일이라면 정부의 제도가 잘못된 것이다.
결국 지금 나타난 재건축 수주 과열은 건설사들이 수주 경쟁에서 이기고 랜드마크 재건축 사업을 따내기 위해 회사의 이윤을 빼서 조합원에게 준다는 의미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건설사가 이윤을 줄여 조합원에게 돌려주는 것이 잘못된 일인가? 여론몰이를 하고 제도적으로 치도곤을 할 일인가?
주택 품질에 대해서만 홍보하고 경쟁하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생각도 재미있다. 주택의 품질을 줄이는 대신 이사비를 받겠다는 것은 품질이 낮더라도 싼 물건을 사겠다는 통상적인 구매 심리에 다름 아니다. 판단은 전적으로 조합원의 몫이지 정부가 매를 들고 강제할 일이 아니다.
재건축 사업을 할 때는 정부와 지자체가 정한 건축 허용 범위 안에서 사업을 하고 기존 주택에 비해 올라간 용적률을 받는 조건으로 공공기여를 한다. 정부나 지자체에 엄청난 혜택을 받고 사업을 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강제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시장 경제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제도면에서 보자. 국토교통부는 이번 제도 개선안 가운데 '금품 제공시 건설사 입찰참가 제한 및 시공권 박탈, 과징금 부과' 조항만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개정으로 해결하고 나머지 모든 조치는 국토부 지침 변경만으로 가능하게 했다.
아무리 큰 정부를 지향하는 문재인 정권이라지만 법률이나 하다 못해 국무회의에서 결정하는 대통령령도 아니고 '장관령'인 지침으로 이 모든 규제를 한다는 발상은 과도한 것이 아닌가 싶다.
국토부의 제도 개선을 보면서 과거 70~80년대 나라를 주름잡던 국가보안법이 생각 나는건 왜일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그 법 말이다.
[뉴스핌 Newspim] 이동훈 기자 (dong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