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현경 기자] 어려울 수 있다. 어려움의 정도란 게 현대미술 전시를 봤을 때 느낀 어려움과 어떻게 다르다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그 대신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가상공간을 어떠한 방식으로 현실로 연결되고 맥락을 갖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낯설 수는 있다고.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미술관에서는 아날로그보다 디지털이 더욱 익숙한 시대에 태어난 작가들이 만들어놓은 가상공간 '유령팔' 전시가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박아람 '콜백' <사진=이현경 기자> |
'유령팔(Phantom Arm)'은 사지가 절단된 환자들이 환각을 통해 존재하지 않는 사지의 통증을 느끼는 현상을 뜻한다. 최효준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유령팔' 전에 대해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간의 괴리, 이슈를 다루고 있다"면서 "내년이 월드와이드맵이 나타난지 30년째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환경이 변화하면서 젊은 작가들의 창작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에 시선을 맞춰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사회 이슈는 4차산업혁명, AI, 가상현실이 자리잡았다. 이번 북서울미술관 전시실1, 프로젝트 갤러리1이 바로 가상현실 공간으로 탄생했다. 관람객은 화이트큐브를 현실이 아닌 가상의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작품을 바라보길 바란다. 디지털와 아날로그, 가상과 현실의 키워드를 생각하면서 작품을 바라보면 이해하기 쉽다.
인터넷의 보급과 과학 기술의 발달에 따라 급변하고 있는 창작 환경의 변화와 이에 따른 작가들의 작품 구현방식과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감각과 고민을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초청된 작가 6인은 강정석, 김정태, 압축과 팽창, 람한, 김동희다.
김정태 '정태와' <사진=서울시립미술관> |
김정태 작가는 가상 공간의 오브제를 현실로 옮겨오는 과정을 작품으로 그려냈다. 그의 작품명은 '정태와'다. 2017년 개인전 '피코(PICO)'에서 가상의 시공간 안에 본인 김정태와 같은 인물 제2의 김정태를 만들었다. 가상공간의 제2의 김정태가 현실에 있는 김정태에게 가상공간에 있던 오브제의 정보를 전달해 현실 공간으로 탄생됐다.
겉으로 보기에 그의 작품은 큰 막을 씌워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천 안에는 플로랄 폼(꽃꽂이할 때 쓰는 고정용 스펀지)이 들어있고 그 위에 김정태 작가가 회화한 막이 놓여있다. 검정색은 돌을, 화려한 프린팅은 작가가 그린 것이다. 사실 가상공간에서는 천이 남는 부분 없이 플로라폼에 맞게 들어간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오차가 생기게 되고 사람의 손이 타게 된다. 뒤쪽에 보이는 흰색 큐브는 가상공간에서 설계되는 오브제들이다. 가상과 현실을 이어주는 매개는 결국 사람이 되고, 공간이 변하면서 일어나는 오차도 함께 들어서게 되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람한 '룸타입' <사진=서울시립미술관> |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웹툰 작가로 활동중인 람한의 작품 '룸타입(Room type)'도 흥미롭다. 람한은 주로 SNS를 통해 그림을 공개하고 대중과 소통한다. SNS 창은 그의 작품의 액자가 된다. 크기는 겨우 30인치. 그런데, 이번 '유령팔'에서 인터넷상에서 소비되고 휘발되는 그의 작품이 현실 공간에서는 3m크기의 작품으로 탄생했다. 람한은 "작업할 때 휴대폰, 컴퓨터 스크린을 기본으로 생각하는데, 모니터 3m 크기로 하려니 저에겐 새롭고 고민이 많은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박아람의 작품은 '콜백'이다. 관람객은 북서울관에 이런 크기의 큰 창이 있나 생각에 빠진다. 그간 전시가 시작되면 이 창문은 가벽으로 막아두었다. 박아람 작가는 창문으로 작품을 기획했다. 창문에 블루스크린을 덮었고 바닥에는 검정색 타일을 깔았다. 바깥에는 비눗방울이 바람의 흐름에 따라 휘날려 마치 수족관 같기도 하다. '콜백'은 컴퓨터 모니터의 블루스크린, 전원이 꺼진 휴대폰의 검정색 스크린으로 가득한 현재 우리의 사회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창문 위에는 작가가 적은 숫자가 있는데, 이 의미를 알아보는 것도 박아람 작가의 작품을 보는 재미다.
홍이지 큐레이터, 최효준 서울시립미술관장, 기혜경 북서울미술관 운영본부장(위), 박아람, 람한, 김정태, 김동희(중간), 강정석, 압축과평창(안초롱, 김주원) <사진=이현경 기자> |
기혜경 북서울미술관 운영본부장은 "올해 북서울미술관은 기술의 발달과 매체환경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개인과 삶과 기여, 다가올 미래의 삶에 초래할 변화를 동시대 미술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전시 11개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유령팔'은 그중 4번째 전시다. 기 운영본부장은 "모든 것이 데이터 값으로 치환되는 가상세계와 우리가 밟고 있는 현실 공간, 그리고 디지털 공간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현 시대 작가의 동기화문제, 제작과정과 결과물을 통해 미래를 엿보고자 한다"며 설명했다.
홍이지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에 참여한 6인의 작가들은 태어나서부터 인터넷 환경에 익숙한 세대다. 때문에 그 전과 그 후의 맥락을 살펴보고 이들의 창작환경이 그 전과 어떻게 다른지 2층 전시장에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전시와 1층 전시 '유령팔'을 비교해서 보면 더욱 재밌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령팔'전은 4월3일부터 오는 7월8일까지 북서울미술관 전시실1, 프로젝트 갤러리1에서 열린다.
[뉴스핌 Newspim] 이현경 기자(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