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두번째 아시아 집중 프로젝트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사회를 나누는 기준은 다소 이분법적이다. 남자와 여자, 선과 악, 천국과 지옥처럼.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은 전시 '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를 통해 사회를 구분짓는 요소를 아시아 예술가들의 시선에서 다양하게 해석한다.
'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2017년부터 기획한 '아시아 집중 프로젝트'의 두 번째 전시다. 2018년 개최한 첫 번째 전시 '당신은 몰랐던 이야기'가 아시아를 지리적 정체성에서 벗어나 세계를 바라보는 비평적 관점으로 봤다면, '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는 사회적 연대의 의미로서 '가족'을 통해 지역 내 다양한 문제들을 토론하고 공유한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전시장 전경 [사진=국립현대미술관] 2020.05.21 89hklee@newspim.com |
전시는 개인에서 사회로, 사회에서 개인으로 개념을 확장한다. 개인이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성소수자를 대하는 사회적 해석을 제시한다. 라운지 형태의 설치 공간 '미래의 심상들'을 기획한 이강승 작가는 소파와 책장 등이 마련된 이 곳에서 관람객과 함께 '퀴어적(queer)'이라는 의미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을 가진다. 작가는 '퀴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소수자라는 의미가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 물음을 던진다. 아울러 작가는 인간과 인간의 연결, 이를 기반으로 한 집단적 연대감을 형성하는 '포스트 휴먼'의 개념을 제안한다.
전시 기간 드래그 아티스트 모어와 함께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문학평론가 오혜진과 함께 다양한 관점의 '퀴어' 이슈를 담은 출판물 아카이브도 공개한다. 이어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또는 한국계 퍼포머나 비디오 작가들의 작업을 상영하며 베아트리스 코르테즈와 협업한 관객 참여형 설치 작업 '미래완료'를 통해 미래를 바꾸는 언어의 힘을 다룬다.
듀킴 작가는 '우리의 밤이 미래가 될 때까지'로 점차 경계가 모호해지는 퀴어와 젠더의 개념을 샤머니즘의 시각으로 탐구한다. 작가는 선과 악, 천국과 지옥, 원인과 결과, 주체와 대상 등 이분법적으로 규정하는 사고체계가 종교에서 파생된 '분리' 개념이라고 보고 서구 종교적 관점에서의 동성애 박해와 이에 대립되는 한국 무속신앙의 주술적 수행과 그 역할을 탐구한다. 샤머니즘 의식의 퍼포먼스에 주목해 퀴어와 젠더, 나아가 휴먼과 포스트 휴먼에 대한 이야기를 K팝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보여준다. 가사는 작가가 직접 썼다.
전시 제목에서 '또 다른 가족'은 성소수자들 사이에서 쉽게 통용되는 표현이기도 하다. 가족으로부터 성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한 트렌스젠더들은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트렌스젠더들과 함께 생활하는데, 이 생활 공간을 '하우스'라고 하고 이곳에서 새롭게 관계를 맺은 이들을 '또 다른 가족'이라고 부른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듀킴의 '우리의 밤이 미래가 될 때까지' 2020.05.21 89hklee@newspim.com |
전시에는 한국, 인도네시아, 대만, 일본, 필리핀, 홍콩, 말레이시아, 중국 등 8개국 출신 작가 15팀이 참가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 본인이 속한 공동체와 사회, 국가, 세계로 확장돼 가는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참여작가들은 퍼포먼스, 사진, 영상 등 작품뿐 아니라 포장마차, 농장, 투자 설명 부스, 뮤직비디오 상영, 뉴스룸, 라운드테이블 등 워크숍을 통해 관람객과 적극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일본 작가 와타나베 아츠시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였던 자신의 경험과 사회로부터 지워졌던 개인의 기억을 콘크리트 집을 허무는 퍼포먼스로 보여준다. 홍콩 작가 아이작 충 와이는 홍콩과 중국 우한, 한국 광주에 모인 240명이 참여한 퍼포먼스 영상 '미래를 향한 하나의 소리'를 선보인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 제작된 작품이지만 마치 현재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떠올리게 한다.
인도네시아의 자티왕이 아트 팩토리와 한국 작가 그룹 버드나무 가게가 협업한 '투자로 가는 길'은 삶의 기반인 토지를 투자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자본주의적 사고에 의문을 품고 실제 투자 설명 부스를 세워 관람객과 관련 주제에 대해 논의한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이강승의 '미래의 심상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2020.05.21 89hklee@newspim.com |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박주원 학예연구사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있음에도 사회서는 무의식적으로 '왜 결혼을 안 했어? 자녀는?'이라고 묻는다. 가족의 모양은 여러가지다. 듀크족, 딩크족, 한부모 가정 등이 있지만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면 다르게 보는 시선이 있다. 이번 전시는 사회 안에서 개인의 모양이 다름에도 인정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들 목소리로 전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시 제목에서 '가족'은 사회적 연대로서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소수자라는 배경에 따라, 또 상황에 따라 매각되는 의미가 있다. 주체가 바뀌는 상황이 있는데 각각의 연대를 만드는 게 '또 다른 가족'이다. 이 사회적 연대 자체를 전시에서는 '가족'으로 부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전시장 전경 [사진=국립현대미술관] 2020.05.21 89hklee@newspim.com |
22일 오후 2시에는 온라인 개막식을 진행한다. 코로나19로 입국하지 못한 해외 참여 작가들은 온라인 화상 회의 형식으로 각자 전시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전시 개최를 기념한다.
윤범모 관장은 "아시아 집중 프로젝트의 일환인 '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전은 아시아 현대미술의 다채롭고 역동적인 면모를 국내외에 소개하는 기회"라며 "아시아 지역 작가들의 교류와 신작을 통해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 위기 속에 국제 사회의 연대와 공존, 특히 아시아 지역의 공명을 함께 나누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6일부터 온라인 사전예약제를 통한 거리두기 관람을 진행 중인 국립현대미술관은 화~일요일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