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 따라 합종연횡 불가피…업종 간 경계도 무의미
[편집자주]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만나 차세대 배터리 기술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국내외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세계 최고의 전자·부품 업체와 완성차 톱플레이어의 동맹구도가 형성될 경우, 그 파괴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재계의 라이벌 관계에서 세계시장 정복을 향한 협력자의 길로 나선 삼성과 현대차. 미래를 대비한 새로운 협력전선은 가능할까.
[서울=뉴스핌] 정경환 기자 =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 유례없는 감염병 위기가 기업 경영 전략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생존을 놓고 벌이는 전장에 다시 한 번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는 것인데, 국내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업종은 물론, 적과 아군의 구분 없이 합종연횡하며 코로나19 사태 이후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2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의 만남을 계기로 기업들 간 이합집산이 보다 활발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19 사태 이후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영에 있어서도 기존의 틀에 갖혀 있으면 안 된다는 얘기다.
◆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만남, '포스트 코로나' 생존 위한 협력
지난달 13일 재계 1, 2위 삼성과 현대차가 만나 손을 잡았다. 이 부회장이 충남 천안에 위치한 삼성SDI 사업장에서 정 수석부회장을 만나 양사 간 사업 협력에 대해 논의한 것.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이 사업상 목적에서 따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정 수석부회장이 삼성 사업장을 방문한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 부회장이 정 수석부회장과 전격적으로 만남을 가진 것은 반도체를 잇는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서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적극 육성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해석된다.
삼성 측은 "전고체 배터리는 구조적으로 단단하고 안정화된 차세대 배터리 기술 중 하나"라며 "모빌리티 분야에서의 혁신을 위해 삼성과 현대차 간 협력이 확대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삼성은 최근 1회 충전 주행거리가 800㎞에 이르는 전고체전지 혁신기술을 발표한 바 있다. 차세대 배터리로 주목받는 전고체전지는 배터리 양극과 음극 사이에 있는 전해질을 액체에서 고체로 대체하는 배터리다. 기존 리튬이온전지에 비해 용량을 키우고 안전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이 선대의 껄끄러운 관계를 뒤로 하고 서로 간의 협업을 논의하기에까지 이른 것은 치열해져가는 글로벌 경영 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절박함의 표현일 수 있다.
김영민 LG경제연구원 원장은 최근 '포스트 코로나,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한 포럼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체 간 협력이 필수"라고 말했다.
이어 김 원장은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의 만남을 그 대표 사례로 들면서 "이제까지 중후장대한 설비를 운영해왔다면 이를 파트너와 나누거나 다른 기업들이 가진 R&D 자원을 결합해 더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고 이로써 가격을 높이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 국내외 구분 없이 기업 간 동맹 빈번…산업 간 경계도 무의미
비단 삼성과 현대차만이 얘기가 아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기업 간, 업종 간 경계가 허물어진 지 이미 오래다.
국내에선 현대중공업그룹과 KT, 에쓰오일과 카카오, LG전자와 GS칼텍스가 만나 서로 상대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으며 KB국민은행과 LG유플러스, KEB하나은행과 SK텔레콤·SK텔링크도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한화솔루션(한화큐셀)도 최근 '태양광 연계 에너지저장시스템(ESS) 공동 개발 및 사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 전기차에서 회수한 재사용 배터리를 기반으로 한 친환경 ESS 사업에 나선다.
밖으로 나아가면 삼성전자와 현대차처럼 일본 토요타와 파나소닉도 손을 잡았다. 토요타와 파나소닉은 자동차용 배터리 생산을 위해 합작사를 설립, 2022년 전고체 배터리를 양산한다는 목표다. 또한 중국 전기차 메이커 비야디(BYD)는 미국 포드 모터스에 전기차용 연료전지를 공급키로 했다. 테슬라와 파나소닉이 기가팩토리 합작사를 만들었고, 폭스바겐과 스웨덴 신생 배터리 제조업체인 노스볼트가 합작공장을 추진하는 것 역시 미래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동맹의 좋은 예다.
배터리 뿐만 아니다. 자율주행 분야에서도 기업 간 합종연횡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KT, 카카오 등과 협업에 나섰고, LG전자는 네이버·마이크로소프트와 연합했다. 현대차는 구글과 아마존과도 사업적 교감을 나누고 있으며, SK텔레콤은 전장업체 하만과 협력하고 있다.
아울러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는 2025년 이후에 선보일 차세대 콤팩트카 공용 플랫폼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뭐는 되고, 뭐는 안 되고'라는 게 없다. 필요하면 손을 잡는 것"이라며 "이미 오래된 일이지만, 앞으로는 더욱 더 많아질 것 같다"고 언급했다.
hoa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