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영란 편집위원=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광범위하게 실천되면서 사람간 관계에 대해 성찰할 기회가 많아졌다. 자주 만나던 사람들과의 접속도 줄고, 모임도 확연히 줄면서 '인간 소통의 의미는 무엇일까'하고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데뷔이래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뤄온 화가 김영미(KIM Young Mi)가 서른 번째 개인전을 개최한다. 김영미는 서울 마포구 양화로 메세나폴리스몰 내 리서울 갤러리에서 '철학의 부재'라는 타이틀로 10월20일부터 31일까지 작품전을 연다.
[서울=뉴스핌] 이영란 기자= 김영미 작 '철학자'. 캔버스에 유화물감.2020 [사진=리서울 갤러리] 2020.10.19 art29@newspim.com |
이번 전시에는 인간의 움직임을 다룬 회화와 의인화된 동물을 통해 코로나 이후 암담한 현실에 놓인 현대인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신작 등 30여점의 회화가 내걸린다. 또 코로나 이전에 제작한 회화를 함께 출품해 달라진 전후 상황을 비교하게 했다.
김영미의 작품 속 인물과 동물은 완벽한 선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외곽선이며 인물 형상이 뭉개지거나 흐트러진 듯한 마감이다. 작가는 불완전하고 불가사해한 존재인 인간을 다루며 형상을 일부러 뭉개거나 해체한다. 그리곤 엄격한 틀에 갇힌 인간이 아니라, 때로는 일탈도 하고 헛된 몽상에도 빠지는 불완전한 인간을 다각도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새 강아지 소 등 각종 동물을 인간에 빗대 의인화한 작품은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에 해당되는데 이번에도 책을 들고 있는 부엉이 등의 그림을 통해 절망스런 현실을 특유의 유머로 풍자하고 있다.
김영미는 30년이 넘는 작품활동 내내 인간의 본질과 인간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수많은 인체 드로잉과 인체 묘사를 거듭해왔다. 그러다 10여년 전부터 자신의 어머니 등 가족사를 인간에 대입하면서 비로소 작업의 물꼬가 트이게 됐고, 표현하고자 하는 핵심에 맞닿게 됐다.
이후 작가는 기존 시각예술의 관습에서 벗어나 붓 대신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손가락에 유화물감을 듬뿍 묻혀 인체 형상과 그 내면을 읽어내는 과정을 시도하며 그만의 새로운 조형세계를 구축해왔다. 물감을 찍어 바르고, 뭉개고 다시 입히는 지난한 과정을 거듭함으로써 불안전한 존재이자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여러 면모를 형상화하는데, 이 반복적 행위는 화가 자신과 가족의 보이지 않는 끈을 보여주며 자연순환의 법칙을 드러내기도 한다.
[서울=뉴스핌] 이영란 기자= 김영미 작 '7 Stars BTS'. 캔버스에 유화물감. 72.7x 90.9cm.2020 [사진=리서울 갤러리] 2020.10.19 art29@newspim.com |
근래들어 김영미는 기존의 캔버스 작업과 함께, 종이와 펠트 같은 매체도 적극 활용 중이다. 종이 또는 펠트에 유화로 형상을 그리고, 그 위에 다시 색을 입히면서 레이어를 차곡차곡 쌓아올려 대상에 또다른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 비록 한 사람을 그려낸 작품이지만 관람객의 움직이는 각도에 따라 인물이 다양한 형상으로 다가오며 역동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김영미는 그간 한국은 물론 미국 뉴욕과 뉴저지, 룩셈부르크, 중국 상하이 등에서 초대전을 열며 왕성하게 작업세계를 선보여왔다. 특히 의인화된 동물 연작은 국제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인간실존과 사회현실에 대한 끈질긴 탐색의 산물로 평가받고 있다.
작가는 또한 작년 10월에는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관인 런던의 테이트모던 뮤지엄에서 가족과 인간의 본질을 묻는 영상작품 '화가와 엄마'를 상영하기도 했다. 테이트모던 내 극장인 스타시네마에서 한국의 이이남, 장민승 등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런던 동아시아 영화제'에 초대받아 수년간 촬영해온 필름작업을 선보인 것이다. 이 영화는 '제37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의 한국 경쟁부문 작품으로 선정돼 지난 8월말 부산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서울=뉴스핌] 이영란 기자= 김영미 작 '자연인'. 카드보드에 혼합재료. 2007 [사진=리서울갤러리] 2020.10.19 art29@newspim.com |
작가 김영미는 "전대미문의 전염병인 코로나19로 지구촌 모든 이들이 뜻하지않은 난국을 맞고 있다. 지치고 암담한 상황이지만 이런 때일수록 나를 성찰하고, 가족을 돌아보며 외면했던 철학을 한번쯤 곱씹어봤으면 해서 전시를 꾸몄다"며 "철학의 부재라는 타이틀은 중의적인 뜻으로, 어느 때 보다 철학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현실을 헤쳐나가기 바빠 철학을 저 멀리 밀어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그러나 굳이 딱딱하고 머리 아픈 철학을 내세우기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가족과 이웃, 나와 너의 관계를 성찰해봤으면 하는 뜻에서 위트와 페이소스가 깃든 작품들을 선별해 전시장에 내걸었다. 아울러 작가의 길고 힘든 작업을 음악을 통해 위무하곤 했던 글로벌스타 BTS의 퍼포먼스를 그린 회화도 발표한다.
김영미는 가족간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겪게 된 애증을, 말로는 형언키 어려우나 켜켜이 쌓여가는 심상을 인간관계를 다룬 자신의 회화를 통해 차분히 반추하길 희망하고 있다. 우리의 생은 이 길고 지루한 코비드 상황에서도 엄정하게 흘러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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