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박훈정 감독의 신작 '낙원의 밤'이 위태로운 삶의 끝에 선 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를 선보인다. 조직의 희생양이 된 두 사람은 다른 듯 닮은 모습을 통해 아이러니로 가득한 삶과 죽음을 얘기한다.
5일 온라인 시사를 통해 넷플릭스 '낙원의 밤'이 베일을 벗었다. 당초 극장 개봉을 염두했다가 넷플릭스행을 택했지만 이 영화를 주목하는 이들은 적지 않다. 이미 제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유일하게 초청된 한국영화로 해외 매체의 극찬을 받은 작품. 박훈정 감독은 전작 '신세계' '브이아이피' '마녀'에 이어 암울하면서도 묘한 한국형 누아르를 그려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사진=넷플릭스] 2021.04.05 jyyang@newspim.com |
◆ 고독 속 지리멸렬하게 이어지는 삶…아름다운 풍광과 극렬한 대비
'낙원의 밤'은 한국형 누아르의 대가라 불리는 박훈정 작품의 6번째 신작이다. 그는 유명세답게 이번에도 조직폭력배들의 삶을 영화에 담았다. 가족이 살해당하고 상대편 조직의 보스를 향해 복수를 감행한 태구(엄태구)는 양회장(박호산)의 지시로 제주에 잠시 몸을 숨기고 왕년의 형님 집에서 재연(전여빈)을 만난다. 하루 하루 죽을 날만 기다리는 처지의 둘은 가족도, 연인도 아닌 묘한 관계가 된다.
엄태구는 극중 박태구 역으로 등장해 잔인하고 침착하지만 인간적인 캐릭터의 내면을 그려냈다. 비장하기 그지없는 고독한 조직폭력배의 표정이다가도, 가족을 만나 잠시 풀어지는 얼굴은 꽤 의외의 면을 보여준다. 전여빈과 티격태격하고 신경전을 벌이면서 복잡한 감정들을 거쳐가는 표정을 통해 그의 심경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사진=넷플릭스] 2021.04.05 jyyang@newspim.com |
전여빈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여자로 두려울 게 없는 재연 역을 열연했다. 재연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주로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자연스러운 일상톤 연기가 돋보인다. 차승원의 마이사 역시 인상적이다. 등장만으로 무게감과 위압감이 느껴진다. 조폭의 제 1 덕목 '의리'가 몸에 밴 인물이라는 데서 관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을 것으로도 보인다.
◆ 조직의 배신과 희생양의 죽음…꼬리를 무는 비극의 끝은
사람을 죽이고 피신한 태구는 조직의 뒷처리와 부름을 기다리면서, 한 순간도 안심하지 못한다. 자신이 폭력배라 죄없이 죽은 가족들 탓에 물회를 앞에 두고도 한입도 뜨지 않는다. 재연은 그런 그의 앞에서 자살 시도를 하고, 병의 증세가 악화돼 생사를 오간다. 배신과 비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면서, 태구는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재연 역시 자신의 누나처럼 조직에 몸담은 가족 탓에 부모를 잃었다는 걸 알게 된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사진=넷플릭스] 2021.04.05 jyyang@newspim.com |
죽을 날을 받아둔 여자와 언제 목숨이 날아갈지 모르는 남자는 묘한 대척점에 서있다. 그리고 이들은 마치 낙원같은 고요한 풍경 속에 머무른다. 재연과 가족을 잃은 아픔을 공유했던 태구는 그를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한다. 죽음을 두려하고 피하려했던 모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자 앞에 무력하다. 태구와 재연의 마지막은 마치 비로소 밤을 맞아, 낙원으로 향한 듯 하다.
지독하게 암울하면서도 한편으로 속이 시원한 결말은 어쩌면 '조폭 청산'을 부르짖는 감독의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코로나19로 지난해 이후 신작 영화 개봉이 주춤한 가운데, 누아르 마니아들의 갈증을 풀어줄 수작이 될 듯 하다. 오는 9일 넷플릭스에서 공개.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