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뉴스핌] 최헌규 특파원 = 개혁개방 1번지 중국 선전(深圳)은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와 함께 1선 도시로 사회 경제적 영향력이 큰 곳이다. 선전은 자본과 인재가 몰리는 핫한 도시로 중국에서 베이징과 상하이 못지않게 집값이 높기로 악명높다.
선전이 2021년 2월 치솟는 아파트 가격을 잡기위해 '참고가격'이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나섰다. 참고가 제도는 공시지가를 높여 세금을 올리는 우리의 방식과 정반대로 기준 가격(참고가)을 끌어내려 자산가치를 낮추고 결과적으로 대출 등을 축소하는 정책이다.
참고가를 끌어내림으로써 거품가격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시가 10억 원짜리 집에 대해 7억 원이라는 참고가를 매기는 순간 은행 대출(주택가의 최고 70%)도 이 기준에 따라야 하고 부동산 중개업소도 그 이상의 판매 예시가를 내붙일 수 없다.
집주인으로서는 심리적으로나 자산가치면에서 졸지에 집값이 30% 떨어진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100워짜리 멀쩡한 상품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오늘 부터 '이 상품 가격은 70원이다'며 강제 딱지를 붙이는 격이다. 이 제도가 집값 억제에 효과를 거두면서 쓰촨성 청두를 비롯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2021년 여름 중국 대륙 전역이 집값 잡기의 거대한 경연장을 방불케하고 있다. 계획경제 시절 수단이 마구 동원되고 빈도수도 최대에 이르고 있다. 올해 들어 반년 동안에만 중앙과 지방 정부 차원에서 나온 집값 억제 용 부동산 규제 대책이 벌써 300여 차례에 달하고 있다.
'주택은 주거의 대상이지 투기 대상이 아니다(房住不炒)'. 중국 공산당은 오래전부터 집값 안정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집값 대책은 번번히 실패했다. 중국의 경우 천정부지로 치솟는 도시 집값은 대다수 집없는 도시 소외층들에게 박탈감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체제 안정에 위협요인으로 지적된다.
관영 매체 신화사 통신은 집값 안정은 도시주민의 행복 여부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각 지방에 대해 주택 안정을 독려하고 나섰다. 부동산 안정은 지방 지도자 인사 고가의 중요한 항목이 될 태세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특파원 = 중국 공산당이 인민의 행복 지수를 끌어올리겠다는 일념하에 집값 억제 정책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2021.08.10 chk@newspim.com |
도시들 마다 부동산을 안정시키고 집값을 끌러내리기 위해 마치 전쟁 처럼 사력을 다하고 있다. 베이징은 이 달부터 부부가 주택을 보유하고 있던 상황에서 이혼을 하면 3년 이내에는 어느 일방도 아파트를 구입할 수 없도록하는 규정을 발표했다. 위장 이혼을 통해 아파트 투기를 일삼던 관행을 뿌리뽑겠다고 나선 것이다.
베이징 상하이 등 중국 대도시에선 부부간 불화에 따른 이혼도 많지만 부동산 투기를 목적으로 한 가짜 위장 이혼 사례가 활개를 쳐왔다. 배이징의 경우 주소지에 따른 중학교 배정 위주의 학군제가 시청(西城)구 등 특정 지역 주택 투기를 조장한다며 학군 배정제를 손질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상하이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중국은 올초 이혼 숙려제를 도입했는데 이는 이혼율 하락은 물론 집값 안정에도 일정 정도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다. 상하이는 7월 부동산 시장 투기 붐을 억제하기 위해 경기 냉각을 각오하고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전격 인상했다.
중국의 전방위 부동산 억제 정책은 집값 폭등에 따른 민생 위협과 민심 이반을 막기위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집값 폭등으로 주거 부담이 가중되고 소득 감소효과가 나타나면서 민생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GDP가 늘어나고 1인당 소득도 증가했다고 하지만 주민들은 생활이 더 팍팍해졌다고 하소연한다.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중국 주요도시 아파트 가격은 입지가 뛰어난 곳의 경우 제곱미터당 10만 위안 넘는 곳이 수두룩하다. 평수로 환산하면 10만위안 짜리 아파트의 경우 평당 가격이 약 30만 위안으로 우리돈 5000만 원이 넘는다.
근 3억명의 농민공을 비롯, 기층 서민은 물론 비교적 높은 연봉의 버젖한 월급장이들도 내집 마련에 엄두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젊은 세대들은 SNS에 '내 월급으로는 1000여년 전 당나라 때부터 저축을 해도 베이징에 집을 갖기 힘들다'며 비아냥대는 글을 올리고 있다.
도시 직장인들의 월급이 조금 올라봤자 자녀 교육비와 주택 임대료에 다 들어간다. 실제 저축은 아예 흉내를 낼 수 없는 상황이다. 월급의 60~70%를 아파트 임대료로 부담하는 가계가 적지않다는 통계도 있다.
집값 부담때문에 결혼을 하기도 힘들고 아이를 낳아 키우기도 쉽지않는 상황이다. 중국판 '삼포 세대'들은 정부 출산 장려정책이 '당나라 정책이 아니냐'며 시니컬한 태도를 내보인다. 정부가 '주택이 투기 대상이 아니다'며 원론적인 얘기나 하면서 뒷짐짓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중국은 1998년 상품방(商品房, 시장에서 주택을 매매함) 제도 개혁을 단행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주택은 단위(기관 직장 등) 에서 배급으로 나줘주던 공공재와 같은 것이었는데, 상품방 제도 도입 이후 시장에서 상품으로 사고 팔게 됐으며 급기야 투기 상품으로 변질됐다. 부동산 가격은 국내외에 경제 환경에 따라 등락을 반복하며 천정 부지의 고점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주택개혁 이후 중국 사람들은 유주택자와 무주택자로 양분됐다. 집은 인민을 부자와 빈자로 갈랐다. 부동산은 중국 고성장을 주도한 견인차였지만 지금은 양극화와 불균형 성장의 주범으로 눈총을 받고 있다. 부동산 때문에 계층간 위화감도 팽배해졌다.
폭등하는 집값은 과거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보다 훨씬 심각한 체제 불안의 화근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재의 부동산 억제책은 거품 우려 등 댠순한 금융리스크 예방차원이 아니다. 공산당은 20여년 상품 방 제도 개혁 이후에 나타난 '시장경제 주택제도'의 폐해'를 바로 잡겠다는 심산이다. 한편에서는 부작용 해소를 위한 시장 개조라는 말도 나온다.
여러채 아파트 소유자들 중에는 수백억 부자들이 많다. 한국인 중에도 운좋게 중국 대도시에 몇채 씩 아파트를 사놔 이런 부자 대열에 낀 사람들이 제법 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은 집 한채 매각 대금이나 임대 소득만으로도 평생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호위호식하면서 살 수 있다.
반면 홈리스들은 매월 주거 비용을 충당하느라 허리가 휜다. 사회주의 체제지만 불평등을 한국인 보다 훨씬 더 잘 감내하는 중국인들도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사람들은 현실 삶과 공산당의 샤오캉(小康, 의식주가 풍요로운 사회) 구호가 너무 다르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는 공산당 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피로감 호소라는 점에서 중국 당국에 경감식을 던져주고 있다.
중국 학자는 2022년 가을 20차 당대회가 열리는 해라며 당국이 행사를 앞두고 민심을 추스리는 차원에서 집값안정에 전력을 쏟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시장경제에 반하는 초강력 행졍수단이 동원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중국에서 당분간 아파트 값이 오를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베이징= 최헌규 특파원 ch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