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법 취지와 어긋나"...손보사, 보험 출시 연기
중대재해법 시행 후 기업 문의 빗발..."파산 위기 우려"
[편집자]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오는 27일로 시행 한 달을 맞는다. 정부와 기업 등 각계에서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적극 대응하고 있지만, 시행 이후 적지않은 중대재해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이에 <뉴스핌> 중대재해법 시행 한달 현주소를 진단하고 미흡한 점과 바람직한 개선방안을 모색해 본다.
[서울=뉴스핌] 최유리 기자 = 보험사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관련 보험 상품을 만들고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에서 "법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면서 출시를 무기한 연기했다. 중대재해법 시행 한달 만에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지면서 관련 보험을 찾는 법인 고객들이 늘었지만 보험사들은 눈치만 보고 있다.
2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대형 손해보험사들은 최근까지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중대재해법 관련 보험 상품 준비를 논의했다.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경영책임자의 고의성 문제를 판단하기 위한 방안을 보완하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준비가 진척된 상황이다.
보험요율이나 약관 등 상품의 대략적인 틀은 이미 나왔다. 중대재해가 발생해 사업주나 경영진이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되는 경우 손해배상금을 보장하고 관련 소송에 대한 법률 비용, 위기 관리 및 재발 방지 컨설팅 비용까지 지급하는 방식이다.
[여수=뉴스핌] 오정근 기자 = 11일 오전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단 내 NCC 3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관계자들이 사고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이 사고로 노동자 4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2022.02.11 ojg2340@newspim.com |
중대재해법은 기업에서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조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고 징벌적 손해배상도 적용받을 수 있다. 법인은 5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지금도 임원배상 책임보험, 영업배상 책임보험, 근로자재해보장 책임보험 등 다양한 보험 상품이 있지만 중대재해에 대해 충분한 보장을 담보하기 어렵다. 보험 없이 회사에서 벌금을 처리할 경우 배임죄 가능성도 있다. 기업들이 중대재해법 책임보험을 찾는 이유다.
그럼에도 보험사들은 상품 출시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법 취지와 어긋날 수 있다"는 의견을 전달하면서 제동이 결렸기 때문이다.
상품의 보장 내용이 법안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중대재해법은 기업들이 안전 관리를 강화하도록 만든 것인데 법 위반 시 손실을 보장받으면 관련 의무를 소홀히 하는 '모럴 해저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보장 한도를 낮추는 등 고심을 했지만 당국에서 부정적인 입장이라 당장은 출시가 어렵다고 보고 무기한 연기했다"고 말했다.
중대재해법 자체의 모호성도 보험사들이 고민하는 지점이다. 보험사 입장에선 고의성에 따라 보상 여부가 달라지는데, 중대재해법은 고의성과 과실을 판단할 기준이 없어 위헌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다만 판매 계획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다. 법인 고객들의 수요가 높은 만큼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출시 시기를 저울질하겠다는 계획이다. 전체 기업들이 다 걸려있는 만큼 사실상 의무보험의 성격을 띌 수 있어 잠재 시장 규모가 크다고 보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상품 문의가 더 많아졌다"며 "자금력이 부족한 기업일수록 손해배상만으로도 파산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 우려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yrcho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