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무원, 욕설·폭행 등에 만성적으로 노출됐지만
서교공은 '인원 감축'...2인 1조 사실상 불가능
지하철 경찰대도 인당 여러 역 맡고 있는 상황
자체 운영하는 '지하철 보안관'은 사법권 없어
[서울=뉴스핌] 최아영 기자 = "야간에 근무하게 되면 저희한테 위해를 가하는 경우가 꼭 한 건 이상씩은 있어요. 그런데도 언론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그 빈도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에요. '어떤 일을 겪었냐'고 하기보다는 '조용한 날이 있었냐'는게 맞는거 같아요."
지난 1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순찰 중이던 역무원이 살해당하는 사건 이후 역무원들의 안전 및 처우 개선을 위한 목소리가 각계에서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역무원·지하철 경찰 등의 고질적인 인력 문제는 쉽게 해결되기 어려워 보인다.
[서울=뉴스핌] 황준선 기자 = 지난 14일 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20대 여성 역무원이 전 직장 동료 남성 A씨에 의해 살해됐다. 피해자는 지난해와 올해 두차례 A씨를 스토킹 혐의로 고소했으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촬영물등이용강요) 등 혐의로 기소된 A씨는 이날 오전 서울서부지법에서 선고기일이 예정돼 있었다. 사진은 15일 오후 서울 중구 신당역 여자화장실 인근의 모습. 2022.09.15 hwang@newspim.com |
◆'2인 1조' 언급했지만 2023년 근무인원 감소...매뉴얼만 문제 아냐
지난 16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현행 지하철 근무자 매뉴얼에 역내 순찰의 경우 2인 1조 근무 규정이 없는 문제점을 개선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를 수정했다.
19일 지자체 등에 따르면 현재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업무 중 승강장 터널 안에 들어가는 등 위험 업무나 카드 충전기와 같은 현금 범죄 위험이 있는 업무 외 순찰 업무 등에는 2인 1조 근무 수칙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문제는 업무 시 2인의 역무원이 상주하는 역은 전체 289개 역 중 150여개가 넘는 상황에서 단순 근무수칙 제정이 해결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 역의 경우 업무인원이 2인이므로 2인 1조 순찰 규칙이 생겨나면 순찰 중에는 다른 민원 업무를 모두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공공부문 경영혁신' 기조에 따라 2022년 채용 규모를 전년도(449명)보다 약간 상승한 513명으로 선정했다. 이에 서울교통공사노조 측은 "결원‧정년퇴직자와 장기결원, 공로 연수 등을 고려하면 2023년 근로자 수는 올해보다 줄어든다"고 비판했다.
노조 측에 따르면 올해 12월까지의 결원은 8월 기준 ▲정년퇴직 394명 ▲결원‧퇴직 39명 ▲장기결원 90명 등으로 2022년 전체 채용 인원인 513명을 훌쩍 넘는다.
김정섭 교육선전실장은 "사무 분야, 즉 역무 분야에서는 올해 정년 퇴직하는 인력 수 정도만 간신히 채용했다"며 "이대로라면 내년에는 현장 업무 인력이 더 줄어들게 돼 사실상 2인 1조 근무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문제는 비단 서울교통공사만의 일이 아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경우에도 인력부족으로 현실적으로 2인 1조 근무를 강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두관 의원실에 따르면 환승역을 제외하고 코레일이 단독으로 관리하는 전국 126개 전철역을 전수 조사한 결과 압구정로데오역, 강남구청역, 홍대입구역 등 70개 전철역(55%)의 야간 근무 직원이 2명에 불과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18일 오전 여성 역무원 살인사건이 발생한 서울 중구 지하철 신당역 2호선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보안관이 근무를 서고 있다. 2022.09.18 pangbin@newspim.com |
◆ 지하철 보안관 있어도 속수무책
역사 내부와 역무원의 안전을 지키는 지하철 경찰대 및 지하철공사에서 자체적으로 운영 중인 보안관도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서울경찰청 지하철 경찰대는 서울 내 지하철 역보다 적은 인원 수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인력 충원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역무원들은 폭행 등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지하철 경찰대가 아닌 인근 지역 경찰을 호출하기도 한다.
한 역무원은 "저희는 사법권이 없어 만약 대응할 경우 쌍방 폭행이 되기 때문에 당하고 있어야 한다"며 "모든 역에 지하철 경찰이 배치된 게 아니라 작은 역의 경우에는 현장 지역에 있는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잡아둘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서울교통공사는 자체적으로 '지하철 보안관'을 운영하고 있다. 공사 측에 따르면 현재 총 270명이 현장을 순회하며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영업 사업소 등에 배치돼 특정한 역에 상주하지 않고 2인 1조로 열차 상가를 순회하다가 사고가 일어날 경우 현장에 출동한다.
다만 이들 또한 공사가 운영하는 역사 수보다 인원이 적고 사법권 없어 현장에 출동하더라도 경찰에 인계해야 한다. 따라서 역무원들은 위급 상황에 지급되는 호신 수단 '전자 호루라기'로만 상황을 타파해야 한다.
또 다른 역무원은 "역무원·보안관에게 사법권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보호구도 없이 민원 처리를 위해 맨몸으로 가야하는 상황도 문제"라고 말했다.
youngar@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