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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금융위기① IMF 위기와 IT버블 붕괴, 역사는 반복된다?

기사입력 : 2022년12월01일 17:20

최종수정 : 2022년12월01일 17:20

IMF 외환위기 때 코스피 하락률 -76%
IT버블 붕괴로 美 나스닥 -78% 대폭락
9.11 테러 다음날 한국 코스피 -12% 패닉
버블 붕괴 후 코스닥 21년째 전고점 회복 못해

 

[서울=뉴스핌] 한태봉 전문기자 = 한국 주식시장의 부진이 상당 기간 지속되고 있다. 2021년 6월의 3316포인트를 정점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 금리인상 등의 복합적 요인으로 2022년 12월초 까지 무려 1년 6개월째 제대로 된 반등 없이 조정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지루한 조정장세는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까. 과거의 대폭락 사례들을 통해 힌트를 얻어보자. 

주식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들은 주기적으로 버블과 붕괴를 경험한다. 지난 25년간 한국에서 나타났던 버블 붕괴 중 가장 심각했던 3개 사건은 1997년의 'IMF 외환위기'와 2001년의 'IT버블 붕괴+9.11 테러',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꼽을 수 있다. 이 3개의 대폭락 사건 중 가장 최근인 글로벌 금융위기만 해도 벌써 14년 전이다. 지금의 MZ세대 중 상당수는 이 대폭락장을 경험해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 1997년 IMF 외환위기

한국에서 가장 심각하게 주식이 폭락했던 시기는 바로 1997년의 'IMF 외환위기' 때다. 이 당시 코스피 지수는 1994년 11월에 1145포인트로 정점을 찍은 후 2008년 6월에는 277포인트까지 폭락했다. 고점 대비 하락률은 무려 -76%였다. 증시는 장장 43개월간 장기 하락하며 투자자들을 기진맥진하게 했다.

1997년 초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막대한 대출을 통해 몸집을 불렸던 한국 주요 기업들이 단기 대출을 연장하지 못해 연달아 부도 처리되면서 한국 경제에 경고등이 켜졌다. 한보철강의 부도를 시작으로 삼미, 진로, 대농, 기아가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외국인들의 한국 사업 철수와 주식 투매로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바닥나기 시작했다. 이 당시 한국은 자유변동환율제가 아닌 관리변동환율제를 적용해 왔다. 따라서 1997년초부터 9월까지 원·달러 환율은 850~900원 사이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 물밑에는 안정적인 환율 유지를 위해 보유중인 달러의 상당량을 시장에 내다 파는 한국 정부의 무리수가 숨겨져 있었다.

그 결과 1997년 11월에는 외환보유고가 40억달러에도 못 미쳤다. 이에 한국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유동성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결국 IMF 관리체제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1997년 12월에 21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으며 국가부도 위기를 넘겼다. IMF는 자금 지원의 조건으로 자유변동환율제, 고금리 정책, 외국인 투자 자율화를 내걸었다.

한국 입장에서 고난은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1997년 12월부터 IMF의 엄격한 자유변동환율제 적용과 고금리 정책의 영향으로 환율과 금리가 미친 듯이 상승했다. 연초에는 850원에 불과했던 원∙달러 환율이 단숨에 2000원 가까이 치솟았고 은행 예금금리는 20% 이상, 대출금리는 30% 가까이 치솟았다. 코스피지수는 4년전의 최고점 1,145포인트에서 무려 -76% 폭락한 277포인트까지 추락했다.

 이 당시 정부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부채가 과다해 도저히 회생이 불가능한 부실기업들은 과감히 퇴출시켰다. 결국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되는 등 대기업들마저도 줄줄이 부도가 났다. 또 과감한 금융 구조조정에 들어가 시중의 종합금융사들은 대부분 사라졌고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은행도 무려 5개나 퇴출됐다.

주식시장만큼은 아니었지만 부동산시장도 대폭락해 하락률이 -15%에 육박했다. 언뜻 하락률이 작아 보이지만 이는 통계수치일 뿐이다. 실제 체감 하락률은 훨씬 더 높았다. 특히 부동산 거래 자체가 얼어붙어 유동성이 필요해 아파트를 처분해야 했던 사람들은 매도 자체가 안 돼 애를 먹었다. 이런 점까지 고려하면 부동산 보유자들의 고통도 컸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98년도의 전년대비 취업자 감소인원은 무려 127만명이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엄청난 수치다. 이렇게 취업자 감소인원이 심각했던 이유는 대부분의 기업들과 금융기관들이 구조조정을 단행해 수많은 직장인들이 해고됐던 한국경제 역사상 최악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또 건설사들의 부도율도 심각해 이로 인한 건설 노동자 고용 감소의 영향도 컸다. 1998년도에 대학을 졸업한 비운의 세대들은 취업경쟁률이 수백 대 1을 기록하는 역대급 취업한파를 온몸으로 경험했다. 국가의 달러 부채 상환에 일조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까지 벌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 어떤 희망도 없어 보이던 절망의 1998년 말이 지나면서 증권시장은 급격히 반등을 시작했다. 낙폭 과대에 따른 자율반등이 그 시작이었다. 점차 경제상황이 안정됐고 정부가 정책적으로 IT섹터를 육성하면서 시장에 돈이 돌기 시작했다. 코스피 지수는 최저점인 277포인트를 바닥으로 13개월이 지난 1999년 7월에는 4배에 가까운 1053포인트까지 상승해 직전 최고점을 거의 회복하는 기적을 보여줬다.

위기는 기회였다. 여기서의 교훈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국가는 '지도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심스러운 낙관론자들은 절망밖에 없던 IMF 시절에 한국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에 베팅함으로써 주식과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었다.

IMF 외환위기는 국가적으로 불행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과도한 절망과 공포 분위기속에서 냉정하게 한국의 부활을 확신했던 투자자들에게는 100년만에 오는 기회이기도 했다. 소수의 투자자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중과 반대로 행동 해 짧은 시간안에 엄청난 부를 일궈냈다. 

물론 이런 기회를 잡으려면 대폭락 당시에 일부라도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가능했다. 부채가 많았던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대출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생사가 결정될 정도로 힘든 상황에 내몰렸다. 또 실직과 파산으로 중산층 상당수가 붕괴되기도 했던 어려운 시기였다.

 

 ◆ 2001년 IT버블 붕괴 및 9.11 테러

미국은 한국과 달리 IMF 사태를 겪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 S&P 지수와 나스닥 지수는 한국의 'IMF 외환위기'로 인한 주식 대폭락 시기에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렇다면 미국 증시가 대폭락한 사건은 언제 발생했을까. 바로 역사상 최고의 버블과 붕괴로 손꼽히는 2000년도의 'IT버블 붕괴'다.

IT버블 붕괴로 인한 주가 하락은 2000년 3월부터 시작돼 무려 31개월간에 걸쳐 진행됐다. 미국은 이 하락 기간에 9.11 테러까지 터졌다. 정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미 죽어가던 증시의 숨통이 끊어질 듯한 복합 위기 상황이었다. 이 당시 지수를 관찰해 보면 S&P500 지수의 최고점 대비 하락률은 -50%였던 데 비해 나스닥 지수는 무려 -78% 폭락했다.

개별종목도 아니고 지수의 하락률이 -78%라니 너무 비현실적이다. 이게 가능한 건가. 그 당시의 비현실적인 주가 폭락을 이해하려면 일단 나스닥 지수의 미친 상승부터 살펴봐야 한다. 나스닥 지수는 1998년 10월의 1344포인트를 바닥으로 2000년 3월의 5133포인트까지 불과 17개월 만에 4배 가까이 폭등했다.

문제는 이 당시의 주가 상승은 정말 비이성적이었다는 점이다.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신경제'라는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면서 회사 이름에 닷컴이란 단어만 들어갔다면 사업성은 따지지 않고 미국이든 한국이든 미친 듯이 폭등했던 아주 특이한 대버블의 시기였다. 그 이후 갑작스럽게 발생한 IT버블 붕괴 사건은 이후의 회복기간을 계산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나스닥 지수는 워낙 버블이 심해 1108포인트까지 폭락한 지수가 다시 전고점인 5132포인트를 회복하는 데 무려 15년이 걸렸기 때문이다. S&P500 지수는 닷컴주식 외에도 전통적인 우량주식들이 많이 포함돼 있어 상대적으로 하락폭이 덜했다. 그래도 주가 폭락 후 5년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최고점을 회복했다. 5년이란 회복기간은 다른 폭락 사례들과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다.

2022년 현재 나스닥 지수는 우크라이나전쟁, 인플레이션, 금리인상의 영향으로 조정 받는 중이다. 하지만 지난 IT버블 붕괴에서 살아남은 빅테크 기업들의 실적은 그 당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예를 들면 애플의 전년도 영업이익은 약 130조원(1,089억달러)이다. 이외에도 아마존, 알파벳(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등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 따라서 올해 하락장을 맞아 약 30%의 조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022년 10월 말의 나스닥 지수는 1만988포인트다. IT버블 당시 고점인 5133포인트보다 2배 이상 높은 지수 흐름을 보이고 있다.

 

 ◆ 한국도 IT버블 붕괴 폭락 못 피해

그렇다면 한국 상황은 어땠을까. 한국의 주가 하락률은 미국보다 더 심각했다. 한국의 주가 하락기간은 미국보다 짧은 21개월이었지만 하락폭은 더 컸다. 코스피 지수는 최고점 대비 -56% 하락했고, 코스닥 지수는 무려 -84%나 폭락했다. 지수 하락률이 -84%라니 숫자가 잘못된 게 아닌지 눈을 의심하게 된다. 한국 역시 이 당시의 주가 대폭락을 이해하려면 먼저 IT버블 당시의 비이성적 상승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 당시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종목 대부분은 우량주가 아니라 '신경제'라는 미명하에 기대감만 가득한 닷컴주식들이었다. 이때 주식 과열을 보여줬던 대표적인 종목이 바로 새롬기술이다. 당시로는 획기적이었던 '다이얼패드'라는 무료 인터넷전화 서비스는 그야말로 광풍을 불러일으켰다. 새롬기술은 1999년 8월 코스닥에 상장했는데 그 후 수백 배가 상승했다. 새롬기술의 높은 성장성을 감안해도 너무나 과도한 상승이었다.

그나마 새롬기술은 상당히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던 기업이었다. 그 외에 실체도 없던 수많은 닷컴 기업들의 주가가 버블에 편승해 미친 듯이 치솟았다. 코스닥 지수는 1998년 11월의 605포인트를 바닥으로 16개월 만인 2000년 3월에 6배인 2926포인트까지 폭등했다. 이렇게 경이적인 상승이 먼저 있었기에 경이적인 폭락도 가능했다. 결국 코스닥 지수는 -84%의 하락률을 보이며 457포인트까지 폭락했다. 비이성적이었던 주가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갔다고도 할 수 있다. 

 

◆ 9.11 테러로 한국 증시 완전 붕괴

그 당시 폭락하던 한국 증시를 아예 붕괴시킨 사건은 9.11 테러였다. 미국 날짜로 2001년 9월 11일에 테러범들은 항공기를 납치해 110층 세계무역센터(WTC)와 워싱턴 국방부 청사에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했다. 4대의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 266명, 워싱턴 국방부 청사 125명, 세계무역센터에서 2500~3000명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한 끔찍한 사건이었다.

사건 직후 약 1주일간 미국 증권시장이 문을 닫을 정도로 후유증은 심각했다. 한국 시간으로는 2001년 9월 11일 밤에 사건이 발생했고 다음날인 12일 한국 증시는 장이 열림과 동시에 폭락했다. 한국 코스피 지수는 전날의 540포인트에서 단숨에 -9% 폭락한 490포인트로 개장했다. 이후 하락을 거듭해 그날 종가는 -12% 대폭락한 476포인트로 마감했다. 

반면 예기치 못한 갑작스런 악재로 오히려 대박을 터트린 소수의 승리자들도 있었다. 바로 선물옵션을 통해 주가 폭락에 베팅한 사람들이다.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던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대에 투기적인 목적으로 저렴한 옵션을 보유했던 투자자들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적게는 수 십배, 많게는 수 백배의 수익이 발생하기도 했다. 

미국이 공격당한 사상 유례없는 사건에 투자자들은 공포에 질려 어쩔 줄을 몰라 했고 대부분의 종목이 하한가를 기록했다. 하지만 한국 증시는 이미 얻어맞을 만큼 충분히 얻어맞은 상태였다. 이 9.11 테러로 인한 대폭락을 기점으로 한국 증시는 IT버블 붕괴로 인한 하락 사이클상 마지막 최저점을 찍었다. 이 사건 이후 10일이 경과한 시점부터 다시 한국 증시는 완만한 회복 국면에 진입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있다. IT버블 당시의 코스닥 최고점인 2000년도의 2926포인트는 도대체 언제쯤 에나 회복됐을까.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2022년 11월말에도 한국 코스닥 지수는 730포인트에 불과해 여전히 최고점인 2926포인트 대비 무려 -75%의 하락률을 기록 중이다. 2000년도의 IT버블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②편에서 계속… 금융위기② 글로벌 금융위기… 대폭락과 교훈

 

자세한 내용은 해당 영상을 통해 확인해 보자.

뉴스핌 (촬영 : 양홍민 / 편집 : 이승주 )

longinu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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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스테이지' 첫 주자 민주·김마누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이 개최하는 싱어송라이터 경연대회 '히든스테이지'가 드디어 막이 오른다. 20일 오후 4시 10분 유튜브 '뉴스핌TV'를 통해 공개되는 '히든스테이지'는 미래의 한국 대중음악을 이끌어갈 싱어송라이터를 선발하는 경연 대회다. 치열한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오른 24팀(명)이 매주 2명(팀)씩 출연하여 실력을 겨룬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하는 이번 대회의 첫 경연 주자는 민주와 김마누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싱어송라이터 민주가 서울 여의도 뉴스핌 본사 스튜디오에서 노래하고 있다. 2025.06.19 oks34@newspim.com 민주(본명 김민주·24)는 스스로를 자유로운 싱어송라이터라고 소개했다. 그만큼 아직까지 정형화된 음악 대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들고 부른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는 고향 부산에서 어쿠스틱 기타 한 대로 세상 사람들과 만나왔다. 이번 '히든스테이지' 출전을 계기로 부산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에서 활동할 계획이다. 다섯 살 때 김종국의 '사랑스러워'를 불러서 칭찬을 받은 것이 노래를 시작한 계기가 됐다. 7살 무렵부터는 빅뱅의 열렬한 골수 팬이 됐다. 피아노와 클라리넷을 연주했고, 성악을 공부하면서 합창단에서 활동하는 등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쌓아왔다. 자연스럽게 음대에 진학하여 음악 공부를 이어갔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실력파 싱어송라이터 김마누가 서울 여의도 뉴스핌 본사 스튜디오에서 노래하고 있다. 2025.06.19 oks34@newspim.com 밴드 '밍글'로 활동할 당시에 KT&G 상상 라이브 연습실 우승(2023)을 차지했고, 부산 MBC '마이스테이지' 가을 특집 출연(2024), KNN '마실가요, 따스함으로 물들다'에 출연(2024)하는 등 지역에서 음악 활동을 해왔다. 본인이 하고 있는 음악과 달리 개성이 넘치는 영국 싱어송라이터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좋아한다. 또 강렬하면서도 파워풀한 여성 로커 제니스 조플린의 음악도 좋아한다.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그 '어떤 것'에 대한 갈망의 또 다른 표현인 셈이다. 참가곡은 '언젠가 별이 될 우리에게'와 '수도 없이'라는 곡이다. '너가 외롭고 아프지 않았음 해/ 내가 외로워져 아파지더라도 말야/ 넌 좀 달랐으면 해. 나와는 말야/ 내가 흘린 눈물의 반의 반만 흘렸으면 해'라는 노랫말을 담고 있는 '언젠가 별이 될 우리에게'는 이타적 감성이 돋보이는 노래다. '수도 없이 많은 밤을 새웠어/ 수도 없이 많은 꿈을 꾸어 왔어/ 수도 없이 많은 사람 만나왔고/ 수도 없이 별 수도 없이/ 이제 나는 빈껍데기만 남아/ 아직도 꿈을 꿔/ 아직도 사람들을 만나며/ 밤을 새워'라는 노랫말을 가진 '수도 없이'는 코로나 시국에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만든 노래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기타를 들고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민주. 2025.06.19 oks34@newspim.com 김마누(본명 김지범 ·34)는 보컬 트레이너로 일하는 싱어송라이터다.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면서 언젠가는 음악을 하게 될 거라는 예감이 한다. 몽환적이면서도 따스한 분위기의 음악인 베드룸팝과 인디록을 지향한다. 베드룸팝의 대표주자인 Mac de Marco의 노래를 좋아한다. 엄청난 훅을 가진 그의 노래들과 일상 하나하나가 밈이 되는 스타일까지 마음에 든다. 제28회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으며 JTBC '슈퍼밴드 1'에도 출연했다. 멜로망스의 7집 앨범 '너랑'의 작곡자이며,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OST에서 작사와 작곡, 노래까지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2022년도 1월 'I'll Be There'로 데뷔했으며 올해 또 다른 앨범 발표와 공연을 준비 중이다. '히든스테이지' 출연을 계기로 국내뿐만이 아니라 크게는 해외 페스티벌 참가 및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창의적인 사운드와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바탕으로 한국을 넘어 세계 무대에서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꿈이다. 오랫동안 곁을 지켜주고 있는 부모님, 연인, 친구들에게 주는 노래 'I'll Be There'는 김마누의 대표곡이다. '이제 내게 기대/ 내가 늘 옆에 있어 줄게'라는 노랫말처럼 한 편의 멜로영화처럼 아련하고 고요하다. 여기에 비 오는 날의 숨결과 사랑의 리듬을 표현한 'Tiny Couch'를 부른다. 'Tiny Couch'에서 김마누는 사랑이란 거창한 말 없이도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고 속삭인다. 'You hum that tune like you always do/ And I'll sing low, just like I promised to/ Your laugh fills me, baby I won't let go'라는 노랫말처럼 말 없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이자 포옹과 같은 노래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싱어송라이터 김마누.2025.06.19 oks34@newspim.com 미래의 싱어송라이터를 선발하는 '히든스테이지'는 서울 여의도 뉴스핌 본사에 마련된 스튜디오에서 녹화 경연을 진행 중이다. 9월 첫째 주 본선 경연이 끝나면 심사위원과 응원단의 점수를 합산하여 톱 10 진출자를 결정한다. 10월 1일 오후 서울 홍릉 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 문화광장에서 마지막 톱 10 경연대회를 펼친다.  '히든스테이지' 대상(1명)은 500만 원, 최우수상(2명)은 각 300만 원, 우수상(1명)과 루키상(1명)에게는 각 200만 원 등 총 1,50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또 최우수상 수상자에게는 한국콘텐츠진흥원장상, 한국음악저작권협회장상이 주어진다. 본선 진출자 모두에게 포트폴리오로 활용 가능한 라이브 클립 제작, 각종 공연 참여 기회 및 언론 인터뷰 등의 기회가 주어진다. 또 최종 우승자인 대상 수상자에게는 음원 발매를 지원한다. 뉴스핌과 감엔터테인먼트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서울특별시·한국콘텐츠진흥원·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후원하는 '히든스테이지'는 대중음악계에서도 이미 실력파 싱어송라이터를 발굴하는 대회로 손꼽히고 있다. 제1회 대회에서는 대상을 수상한 에이트레인과 최우수상 수상자인 파일럿과 우수상을 탄 미지니가 배출됐다. 지난해 2회 대회에서는 뉴스핌 '히든 스테이지' 대상에 이찬주, 최우수상은 헤밍·채겸이 차지했다.  oks34@newspim.com 2025-06-2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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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의 깊어가는 '당권 고민' [서울=뉴스핌] 이재창 정치전문기자 = 당권 도전을 놓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당초 한 전 대표의 출마에 무게가 실렸으나 최근 '친한(친한동훈)'계 측근들 다수가 출마를 만류하고 있어서다. 출마 땐 승산이 있지만 당내 다수파인 구 '친윤(친윤석열)'계의 벽에 가로막혀 당 쇄신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대선 참패에도 구 주류는 건재하다. 원하는 후보를 쉽게 원내 사령탑으로 만들었고, 당 개혁안을 다수의 힘으로 저지하고 있다.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한계와 쇄신파가 밀었던 김성원 의원이 친윤계의 지원을 받은 송언석 의원에게 완패했다. 30대 60으로 사실상 게임이 되지 않았다. 구 주류가 지배하는 당의 세력 분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이 제시한 개혁안은 이들의 반대로 표류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국회사진기자단 = 국민의힘 대선경선에서 탈락한 한동훈 후보가 3일 오후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5차 전당대회에서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2024.05.03 photo@newspim.com 이런 상황에서 한 전 대표가 어렵사리 당 대표 자리에 오른다 해도 이들이 비토할 가능성이 높다. 영남 중심의 다수파인 이들이 반대하면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전당대회에서 63%라는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가 이들에 의해 쫓겨난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 전 대표의 출마를 강력히 주장했던 측근들조차 신중론으로 입장을 선회한 배경이다. 물론 한 전 대표가 어떤 결정을 할지는 알 수 없다. 측근들 다수가 반대해도 본인이 출마를 결심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출마 가능성은 여전히 반반이라고 보는 게 맞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19일 채널A 라디오쇼 '정치시그널'에서 "한동훈 전 대표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안 나온다고 하다가 나올 것"이라며 "한동훈 전 대표가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할 것이고, 결국 당 대표로 선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의원은 지난 대선 경선에서 한 전 대표가 패배한 것에 대해 "누군가는 '한동훈 비토가 세기 때문에 최종 결선 투표에서 진 게 아니냐' 이렇게 얘기하지만 그때 실제로 한덕수 총리에 대한 지지세라는 게 있었다"면서 "그런 분들이 아무래도 단일화나 이런 것에 임할 것으로 예상되는 김문수 후보한테 갔던 것"이라고 봤다. 이 의원은 나경원 의원과 안철수 의원의 출마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한 전 대표가 김문수 후보와 일대일로 만약에 붙는다고 봐도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친한계 기류는 출마 만류 쪽이다. 원내대표 선거 완패가 결정적 계기였다. 당 개혁안 표류도 한몫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전 대표가 설령 대표가 돼도 현실적으로 당 쇄신은 요원하다고 본 것이다. 친한계인 정성국 의원은 18일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 당이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의 개혁안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인다든지, 또는 원내대표 선거에서 송언석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치열한 접전이 있었다든지 이런 식으로 당의 변화가 느껴지는 상황에서 한동훈이 등판하면 '우리가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다'는 기대감을 줄 수 있다"며 "지금 당내 분위기가 아직까지 많이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한 전 대표가 만약 출마를 한다면 가능성은 충분히 제일 높다고 본다"면서도 "지금 굉장히 복잡해졌다. 의견들이 5대 5라고 봤는데, 요즘은 주변에서 '출마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정 의원은 "그러다 보니 한 전 대표가 나와서 이런 당을 이끌어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라며 "저항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역시 친한계 핵심인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도 이날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전당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좀 신중해야 된다는 의견"이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매번 출전할 수는 없다. 현실은 그렇다"고 했다. 그는 "친한동훈 그룹 내에서는 신중파가 더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한동훈이라는 존재는 보수 재건의 최강병기인 동시에 최종병기, 마지막 보루"라며 "한동훈이 무너지면 보수 혁신, 보수 재건은 거의 물 건너간다. 그러니까 소중한 만큼 아껴 써야 한다"고 했다. 친한계 인사 중 강력한 출마론자였던 김종혁 전 최고위원도 신중론으로 돌아섰다. 김 전 최고위원은 20일 뉴스핌과의 통화에서 "당의 최대 위기상황에서 한 전 대표가 출마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었지만 최근 원내대표 선거와 당 개혁안 표류 등을 보면서 자괴감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한 전 대표가 대표가 돼도 구 친윤계의 반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며 "출마를 권유하는 게 맞는지 고민스럽다"고 했다. 한 전 대표의 고민이 깊어간다. 한 전 대표는 출마 쪽에 무게를 싣고 조직 확산 작업 등을 해왔으나 측근 그룹의 만류와 쇄신과는 거리가 먼 당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출마냐, 포기냐의 기로에 선 한 전 대표가 어떤 결정을 할지 주목된다.    leejc@newspim.com 2025-06-20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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