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부터 15일까지 화성시 통탄, 반도문화재단 아이비라운지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은지화(銀紙畵)는 담뱃갑 속에 든 은종이에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그림을 그릴 캔버스로서 워낙 변변치않다 보니 이중섭 이외에는 은지화를 그린 이가 거의 없다.
이중섭은 한국전쟁으로 피난다닐 때 그림 그릴 재료가 없었거나, 종이마저 구할 돈이 없었기 때문에 담뱃갑 속 은박지에 그림 그릴 생각을 했을 거로 추정된다. 어떻게 해서든 그림을 그리겠다는 그 열망이 놀랍다. 이탈리아 피렌체에는 길바닥에 그림을 그리는 길거리 화가들이 있다. 오직 피렌체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피렌체에 몰리는 관광객들의 헌금을 노린 행위이기는 하지만, 르네상스 중심 도시의 DNA와 열정이 하루살이 그림을 그리게 만든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중섭의 은지화에 가장 많이 그려진 것은 소년들의 모습인데, 이는 가족과 헤어져 언제나 가족을 그리워하며 살아야 했던 이중섭의 '고독의 표출'이다. 은박지에 아이들 모습을 그려야만 했을 정도로 그의 그리움은 절절했다.
담뱃갑 속에 들어 있는 은종이다 보니 뜯겨지고 구겨진 상태로 구해질 때가 많았는데, 이중섭은 이 구겨진 자국이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그림을 그렸다. 은종이를 펴서 송곳이나 나무 펜으로 종이가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 눌러 윤곽선을 그린 후, 검정색이나 흑갈색의 물감이나 먹물을 솜, 헝겊으로 문질러 선을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그렸다. 이중섭의 은지화 3점은 그림의 내용과 독특한 재료의 개발이라는 점에서 그 독창성을 인정받아 현재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되어 있다.
장세현 작가의 첫 은지화 개인전이 6월 2일부터 15일까지 <은지화의 발견- 선, 빛, 색>이란 전시명으로 화성시 통탄, 반도문화재단 아이비라운지에서 개최된다.
이번에 전시될 그림은 장세현 작가가 10여 년 동안 그린 은지화 40여 점이다.
장세현 작가가 처음 은지화를 접하게 된 것은, 역시 이중섭의 은지화 전시장을 다년 온 뒤였다. 고심 끝에 담배종이 대신 은지화의 주재료를 쿠킹 호일로 선택했다. 쿠킹 호일에 한지를 배접한 다음, 아크릴 물감을 여러 번 겹쳐 올리는 방법을 착안했다.
장세현 작가는 은자화를 그리게 된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뜻하지 않은 우연의 효과가 유령처럼 불쑥불쑥 나타나 나를 놀라게 했다. 내 평생 탐험, 혹은 실험이 멈추지 않을 듯싶다. 좋은 종이와 캔버스를 놔두고 왜 굳이 은지화를 그리냐는 말을 듣곤 한다. 답은 간단했다. 종이나 캔버스 그림과는 질적으로 다른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며,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탐험가의 심정이 됐고, 점차 그 마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어떤 날은 뒷동산인 줄 알고 올랐는데 히말라야산맥 같은 게 버티고 선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멈추지 않고 은지화를 그리고 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장세현, 보내지 못한 편지. 2023.06.02 digibobos@newspim.com |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장세현, 나무 위의 마을. 2023.06.02 digibobos@newspim.com |
장세현 작가는 은지화 그림 양식에 중독되어, 허구한 날 붓질을 하느라 날밤을 새우기도 한다며, 그림을 향한 열정을 말하기도 했다. 현재, 작가는 은지화 미술 동호회 <어울림 그림 마당>을 운영하며, 작가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장세현, 새와 소년. 2023.06.02 digibobos@newspim.com |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장세현, 사람과 새와 나무. 2023.06.02 digibobos@newspim.com |
6월 10일(토) 오후 3시에는 은지화 시연 강좌도 진행된다. 사전 예약(031-377-9825)이 필요하다.
아트 디렉터 박성현 예술의숲 사무처장은 장세현의 은지화가 '25cm에서 시작된 탐험'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면서 "장세현의 은지화는 선의 세계에서 색의 마술로 장르의 확장을 이루어 냈다. 빛에 의해 착시와 반사광을 통한 빛의 왜곡이 일어난다. 캔버스가 면의 예술이라면 호일에 한지를 배접한 장세현의 은지화는 그야말로 선, 빛, 색의 세계이다"라고 해설한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장세현, 기억 속의 풍경. 2023.06.02 digibobos@newspim.com |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장세현, 별밤. 2023.06.02 digibobos@newspim.com |
장세현 작가는 국문학을 전공한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두 번째 시집 『부끄럽지만 숨을 곳이 없다』를 출간해 주목을 받았다. 성균관 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해 계간지 <시인과 사회> 편집위원, <민족문학연구소> 간사, 시사 월간지 <사회평론 길>의 기자를 역임했다. 현재 은지화 미술 동호회 〈어울림 그림마당〉 대표로 홛동 중이다.
아동 도서로 『세상 모든 화가들의 그림 이야기』, 『한눈에 반한 미술관』 시리즈, 『옛 그림 읽어 주는 아빠』,『고구려 벽화가 들려주는 이야기』 등 미술과 관련된 책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책으로 『에퉤퉤! 똥된장 이야기』,『엉터리 집배원』,『이상한 붕어빵 아저씨』,『호랑이를 죽이는 방법』, 『울보 청개구리』 등 수십 권의 도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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