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비메모리 점유율 3.3%…"메모리 편중 심각"
메모리→비메모리 '피보팅'은 국내 기업의 숙명
설계 등 SW 분야 투자 확대해야
[서울=뉴스핌] 이지용 기자 = 글로벌 반도체 강국인 한국에게 최근 다소 충격적인 통계 결과가 나왔다.
산업연구원은 이달 초 '세계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 지형과 정책 시사점'을 통해 글로벌 비메모리 시장 점유율에서 한국이 6위에 이름을 올렸다고 밝혔다. 반도체 경쟁국인 미국과 유럽, 대만, 일본, 중국 등보다 뒤처진 순위다.
한국의 글로벌 비메모리 점유율은 고작 3.3% 수준이며, 비메모리 매출 총액은 20조원에 불과하다. 미국과 유럽의 매출은 각각 323조원, 70조원 등에 달하는데다, 한국보다 반도체 기술력이 떨어진다고 평가받았던 중국도 39조원을 기록해 한국에 크게 앞서있는 상태다.
이처럼 한국 반도체의 오랜 고질병인 '메모리 편중 현상'은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인 D램 시장에서 30년,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20년 넘는 기간 동안 1위를 지켜오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의 경우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을 합치면 90%에 달하는 압도적 역량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이 아이러니하게도 비메모리 시장에서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지용 산업부 기자 |
비메모리 시장의 중요성은 해마다 커져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는 비메모리 시장 규모가 오는 2026년 1879억 달러로 예측했다. 이는 2023년 대비 56% 급증한 수치다. 지난해 기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비메모리는 76.12%를 차지, 메모리(23.88%)보다 3배 이상 큰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 동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수십년간 PC, 스마트폰, 가전 등에 사용되는 메모리 반도체 위주로 돈을 벌어왔다. 이들 기업이 메모리 분야에서 이 같이 큰 성공을 거두기 위해 메모리에 많은 힘을 들여왔던 만큼 비메모리로의 사업 전환을 단기간에 이뤄내기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메모리에서 비메모리로의 '피보팅(Pivoting)'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이 국내 기업의 숙명이다. 피보팅은 기존의 사업에 들였던 노하우와 역량 등을 수익성이 더 큰 새로운 사업으로 일부 옮기는 경영 전략이다. 메모리에 들였던 힘을 이제는 비메모리에 집중적으로 쏟아부어야 한다는 의미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로봇, 서버 등 첨단 산업에 쓰이는 만큼 국내 기업들에게는 미래 먹거리가 될 수 밖에 없다. 글로벌 경기 침체 등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도 국내 기업들이 비메모리 사업 확대에 적극 뛰어들어야 하는 이유다. 메모리는 고객사의 PC, 스마트폰 판매 규모에 따라 매출이 결정되기 때문에 그 동안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경기가 악화할 때마다 매출 부진을 겪어야 했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비메모리로 하루 속히 사업 전환을 하지 않으면 한국 산업의 근간은 흔들릴 것이다. '뼈를 깎는 고통'을 겪어서라도 기술 개발과 대규모 투자를 통해 비메모리 중심으로 사업 재편, 반쪽짜리 사업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강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앞으로 반도체 설계 등 소프트웨어(SW)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는 것이 국내 기업들의 과제일 것이다. 하드웨어 이전에 소프트웨어 분야가 탄탄해야 비메모리 반도체의 성능이 보장되고 이를 통해 매출까지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비메모리 반도체 중 하나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신제품을 갤럭시 스마트폰에 탑재하려 했지만 발열과 성능 등 문제를 겪으며 결국 퀄컴의 제품을 사용했다. 이에 대해 "설계에 더 큰 공을 들였어야 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이어졌던 만큼 기업들의 비메모리 사업 재구성은 필요해 보인다.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미래 먹거리로 각광받고 있다. 반도체 의존도가 큰 한국으로써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앞으로 국내 기업들의 사업 전환 속도에 따라 미래 한국 산업의 성패가 달려 있다. 메모리처럼 비메모리 분야에서 국내 기업들이 1·2위로 올라선다면 국내 반도체 생태계는 더욱 탄탄해질 것이며 국가 경제 안정화에도 이바지할 것이다.
leeiy52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