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글로벌 비메모리 점유율 3.3% 불과
국내 기업, SW·설계 능력 부족 및 사업 편중 탓
[서울=뉴스핌] 이지용 기자 = 한국의 '비메모리 반도체' 점유율이 주요국 중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사업 재정비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메모리 분야에 편중된 사업 구조 전환 및 비메모리 공정에 대한 투자 확대, 소프트웨어·설계 경쟁력 강화 등이 시급한 해결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18일 산업연구원의 '세계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 지형과 정책 시사점'에 따르면 따르면 글로벌 비메모리 시장 점유율에서 한국은 6위를 차지해 미국과 유럽, 대만, 일본, 중국 등 주요국보다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비메모리 점유율은 3.3%로 151억 달러(20조원) 수준에 불과하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는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비메모리 시장에서는 사실상 최하위 수준이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IT 제품에 필요한 계산과 분석 등 연산을 하나의 칩에 통합한 것으로 시스템 반도체로도 불린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설계를 하는 '팹리스'와 생산을 하는 '파운드리'로 제조 과정이 나뉜다.
지난해 기준 글로벌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는 6000억 달러(약 780조원)이며, 이 중 비메모리는 76.12%를 차지하고 있어 메모리(23.88%)보다 3배 이상 크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에 쓰이는 만큼 앞으로 시장 확장 가능성도 더 큰데다 메모리보다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을 덜 받아 투자 필요성이 큰 분야다.
삼성전자 로고(위)와 SK하이닉스 로고(아래). [사진=뉴스핌DB] |
업계에서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이 같은 저조한 비메모리 실적을 놓고,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대한 재정비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비메모리 분야의 주요 국내 기업은 삼성전자(73.9%), LX세미콘(11.2%), SK하이닉스(5.9%) 등이다. 이들 기업이 국내 비메모리 점유율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먼저 비메모리 반도체의 소프트웨어(SW) 및 구조(아키텍처) 설계 능력 등에 대한 개선 필요성이 크다.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상반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신제품인 '엑시노스 2300'을 발열과 성능 등 문제로 '갤럭시 S23'에 탑재하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신형 스마트폰 출시를 통해 자체 AP를 탑재, 비메모리 시장의 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지만, 결국 성능 문제로 경쟁사인 '퀄컴'의 제품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셈이다. AP는 스마트폰의 응용프로그램 구동을 담당하는 핵심 칩이다.
이 같은 비메모리 제품의 성능 문제 해결과 안정화는 소프트웨어와 설계 능력의 개선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비메모리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의 영향력 확장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김정호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비메모리는 높은 수준의 소프트웨어와 설계 실력이 필요한데 국내 기업들은 아직 다른 글로벌 기업들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는 수준"이라며 "당장 소프트웨어와 설계에 대한 성과나 인력이 부족해 기업들의 투자가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삼성 등은 설계된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최근 기술 흐름인 '패키징' 과정에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LX세미콘 대전캠퍼스 전경. [사진=LX세미콘] |
이와 함께 국내 기업들의 편중된 사업 포트폴리오도 개선해야 할 부분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국내 2위 기업인 LX세미콘은 전체 매출의 90%를 '디스플레이구동칩(DDI)'에 의존하고 있다. 게다가 LX세미콘은 지난 2021년 LG그룹에서 계열 분리돼 독립 경영 중이지만, 아직 대부분의 매출이 LG디스플레이 등 LG 계열사에서 발생하고 있는 등 여지껏 확보한 고객사의 규모도 협소하다.
SK하이닉스의 경우, 메모리 반도체에 비해 비메모리의 사업 비중이 너무 작아 비메모리로의 대대적인 사업 전환이 필요하다. SK하이닉스의 전체 매출 중 메모리 반도체가 95%를 차지하는 반면, 비메모리는 5%에 불과하다.
또 SK하이닉스는 자회사인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IC)를 통해 '이미지센서(CIS)' 등에 집중해 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AP 등 고성능 비메모리 반도체에는 아직 진출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 비메모리의 주요 소자분류별 매출 가운데 1위를 차지한 분야가 아직 없는 상태다. 산업연구원은 "향후 국가의 시스템반도체 전략 수립과 포지션 식별에서 보다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방향 모색을 위한 다각적 실태 진단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당초 메모리 사업에 집중했던 국내 기업들이 비메모리로 중심축을 옮기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그런 것을 감안해도 기업들의 비메모리 사업의 일부 제품 및 고객 편중 현상이 심각해 비메모리 투자와 인력 확보에 대한 압박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들은 당장의 매출이 아닌,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사업 구조를 바꿀 수 있는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leeiy52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