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대학로 극장 '쿼드' 기획공연 '신파의 세기'가 우리 민족의 얼을 담은 연극의 본질, 신파의 역할을 이야기한다.
17일까지 극장 쿼드에서 공연되는 '신파의 세기'는 장진새 연출의 신작으로 지난 11월 28일부터 공연팬들의 호응 속에 피날레를 앞두고 있다. 제작진은 우리 나라의 역사, 민족과 함께 한 신파를 곧 연극의 정신으로 치환시키고 신파가 외면받고 사라지는 현실, 그럼에도 신파가 필요한 이유를 웃기지만 슬픈 상황 설정을 통해 보여준다.
연극 '신파의 세기'의 한 장면 [사진=서울문화재단] |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 중앙아시아의 한 신생국 치르치르스탄에서는 한국의 K팝, 그리고 신파를 연극을 하는 현대극장 팀장을 초청해 국가의 문화 융성을 도모한다. 거액의 예산을 걸고 벌이는 K콘텐츠 유치전에서 치르치르스탄의 셋째 공주 마리 클리셰가 미는 '신파'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한국처럼 문화의 힘으로 모든 것을 감내하자는 구호에 동원될 모양새다.
가상의 국가 치르치르스탄의 역사와 태생, 현재 놓여있는 상황은 그동안 한국이 거쳐온 역사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가상의 설정을 통해 현재 우리가 놓인 현실을 돌아보자는 제작진의 의도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와 이름으로도 꽤 잘 표현된다. '신파'를 공연하는 현대극장의 팀장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한국에서 쇠퇴하는 신파를 수출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왔다.
연극 '신파의 세기'의 한 장면 [사진=서울문화재단] |
극 중간 중간에 삽입된 K-신파는 관객들의 공감을 사기도,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수일과 심순애'를 연상시키는 K-로맨스의 원조나 이순신의 일화를 떠오르게 하는 애국심 고취 콘텐츠는 지금도 잘 팔리는 신파 그 자체다. 우리 나라에서 공연되는 연극의 본질이 '신파'에 기대고 있다면, 현재 연극의 쇠퇴를 신파의 요소에서 찾아보겠다는 의도가 관객들에게 잘 전달된다.
다만 조금은 기발한 상상력과 재기발랄한 설정을 더한 치르치르스탄의 상황들은 관객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그 뿐이다. 신파가 더 이상 필요없다 말하고, 현대의 관객과 공명하지 못하는 현실이 뼈 아프게 다가오지만 그럼에도 신파의 힘이 필요한 관객들은 여전히 많다. 누군가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다시 일어나게 할 힘을 줘야 할 연극이 필요한 곳에 닿지 않는다는 점을 아프게 꼬집는 신은 가치있지만 과도하게 유쾌한 설정을 입히려 한 점이 아쉬운 지점이다.
연극 '신파의 세기'의 한 장면 [사진=서울문화재단] |
그럼에도 연극의 본질인 '신파'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는 극이다. 최근 영화나 드라마, 모든 콘텐츠에서 '신파'의 시옷 자만 나와도 진저리를 치는 관객들이 수없이 양산된 데에는 '신파'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편견에 치우친 부분이 있다. 신파를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예술가들의 웃픈 상황도 어쩌면 신파 그 자체다. 어쨌든 극을 보고난 뒤엔 신파가 꼭 필요한 곳에서 관객들의 신파와 만나 공명하게 될 날을 기대하게 만든다.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