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야스쿠니 참배 日대표 참석에 '보이콧'
2015년 군함도에 이어 이번에도 또 '뒤통수'
'부실 협상'에 대한 정부 책임론 제기될 듯
한·일 관계 악재...내년 수교 60주년 행사도 차질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니가타현(新潟縣) 사도(佐渡) 광산 추도식을 하루 앞둔 23일 정부가 전격적으로 불참을 결정한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질 조짐이다. 윤석열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기업의 배상 판결 문제를 제3자 변제로 해결한 이후 이어져온 양국 협력 분위기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한·일 관계가 긴장감이 조성되고 있다.
정부가 추도식 불참을 결정한 것은 이 추도식이 사도광산에서 희생된 조선인 노동자를 추모하는 성격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정부가 추도식에 참석하는 일본 중앙정부 대표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 경력이 있는 극우 성향의 정치인 출신인 이쿠이나 아키코(生稻晃子) 외무성 정무관을 보내기로 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동안 일본이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정에서 조선인 강제노동 문제에 대해 전혀 진정성을 보이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이쿠이나 아키코 일본 외무성 정무관 [사진=이쿠이나 정무관 인스타그램] |
사도광산은 일제 강점기 1천500명 이상의 조선인이 강제로 동원돼 노역했던 역사적 현장이다. 그러나 일본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대상 기간을 16∼19세기 중반으로 특정해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을 배제하려 했다.
이 때문에 한국이 사도광산 등재에 반대하자 일본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처했던 가혹한 노동 환경과 고난을 기리기 위한 전시물 설치'와 '일본 정부 관계자가 참석하는 노동자 추도식'을 하기로 약속한 뒤 한국의 동의를 받아 등재에 성공했다.
그러나 일본이 마련한 전시 시설과 전시물에는 조선인이 이곳에서 강제로 노역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 전혀 없었다. 정부는 전시물의 맥락을 살펴보면 강제노역을 했다는 것이 명백하다는 논리로 국내 비판을 진정시켜왔다. 하지만 이번 추도식에 정부대표로 야스쿠니 참배 경력을 가진 인물을 결정하자 더 이상 일을 진행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이날 추도식 불참 배경에 대해 "제반 사정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또 "추도식에 대한 양국 외교당국 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마지막까지 일본을 상대로 협상을 벌였으나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해 불참 결정을 내렸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익명의 외교소식통은 "불참을 결정한 이유가 이쿠이나 정무관이 대표로 결정한 것 때문만은 아니다"라고 말해 추도식 자체 성격과 추도사 내용 등에도 정부의 기대를 충족시킬만한 내용이 없었음을 시사했다.
외교부 관계자와 강제노역 피해자 가족, 취재진 등이 이미 추도식 참석을 위해 일본에 도착한 상황에서 추도식 불참 결정이 내려짐에 따라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추도식 대신 별도 행사를 열기로 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이날 MBN 뉴스와이드에 출연해 "추도식에는 불참하고 우리 유가족 분들과 정부 관계기관들이 별도의 추도식을 하고 관련시설, 박물관 등을 시찰하는 별도 일정을 가질 생각"이라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관계자들이 지난 7월 31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앞에서 '강제동원' 없이 사도광산 등재, 윤석열 정부의 대일 굴종외교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07.31 yooksa@newspim.com |
이번 사태가 가져올 파장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특히 일본이 2015년 하시마 탄광(군함도)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때도 한국과 약속한 내용을 지키지 않은 데 이어 이번에도 유사한 결과가 빚어진 것이어서 국내적으로 일본에 대한 비난 여론과 함께 정부의 외교적 책임 문제가 제기될 수 밖에 없다.
내년 한일 수교 60주년을 앞두고 다양한 협력행사 등 한·일 관계 개선 분위기를 띄우려던 정부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이번 사태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으로 한·미·일 협력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터진 것이서 파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조 장관은 이날 이 같은 우려에 대해 "하나의 단일성인 문제가 전반적인 양국 관계 흐름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도록 양국이 노력해야 한다"면서 "일본 외교당국과 계속 협의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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