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지혜진 기자 = 정치가 멈췄다. 7일에 나올 수도 있다고, 14일쯤, 늦어도 21일에는 나올 거라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예상을 훌쩍 넘어가면서다. 그렇게 멈춘 시간이 한 달. 이제는 여기저기서 헌법재판소마저도 상식을 벗어나는 결정을 하는 아닐까 하는 불안이 엄습한다.
민주주의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귀찮고 번거로운 것이라고 배웠다. 싫은 상대라도 무력으로 제압해선 안 된다고. 민주적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그렇게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상태인 야만을 넘어 사회로, 국가로 넘어왔다. 그런데 최근의 '거리'는 '폭력적인 자연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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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진 정치부 기자 |
이렇게 된 데에는 정치 탓, 경제 탓이 있겠지만 법치가 흔들린다는 점. 사법 정의가 위태롭다는 점도 한몫하는 것 같다. 스웨덴 예테보리대학 산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는 '민주주의 보고서 2025'에서 한국을 지난해('자유민주주의'의 나라)보다 한 단계 아래인 '선거민주주의'의 나라로 분류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선거민주주의를 가르는 차이 중 하나엔 '법 앞의 평등 보장'이 있다. 누군가는 법 앞에 특혜를 받는 사회가 됐다는 것이다.
법원의 윤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은 법치를 흔들었다. 법을 잘 아는 이들은 체포적부심이라는 낯선 조항을 활용해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이후 71년 만에 처음으로 '구속 기간을 날이 아닌 시간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논리를 만들어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판사가 사법적 판결을 내린 게 아니라 입법권을 행사한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는 헌재가 그러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동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헌재는 이 사건 탄핵 심판 심리를 최우선으로 신속히 진행한다 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상대 진영을 악마화하며 거리는 증오로 가득 차고 있는데도 헌재는 말이 없다. 야권에선 "헌재가 선고 일자를 미뤄온 과정에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는 음모론까지 제기된다.
온 국민이 헌재만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공화주의는커녕 민주주의부터 다시 이뤄내야 하는 상황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총을 들고 폭력을 행사한 일을 '계몽'이라고 하지 말자. 야당이 아무리 못하는 것 같아 보여도, 이재명 대표가 아무리 싫어도 민주적 절차로 심판해야 하는 일이다. 민주적 시스템 안에서 싸우자.
문인 414명이 지난 25일 윤 대통령의 파면을 촉구하는 '한 줄 성명'을 발표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는 "훼손되지 말아야 할 생명, 자유, 평화의 가치를 믿습니다. 파면은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송종원 문학평론가는 이렇게 적었다. "헌재야! 봄 온다. 꽃 핀다."
heyji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