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물 국채 수요 상승 기대감
뱅크런·시스템 위기 경고
또 다른 금융공학 도구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스테이블코인이 28조달러 규모의 미국 국채시장에 약일까 아니면 독일까.
미국 국가 부채가 36조달러를 넘었고, 대략 176일마다 1조달러씩 늘어나는 상황과 맞물려 이른바 트럼프 2.0의 정책 공약 중 하나인 스테이블코인이 국채시장에 가져올 파장에 월가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정치권은 장밋빛 전망을 쏟아낸다. JD 밴스 부통령은 스테이블코인이 달러화의 위상을 높이는 한편 미국 경제를 강화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월가에서도 단기물을 중심으로 미국 국채 수요를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는 가운데 일부 석학들이 경고음을 내고 있다. 발행 업체가 붕괴할 경우 시스템 리스크를 일으킬 수 있고, 뱅크런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 스테이블코인과 국채시장 쟁점은 = 미국 하원의 스테이블(STABLE) 법안과 상원의 지니어스(GENIUS) 법안은 같은 목적을 가진 경쟁 법안들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 업체들을 규제의 틀 안으로 끌어들여 자본과 유동성, 위험 관리가 충분한지 명확하게 규정하겠다는 의도다.
미국 금융 매체 포브스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낮지만 스테이블코인의 핵심 쟁점은 미 국채시장에 가져올 영향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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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달러화 [사진=로이터 뉴스핌] |
두 가지 시장이 맞물리는 이유는 국채가 스테이블코인 준비금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안전성과 유동성 측면에서 국채에 견줄 만 한 자산이 없다고 월가는 입을 모은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화와 1 대 1로 연동하는 디지털 화폐로, 발행 업체들은 최대한 안전한 자산을 준비금으로 확보해야 하는데 미국 국채가 일순위로 꼽힌다.
현재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는 약 2400억달러 가량으로 파악된다. 테더가 2014년부터 USDT 발행을 시작했고, 서클이 2018년부터 USDC를 발행하는 등 수십 개 업체가 활동중인데 미국에는 아직 명확한 규제 법안이 없는 실정이다. 각 주마다 다른 규제를 적용하거나 기존의 금융법을 부분적으로 적용하는 등 사실상 '규제 회색지대'에 해당한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엘살바도르에 기반을 둔 테더와 뉴욕에 본사를 둔 서클 등 스테이블코인 업체들은 약 1500억달러 규모의 미 국채를 보유중이며, 주로 단기물에 집중됐다. 28조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채시장을 감안할 때 이는 반올림 오차 수준이고, 6조달러 규모의 단기물 국채 중에서도 지극히 제한적인 물량이다.
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급성장하면 미국 국채 수요가 그만큼 크게 늘어나고, 이는 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영국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불과 3년 뒤 2조달러로 확대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 재무부에 국채 발행 관련 조언을 제공하는 국채타입자문위원회(TBAC)에 따르면 이 경우 단기물 국채 수요가 1조달러 급증할 전망이다. 이와 별도로 씨티그룹은 보고서를 내고 2030년까지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들이 해외 단일 채권국보다 더 큰 물량의 국채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채시장에서 독일과 일본, 중국 등 채권국들을 발행업체들이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다.
◆ 국채 지위 '흔들' 코인이 답일까 =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전망은 미국 국채의 안전자산 입지가 흔들리는 상황과 맞물려 관심을 끈다.
중국부터 사우디 아라비아까지 주요 채권국들은 조용히 보유 물량을 줄이는 움직임이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중국의 보유 물량이 2025년 초 7610억달러를 기록해 2009년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고, 사우디 역시 1260억달러로 1년6개월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외환보유국의 조정과 미 국채에 대한 회의론을 반영하는 결과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른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정책은 달러화와 미 국채의 신뢰를 더욱 떨어뜨린다고 월가는 지적한다.
미국 국채시장의 새로운 매수 세력으로 등장한 스테이블코인이 조명을 받는 것도 이 같은 상황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입장을 이미 분명히 했다. 암호화폐 및 AI 차르인 데이비드 색스는 스테이블 코인이 달러화의 글로벌 지배력 강화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주장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8월 휴회 전에 법안을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달라고 압박하는 상황이다.
미국 의원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전부터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체들을 궁극적인 국채 매수 세력으로 홍보했다. 뉴욕주의 리치 토레스 하원의원은 스테이블코인 채택을 늘릴수록 국채 수요가 늘어난다고 주장했고, 이에 앞서 폴 라이언 전 하원의장도 스테이블코인을 미래 외국인 매도 공세에 대한 완충 장치로 제시했다.
전통적인 국채 매수 기반이 흔들리는 상황에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들이 공백을 채울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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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
관련 업계에서도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암호화폐 전문 투자회사 코인펀드의 크리스토퍼 퍼킨스 대표는 스테이블코인보다 미국에 더 좋은 혁신은 없다고 주장한다. 달러를 전세계적으로 더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글로벌 기축통화의 지위를 강화한다는 얘기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도 보고서를 내고 스테이블코인의 법제화가 미국 단기물 국채 수요를 높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 시스템 위기 몰고 온다 = 경고의 목소리도 거세다. 밴더빌트대학의 예샤 야다브 교수는 포브스와 인터뷰에서 "스테이블코인을 국채시장에 내재화할 경우 새로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국채시장이 어떤 이유로든 스트레드를 받게 되고 미국의 지급 능력에 의구심이 생길 경우 국채가 더 이상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체들에게 안전자산이 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체가 붕괴할 경우에도 파괴적인 위험이 발생한다. 해당 업체가 국채를 대량으로 처분하고 나서면 시장 불안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 중앙은행들과 달리 업체들은 실질적인 뱅크런 사태를 맞을 수 있다고 야다브 교수는 말한다.
위기가 닥칠 때 정부가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체들을 구제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발생한다. 미국 정치권이 이 같은 잠재 리스크에 대해 충분히 충분히 논의하지 않았고, 대응책도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조지워싱턴대학의 아서 윌마스 법학 교수는 미 단기물 국채의 부족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금융시장 여건이 악화될 때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체들의 수요가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다.
또 다른 잠재 리스크도 존재한다. 보더리스닷xyz(Borderless.xyz)의 케빈 레티니티 대표는 스테이블코인이 장기간에 걸쳐 FDIC(미국연방예금보험공사)의 부분 지급 준비 규칙을 적용받을 경우 또 한 차례 서브프라임 사태와 흡사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부분 지급 준비제도를 적용할 경우 스테이블코인 1달러 당 1달러의 국채가 아니라 이를 테면 0.1달러만 국채에 두고 나머지는 고위험 고수익 자산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업체들이 수익률을 높이는 데 혈안이 돼 위험자산을 매입할 경우 기대만큼 국채 수요를 높이지 못할 뿐 아니라 스테이블코인이 또 다른 금융공학의 도구로 전락해 대규모 시스템 위기를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shhw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