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귀국이 지금껏 닫아두었던 무역 시장을 미국에 개방하고, 관세 및 비관세 정책과 무역 장벽을 철폐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이 서한의 조정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앞으로 전달된 이 문장은 협상 안내문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최후통첩에 가깝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에 오는 8월 1일부터 25%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서한을 보내며, 이렇게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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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진 국제부 기자 |
지금까지 닫혀 있던 시장을 열고, 관세와 비관세 무역 장벽을 모두 없애야만, "아마도" 관세율 조정을 고려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트럼프식 협상술이다. 거래의 문은 열어두되, 주도권은 온전히 미국에 있다는 전제. 상호관세 유예 시한은 7월 초에서 8월 1일로 약 3주 연장됐고, 이 기간 동안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요구를 얼마나 수용하느냐에 따라 '관세 폭탄'의 수위가 달라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첫 타깃으로 한국과 일본을 지목한 배경은 단순한 무역 적자 때문만은 아니다. 두 나라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동맹이자, 자동차·철강·배터리·반도체 등 미국 산업과 정면으로 맞붙는 수출국이다. 여기에 경제·안보 전반이 얽혀 있는 동맹 관계인 만큼, 압박할수록 협상 여지가 크고, 실질적 양보를 끌어낼 수 있다는 현실적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번 서한의 진짜 무게는 무역을 넘어선 압박 수단에 있다.
지난달 24~25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은 오는 2035년까지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끌어올리기로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요구해온 국방비 증액 요구가 마침내 관철된 것이다.
문제는 한국에도 'GDP 5%' 수준의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하고 있다는 데 있다. 나토 정상회의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과 면담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유사한 주문이 우리에게도 있다"며 "여러 동맹국들에게 비슷한 주문을 내리고 있는 것이 맞다"고 확인했다.
무역과 안보를 따로 보지 않는 것이 트럼프 특유의 외교 방식이다. 이번 관세 서한은 '무역 장벽을 철폐하라, 그리고 더 많은 방위비를 내라'는, 사실상 두 장의 청구서다.
이밖에 미국은 한국에 대해 △자국산 농축산물 수입 확대 △약가 정책 개선 △디지털 플랫폼 규제법(온라인 플랫폼법) 제정 반대 등, 자국 산업에 불리하거나 진출이 어려운 분야 전반을 '무역 장벽'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 조치를 철회해야만 관세율 조정이 가능하단 논리다.
서한 말미에는 "만약 귀국이 어떤 이유에서든 관세 인상을 결정한다면, 귀국이 선택한 그 인상분은 미국이 부과하는 25% 관세에 추가될 것"이란 노골적인 경고도 담겼다. 이는 상호주의 원칙을 앞세운 듯 보이지만, 실상은 미국만이 무역 규칙을 정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이제 남은 시간은 3주. 한국과 일본, 어느 쪽이 먼저 협상의 문을 두드리고 미국의 요구에 더 충실히 응답하느냐에 따라 다음 달 1일부터 적용될 관세율이 갈릴 수 있다. '동맹'이라는 외교적 포장 아래, 한국과 일본은 이제 누가 더 먼저 미국의 요구에 응할지를 두고 눈치 싸움을 하게 됐다.
wonjc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