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정치적 중립성'은 검사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꼽힌다. 이를 통해 수사 중립성을 지킬 수 있고, 검사가 내리는 처분에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근 몇 년간 검찰 인사에 정치적 이유가 강하게 개입됐고, 그 결과 검찰 신뢰도와 위상이 더욱 바닥을 치게 됐다.
그래서인지 검찰 인사 시즌이 되면 나도 모르게 '색안경'을 장착하게 된다. 누군가 주요 보직을 맡게 되면 '공직자'인 검사로 보기보다 그의 정치색이나 '라인'을 먼저 알아보고, 정부와 코드가 맞거나 학연·근무연, 정치적 이유가 있는 경우 '그러면 그렇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가 개입된 인사가 이어지다 보니 생각이 고착화한건지, 애초 검찰이라는 집단에 정치적 프레임을 씌워놓고 보고 있던 건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어 다른 검사들에게 괜스레 미안하기도 하고 때로는 안타깝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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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김현구 기자 |
어느 정부나 '코드인사'는 있고, 일부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다만 그동안 겪은 코드인사들은 적어도 검찰 본연의 역할만큼은 강조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런 점에서 최근 들은 말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재미있었다.
최근 한 지검장은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너희가 무슨 계획이 있냐. 계획 보고는 하지 마라', '어차피 검찰은 해체될 텐데 계획 보고가 왜 필요하냐'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을 한 검사장은 누구보다 강한 정치색을 드러내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파괴한 인물이고, 최근 인사에서 통상 검사들이 검사장 승진 전 밟는 단계를 모두 건너뛴 코드인사의 대표격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검찰 개혁'의 선봉장 역할을 맡은 법무부 장관도 이 정도로 검찰 조직을 무시하진 않았다. 하물며 검사장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 충격적일 수 있지만 '그'가 한 말이었기 때문에 크게 놀라진 않았다. '내부 고발자'가 유일한 업적인 코드인사가 선택한 유일한 생존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검사장이 검찰총장이나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을 요구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거기까진 다다르지 못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검찰에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검사장이 관할하는 지역 주민들은 무슨 죄가 있을까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이게 검찰의 현주소인가 싶고, 정치의 무서움도 느낀다. 그리고 몇 년간 설마 했던 '검찰 해체'가 진짜 진행되는구나 싶기도 하다.
이번 정부에서 검찰의 해체, 또는 권한 약화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검찰 개혁을 주도할 장관과 민정수석 등이 '합리적 인물'로 평가된다는 점에서, 검찰 내부의 작은 기대가 모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조만간 단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검찰 고위직 대규모 인사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코드인사를 완전 배제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장관과 민정수석 등에서 보여준 합리적 인사가 단행되길 기대한다. '우리 편'이라는 이유로 요직을 남발하던 이전 정부들의 행태를 답습하지 않았으면 한다.
검찰 개혁의 방향이 어떨지는 구체적으로 모르겠지만 더이상 검사들에게 정치적으로 편향돼도, 버티면 승진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줘서는 안 될 것이다.
hyun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