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화 촉진법" vs 업계 "현장 마비법"
사용자 범위 확대·손배 제한에 '촉각'
원청, 하도급 업체 간 '실질적 지배력' 관건
한화오션 갈등서 법원 노조 손들어 줘
주52시간·중대재해법 이어 '3중고' 우려
분양가 상승·공급 부족 우려도 제기
[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과거 거부권을 행사했던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건설업계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복잡한 하도급 구조로 얽힌 건설현장이 사실상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정부는 노사 간 대화를 촉진하는 상생의 법이라고 강조하지만, 건설업계는 주 52시간 근무제, 중대재해처벌법에 이어 노사 관계의 근간마저 흔드는 '세 번째 규제 파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법안 통과 시 공기 지연과 비용 급증은 물론, 산업 생태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 '사용자 범위 확대' 노란봉투법, 법사위 통과…경영계 "현장 마비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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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민의힘 의원들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진행과 관련해 이춘석 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2025.08.01 pangbin@newspim.com |
3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는 지난 1일 전체회의를 열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을 거수 표결을 통해 재적위원 16명 중 찬성 10명, 기권 6명으로 가결했다. 해당 법안은 오는 4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이는 지난달 28일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안이 통과된 지 5일 만으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상당히 빠르게 처리되고 있다. 거대 여당의 주도 하에 법안 처리 속도가 빠르고 정권 초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과거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때와 달리 법안 통과가 유력하게 점쳐진다.
이 법안은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원청을 상대로 한 교섭권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노란봉투법'이란 별칭은 2014년 쌍용자동차 파업 노동자들에게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지자, 한 시민이 노란 월급봉투에 성금을 담아 보낸 것에서 유래했다.
건설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사용자'와 '노동쟁의' 범위의 확대다. 개정안은 근로계약을 직접 맺지 않았더라도, 근로조건에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원청도 사용자로 본다. 예를 들어 A 하청업체 소속 철근 노동조합이 "현장 안전시설물 설치나 전체 공사 일정은 사실상 원청인 B 건설사가 결정하므로, B 건설사가 우리의 실질적인 사용자"라고 주장하며 직접 교섭을 요구할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또한 노동쟁의의 범위가 기존 '근로조건의 결정'에서 '결정' 문구가 삭제돼, 정리해고나 사업장 이전 등 경영상 판단까지 쟁의 대상으로 포함될 길을 열었다는 시각도 있다. 불법 파업 시 조합원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원칙적으로 제한한 조항 역시 파업의 문턱을 크게 낮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달 31일 "수십, 수백 개의 하청업체 노조가 교섭을 요구하면 원청사업주는 일일이 대응할 수 없어 산업현장은 극도의 혼란에 빠질 것"이라며 "개정안은 기업의 투자 결정이나 사업장 이전, 구조조정 등 고도의 경영상 판단사항까지 쟁의행위 대상이 될 수 있어 사용자의 경영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여러 하청업체가 혼재된 건설현장의 특성상 개정안으로 인한 리스크에 직면할 경우 공기 지연과 지연 이자 등 사업비 상승으로 손실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게 건설업계의 우려다.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는 성명서를 통해 "노동쟁의 개념 확대 및 불법파업 손해배상 청구 제한이 시행되면 건설업 영위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를 것"이라며 "상시적 노사 분규는 결국 분양가 상승, 공기 지연으로 인한 부실시공 및 안전사고 위험 증가로 이어져 국민 전체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이 사실상 무력화되면서, 과거 성행했던 노조의 채용 강요나 월례비 요구 같은 불법 행위가 다시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지적도 제기했다.
◆ '실질적 지배력'이 관건…한화오션 갈등서 법원 노조 손들어 줘
업계의 우려와는 반대로 정부는 노란봉투법을 특정 계층이 아닌, 노사 관계 현대화를 위한 '대화 촉진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개정안의 핵심은 '권한과 책임의 일치'라는 입장이다.
김 장관은 지난달 16일 관련 질의에서 "불법 파업 조장법이 아닌, 불법의 근원을 제거해 노사 자치를 실현하고 신뢰를 쌓아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이 원청의 품질 개선으로 이어지는 상생의 패러다임을 만드는 데 기여하도록 잘 살피겠다"고 답했다. 실질적 권한을 가진 사용자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해 노사 간 자율적 대화를 이끌어낸다는 취지다.
고용노동부는 원청이 모든 하청 노조와 무조건 교섭해야 한다는 경영계의 주장은 '과도한 우려'라고 일축했다. 교섭 의무는 원청이 특정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향후 건설 현장의 노사 관계는 '실질적 지배력'이라는 추상적 문구를 법원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전망이다. 법원은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 사건 등에서 하청 근로자의 노무가 원청 사업에 필수적인지, 원청이 경제적·조직적으로 종속시키고 있는지 등을 기준으로 실질적 지배력을 판단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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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금속노조 소속 사내하청 노조가 ▲성과급 지급 ▲학자금 지급 ▲노동조합 활동 보장 ▲노동안전 ▲취업방해 금지 등 5가지를 두고 원청 한화오션을 상대로 단체 교섭을 요구했던 사건에서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는 "한화오션은 사내 협력 업체 소속 근로자의 노동 조건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범위에서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한 사실을 공고하지 않은 행위는 부당노동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법원 역시 한화오션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최수진 부장판사)는 한화오션이 중노위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 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한화오션이 사내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해 성과급과 학자금 지급, 노동안전 의제에 대해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 지위에 있다"고 명시했다. 더 나아가 단체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은 것은 부당노동행위가 아니었다고 본 중노위 판단에 대해서도 "실질적지배력설이 아니라 근로계약관계설을 취한 것과 다르지 않으므로 부당하다"며 "단체교섭 미공고 행위 역시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게 논리적 귀결"이라고 판결했다.
이같은 법적 판례가 명시되면서 원청의 실질적 지배에 대한 법적 다툼에서 원청이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건설사들은 법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하도급 계약서에 노사 분쟁 책임을 전가하는 조항을 추가하고, '노사 관계 안정성'을 하도급 업체 선정의 핵심 기준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오너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기업 오너들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전문경영인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다"며 "이처럼 책임자를 새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추가 인건비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규제 '3중고'에 건설업계 신음…분양가 상승·공급 부족 우려
정부는 법 시행 전 매뉴얼과 지침을 마련해 현장 혼란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의 불안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미 몇 차례 노동법 관련 개정안으로 인한 사업 변화를 겪은 탓이다.
업계는 이미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공기 연장과 간접노무비 급증이라는 '시간과 비용'의 압박을 겪어왔다. 정해진 공기 내에 공사를 마치기 어려워지면서 부실시공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여기에 2022년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원청에 하청 근로자의 안전까지 책임지게 하며 법적 리스크를 극도로 높였다. 이런 상황에서 노란봉투법은 '노사 관계의 권력 구조' 자체를 흔드는 세 번째 규제 파도로 여겨진다. 원청이 하청업체의 근로시간과 안전에 이어 노사 분쟁까지 직접 책임져야 하는 '3중고'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파업 리스크가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 지연과 그에 따른 비용 증가는 결국 분양가 상승과 공급 부족으로 이어져 소비자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현재 서울과 수도권 중심으로 공급이 부족한 상황인데, 노란봉투법 통과는 공급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 교수는 "여러 규제가 동시에 적용될 경우 건설업계의 경영 위축이 심하게 우려된다"며 "이미 악화일로인 건설경기가 규제로 인한 인건비 상승 및 공기 지연이라는 이중고를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dos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