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보다 본능에 따른 외교방식 선호
부동산개발업자 출신 외교책사 주도
[워싱턴=뉴스핌] 박정우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년 반을 넘긴 우크라이나전쟁의 종식을 위한 외교적 해법 마련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지만 러시아가 핵심 쟁점에 대해 거듭해서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트럼프식 외교가 시작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특히 지난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알래스카 정상회담 뒤 러시아가 전향적인 입장으로 선회했다고 평가하며 기대감을 키웠던 트럼프 대통령과 핵심 외교참모들의 외교력에도 의구심이 일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20일(현지시간) 러시아, 우크라이나, 유럽 정상들과의 잇단 회담을 외교적 승리로 내세우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칭 평화 중재자 이미지가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회담 뒤 유럽의 지상군 파견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보장 방안에 포함된다는 점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푸틴 대통령이 약속했다고 반복해 말했지만 러시아 측이 두 사안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는 것.
실제 드리트리 메드베데프 전 러시아 대통령은 이 날 소셜미디어 X에 "평화유지군으로 (우크라이나에)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군을 배치하는 건 러시아가 받아들일 수 없는 안전보장"이라고 적었다. 그는 평화유지군 파병에 적극적인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멍청한 갈리아 수탉'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이같이 말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젤렌스키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신속한 정상회담 가능성을 일축한 뒤 한 발 나아가 러시아가 실질적인 거부권을 가질 때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보장 방안에 동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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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8월18일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맞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을 만난 뒤 외교적 성과라고 주장했던 핵심 사안에 대한 러시아 측의 반박이 이어지자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푸틴 대통령의 입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WP는 지적했다.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고, 우크라이나 군대를 무력화하며, 아직 점령하지 못 한 동부 돈바스 지역 영토를 이양받아야 한다는 러시아의 종전 조건에 변화가 없는 데도 푸틴의 입장이 바뀌었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 물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는 물론 기타 국제기구 가입도 영구 금지하고 외국군 주둔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에도 변함이 없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 경험이 부족한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및 러시아 특사에게 푸틴 대통령과의 협상을 맡긴 뒤 유럽 동맹국들이 헷갈리는 협상 결과를 전달받았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에 대한 공격 중단을 푸틴 대통령이 제안한 데 대해 협상단이 러시아의 철수 제안으로 해석한 점이 사실상 실수였다는 것이다. 러시아 측은 동부 돈바스 지역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서 남부 지역에서 전투만 중단할 준비가 돼 있다고 확인했다.
위트코프 특사가 알래스카 정상회담 뒤 푸틴 대통령이 미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나토의 집단방위 의무와 유사한 안전보장 제공에 동의했다고 밝힌데 대해서도 오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위트코프 특사가 우트라이나에 대한 안전보장이 나토 조약 제5조를 본떠 만들어졌다면서도 미국의 군사적 직접 개입은 없다고 했지만 제5조의 핵심이 바로 미국의 자동 군사개입이라는 점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
전문가들은 이런 혼란과 현실적 난제 탓에 현 시점에서 푸틴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조만간 만날 가능성은 작다고 내다보면서도 협상 자체가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다만 우크라이나전쟁의 신속한 종식을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바람과 달리 진지한 협상은 올 연말을 넘겨 이어질 수도 있다는 예상이다.
푸틴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에 의지해 면밀한 검토와 토론 등 과정보다는 본능에 충실한 외교를 선호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야심찬 시도가 좌초하지 않고 이어질지 주목된다.
dczoomi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