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대, '금융 개편' 백지화…재경부에 기능 이관 안 해
재경부, '세제'만 갖고 출범…경제사령탑 지위 약화 우려
기재부 "사령탑 변함 없어…재정·금융 당국과 긴밀 소통"
위기 발생시 재경부 대응 능력 시험대…개편 성패 가를 듯
[세종=뉴스핌] 김기랑 기자 =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에서 금융 당국 개편이 전면 백지화되면서 기획재정부의 향후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당초 예산 기능을 떼어 내는 대신 국내 금융 정책 기능을 이관받아 '경제사령탑'으로서 균형을 유지하려 했지만, 이 구상이 무산되면서 신설될 재정경제부에는 세제만 남게 됐다.
이로 인해 조직 내부에서는 예산·금융 없이 무슨 수로 경제 정책을 총괄하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거시경제 운용에서 예산·금융의 비중이 큰 만큼, 정책 총괄 기능이 약화되고 경기 대응 속도와 조율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경제 정책의 집행력을 담보하기 어려워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 당정대, 금융권 반발에 '금융 기능 이관' 취소…재경부에 '세제'뿐
26일 정부 등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정부·대통령실(당정대)은 지난 25일 국회에서 고위 당정대 협의를 열고 금융위원회의 정책·감독 기능 분리와 금융소비자원 신설 방안을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기재부는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분리되지만, 금융 기능은 현행 금융위·금융감독원 체제를 유지하게 된다.
당초 당정대는 기재부를 둘로 쪼개면서 재경부에 금융위의 국내 금융 정책 기능을 붙여 경제사령탑의 힘을 보완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줄곧 지적해온 기재부 권한 집중 문제를 완화하면서도, 경제 정책의 컨트롤타워 기능은 지켜내려는 절충안이었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재정·예산을 한 손에 쥔 기재부의 권한이 비대하다고 여러 차례 지적해왔다. 실제로 이번 개편안도 그 연장선상에서 설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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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대통령실과 더불어민주당이 금융위원회 해체 등을 담은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 [사진=대통령실] |
그러나 금융권을 중심으로 한 강한 반발과 정치권 내 이견이 겹치면서 금융 기능 이관은 끝내 무산됐다. 금융위 안팎에서는 정책과 감독 기능을 떼어낼 경우 시장 혼란과 규제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반발이 터져 나왔고, 국회 논의 역시 속도를 내지 못했다. 결국 당정대가 개편안을 조정하면서 재경부는 세제 기능에만 의존한 채 출범을 앞두게 됐다.
경제 정책 추진의 핵심 수단은 예산·세제·금융·규제로 꼽힌다. 현행 기재부는 예산과 세제를 모두 쥐고 있어 거시경제 운용의 중심에 서 있지만, 개편 이후 출범할 재경부는 세제만 다루는 구조로 바뀌게 된다. 원래 갖고 있던 예산 권한은 국무총리실 산하 예산처로 넘어가고, 예산이 빠져나간 자리를 보완할 수 있는 금융 기능은 그대로 금융위에 남는다. 경제사령탑으로서의 힘이 반토막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기재부는 이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재경부가 여전히 거시경제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예산과 금융 기능이 빠지더라도 부총리 부처라는 위상은 유지되며, 법안이 확정되면 경제 정책 총괄 조정 기능을 오히려 강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지난 25일 입장문을 내고 "신설될 재경부가 부총리 부처로서 경제사령탑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며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확정될 시 경제 정책 총괄 조정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민생 경제 회복과 초혁신 경제 구축을 흔들림 없이 추진할 수 있도록 재정·금융 당국과도 긴밀히 소통하겠다"고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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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 수단도 없어" 내부 우려 확산…"정치 논리 따라" 비판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재경부가 세제만으로는 경제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온다. 예산과 금융이 정책의 속도 조절 장치라면, 세제는 구조를 바꾸는 장기적 수단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워지고, 부처 간 조율력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내부에서도 유사한 문제의식이 퍼지고 있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세제만 갖고는 경기 침체나 금융시장 불안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컨트롤타워라는 이름은 남겠지만,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실제 조율은 다른 부처 손을 빌려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직원은 "예산과 금융이 빠져나간 이상 재경부가 회의에서 중심을 잡기 힘들다"며 "과거에는 다른 부처가 기재부를 설득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재경부가 자료를 들고 다니며 협조를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될 수 있다"고 토로했다.
기재부 내부망에도 부정적인 글들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예산도 없고 금융도 없는데 무슨 수로 경제 정책을 총괄하느냐"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부총리 부처인데도 아무 수단이 없다"는 비아냥부터 "그동안 기재부가 누려왔던 것들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냉소 등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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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금융감독원 비상대책위원회가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대로에서 금융감독원 조직 개편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피켓을 들고 있다. 2025.09.18 pangbin@newspim.com |
정치적 맥락도 무시하기 어렵다. 당정대는 당초 금융위 개편안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할 계획이었지만, 금융권의 반발과 국회 논의 지연을 감안해 결국 백지화했다.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의 기능과 권한을 놓고 정치적 계산이 우선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기재부 모 관계자는 "당초 개편안의 핵심 취지는 경제 정책 수단을 균형 있게 배분하자는 데 있었는데, 결국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후퇴한 측면이 크다"며 "정책 논리가 아닌 정치 논리에 휘둘린 건 아쉽다"고 말했다.
결국 남은 과제는 '수단 없는 사령탑'이란 비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다. 재경부가 세제만으로 경제 정책의 무게중심을 지킬 수 있을지, 아니면 또 다른 권한 조정이 뒤따를지는 미지수다. 현재 당정대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연내 처리해 내년 1월부터 새로운 재경부와 예산처를 출범시키겠다는 방침으로, 조직 개편 이후에는 재경부의 조정 기능을 보완할 후속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개편안 시행이 점차 다가옴에 따라 향후 거시경제 위기 상황에서 재경부의 대응력이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단기적 경기 부양이나 금융시장 안정 등의 긴급 과제 앞에서 세제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실제 위기 국면이 닥칠 경우 재경부가 얼마나 조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가 이번 개편의 성패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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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 전경 2025.05.09 |
r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