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은 부동산·美 기술주로
美 벤처투자, 유럽의 4배
"리스크 온 vs 리스크 오프"
[서울=뉴스핌] 고인원 기자= 프랑스 공공투자은행(Bpifrance)의 니콜라 뒤푸르크 행장이 유럽의 경제 현실을 두고 "우울한 미래"를 경고했다. 그는 "유럽은 세계 두 거대 경제 사이에 끼여 스스로의 미래 핵심산업을 키울 자금조차 조달하지 못하고 있다"며 "중국에는 산업적으로, 미국에는 디지털로 사실상 이중 식민화되고 있다"고 강한 표현을 썼다.
뒤푸르크 행장은 지난주 파리에서 열린 사모투자 컨퍼런스(IPEM)에서 "이는 미래의 얘기가 아니라 현재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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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깃발 [사진=로이터 뉴스핌] |
◆ 자본은 부동산·美 기술주로
그가 꼽은 핵심 문제는 유럽 내 막대한 민간·기관 자금이 자국 혁신기업이 아닌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초고액 자산가, 패밀리오피스, 자산운용사 등은 보수적 투자처인 부동산을 선호하고, 위험자산 투자가 필요할 때도 미국 빅테크에 자금을 쏟아붓는다는 것이다. "유럽의 저축이 위험자산에 투자될 때, 그 돈은 미국으로 간다"는 것이다.
실제 프랑스 양자컴퓨팅 스타트업 콩델라(Quandela) 는 일부 미국 경쟁사보다 앞선 칩 기술을 확보했음에도, 유럽 내 민간 자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공투자은행이 이 회사 투자 라운드 세 차례에 참여했지만, 전체 조달액은 6185만 유로에 불과하다.
◆ 美 벤처투자, 유럽의 4배
시장 조사기관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미국 벤처투자 규모는 유럽의 약 4배에 달했다. 뒤푸르크 행장은 "유럽의 미래는 딥테크에 달려있지만, 우리는 절실히 민간 자본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유럽의 '리스크 회피 성향'을 문제로 꼽으며, 실리콘밸리 문화와 비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투자자들은 미래 지배력을 위해 고위험·고성장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것을 '의무'로 여긴다. 그러나 유럽은 여전히 관광, 와인, 부동산, 미국 빅테크에만 투자한다"고 꼬집었다.
◆ "리스크 온 vs 리스크 오프"
영국 VC 펀드 20VC의 해리 스테빙스도 "영국 역시 '리스크 오프' 문화가 지배적"이라며 비슷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조성한 8억~8억5000만 달러 규모 펀드 중 7억5000만 달러가 미국 자금"이라며 "투자로 수익을 내면 결국 그 돈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스웨덴은 예외적으로 활발한 IPO 시장을 보이고 있다. 올해 들어 20억 달러 이상을 주식시장 신규 상장으로 조달했는데, 이는 채권보다 주식을 더 수용하는 스웨덴 특유의 위험 선호 문화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국가 개입만으로는 부족"
프랑스 공공투자은행은 양자·반도체·AI 등 전략 산업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뒤푸르크 행장은 "국가 개입만으로는 역부족"이라며 "유럽 자본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더 공격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oinw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