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교 교수 인터뷰
"범죄라는 생각 들어도 탈출하려면 굉장한 결심 필요"
"개인 일탈로만 치부해선 안 돼...정부도 예방 나서야"
범행으로 취득한 금액 중 20% 상당 '인센티브'
[서울=뉴스핌] 홍석희 기자 = "일단 새로운 기회라는 생각이 들 거예요. 물가는 오르고 취업은 어려워진 절박한 현실에서 '조금 고생해서 큰돈 벌어 오면 시드머니라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 그래서 초반에 제안하는 높은 보수가 큰 유혹으로 작동하는 겁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난 5일 뉴스핌과의 인터뷰에서 해외 보이스피싱 조직에 뛰어드는 청년층의 심리를 이 같이 진단했다.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유혹에 넘어가 범죄 생활에 적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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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사진=본인 제공] |
◆ 캄보디아발 범죄 급증..."청년들, 높은 보수에 유혹"
최근 캄보디아발 조직범죄가 폭증하는 가운데, 취업에 실패한 청년들이 해외 보이스피싱 조직 등으로 유입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캄보디아 내 한국인 취업 사기·감금 신고 접수는 2021년 4건, 2022년 1건에서 2023년 17건, 2024년 220건, 2025년(~8월) 330건으로 폭등했다.
"사람은 사고할 때 이득과 손해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어려워요. 어떤 사람은 이득을 과대평가하고 손실·처벌은 약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한 탕만 하면 된다', '걸리지만 않으면 괜찮다' 같은 사고가 사기나 범죄로 쉽게 이어지는 겁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같은 현상을 '인지적 편향(cognitive bias)'이라 부른다. 사람이 정보를 판단하거나 결정을 내릴 때 합리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특정 방향으로 왜곡된 판단을 하는 심리적 경향을 의미한다. 돈이 절박한 상태일수록, 또 주변에서 '누가 벌었다더라'는 이야기가 들릴수록 이러한 편향은 더 강해진다.
특히 청년층이 많이 유입되는 배경에 대해 곽 교수는 '청년기 특유의 도전 성향'과 '한국 사회의 구조적 압박'이 결합된 결과라고 봤다.
곽 교수는 "청년은 본래 위험을 감수하려는 성향이 크다. 나이가 들면 현상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해지지만 20·30대엔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심리가 강하다"며 "여기에 취업난, 물가 상승, 경제적 압박이 겹치면 비록 해외라 하더라도 높은 보수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들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 "범죄란 생각 들어도...'탈출할까' 갈등하기보단 순응"
하지만 현지에 도착해 마주하는 현실은 예상했던 것과 다르다. 기계적이고, 군대식 통제에 가깝고, 도주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이 조직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곽 교수는 '인간의 적응성'과 '탈출 시 감당해야 할 부담'을 언급했다.
"이곳이 범죄 조직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과감히 떨치고 나오기 쉽지 않아요. 일단 시작해버리면, 거기서 빠져나오기 위해 굉장한 결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갈등이 큰 상황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순응'을 선택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거나, '조금만 더 버티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식으로 스스로 합리화를 하게 되는 거죠."
곽 교수는 '풋 인 더 도어(Foot in the door)'라는 심리학 개념을 제시했다. 작은 행동을 먼저 수락하면, 이후 더 큰 행동도 자연스럽게 따라 하게 되는 현상이다.
그는 "일단 '가보는 것'만으로도 문턱을 넘은 것"이라며 "이후 범죄 업무에 투입되면, 문을 박차고 나오기보다는 순응해서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게 덜 괴로운 것이다. 갈등을 피하고 체념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도 이들이 범죄 행위에서 쉽게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했다. 부산지법 형사 5부(재판장 김현순)는 '로맨스 스캠' 범죄조직 구성원으로 활동한 피고인들에게 징역 3년~3년 6개월을 선고하면서도 "피고인이 이 사건 범죄단체에서 즉시 탈퇴하거나 범행을 중단하지 못한 경위에 다소나마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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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홍석희 기자, ChatGPT 활용] |
보이스피싱 조직들은 월 단위 급여나 성과금을 지급해 구성원들의 죄책감을 희석시키는 방식도 사용한다. 한 판결문에 드러난 범죄조직 운영 실태를 보면 매월 약 292만원의 기본급이 지급되고, 범행으로 취득한 금액 중 20% 상당이 인센티브로 지급된다.
곽 교수는 "경제적 보상이 죄책감을 덮어버리는 구조"라며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돈이 들어오면, 그 돈이 죄책감·두려움 같은 감정을 '보상'해 준다. 돈이 강력한 미끼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급증한 '로맨스 스캠' 유형에 대해 곽 교수는 '비대면 환경에서 죄책감이 약해지는 심리적 특성'을 지적했다.
그는 "비대면에서는 상대의 얼굴을 보지 않으니 죄책감이 줄어든다"며 "실제로 만남을 갖고 사기를 치는 것보다 훨씬 쉽고 부담이 적다. 그래서 이런 형태의 범죄가 더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곽 교수는 청년들이 해외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으로 유입되는 현상을 개인적 일탈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단 당사자들이 그러한 제안을 받더라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다"면서도 "정부나 지자체 등도 해외 취업 상담실 등을 적극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hong90@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