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우크라이나 부패수사 당국이 28일(현지 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드리 예르마크 비서실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정국을 강타하고 있는 '에너지 부패 스캔들' 관련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 종전 협상을 둘러싸고 미국·러시아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고 있는 젤렌스키 정권이 국내 부패 스캔들로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받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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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로이터 뉴스핌] |
우크라이나 국가반부패국(NABU)과 반부패특별검사실(SAPO)은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대통령 비서실장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 기관은 "이번 압수수색은 '승인'된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는 조사와 관련있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상황을 잘 아는 소식통에 따르면 "오늘 새벽 수사관 12명 정도가 수도 키이우의 고도로 경비가 삼엄한 구역에 있는 예르마크의 거주지에 들이닥쳤다"고 말했다.
올해 만 54세인 예르마크 비서실장은 자신보다 일곱살 어린 젤렌스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현 정권에서 '최고 실세'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변호사이자 사업가, 영화 제작자로 활동하던 그는 지난 2011년부터 젤렌스키와 인연을 맺었고, 2019년 대선 캠페인을 이끌었다. 젤렌스키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비서실장이 됐다.
정국 운영은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엔 전투 작전과 지원, 외교 전략 수립·실행에도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대표단과 협상을 벌이고 '평화 프레임워크'를 도출해 내는 과정에서도 그의 역할이 크게 부각됐다.
FT는 "젤렌스키는 예르마크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다"며 "종종 예르마크는 대통령처럼 행동하며 평화 계획을 수립하고, 비공식 외교 채널을 지휘하며, 내각 인사를 직접 지명하고, 군사적 결정을 내린다"고 했다
빅토르 유센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올레흐 리바추크는 지난 7월 FT와 인터뷰에서 "젤렌스키에 대해 얘기하면 예르마크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고, 예르마크에 대해 얘기하면 젤렌스키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라며 "그들은 하나"라고 말했다.
집권 여당 소속 의원 3명은 "이번 수색이 예르마크 해임을 요구하는 새 목소리를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며 "평화 회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부패수사 당국은 예르마크 비서실장이 최근 터진 에너지 부패 스캔들에 관여했는지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NABU 등은 우크라이나 원자력공사 에네르고아톰의 고위 간부 등이 조직적으로 협력사들에서 정부 계약 금액의 10∼15%에 해당하는 리베이트를 받아 챙긴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리베이트는 별도 사무실에서 관리됐고 역외 기업 네트워크를 통해 자금 세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탁된 자금 규모는 1억 달러 정도로 추산됐다.
수사 과정에서 익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도청 자료가 확보됐는데, 이 인물이 예르마크 비서실장이거나 그의 측근 중 한 명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예르마크 비서실장은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오늘 NABU와 SAPO가 내 집에서 수사 절차를 밟고 있다"며 "수사관들 활동에 어떠한 방해도 없으며 전적으로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나를 언급하며 때로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일로 비난하려 한다"며 사건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에너지 부패 스캔들은 젤렌스키 정권을 크게 흔들고 있다.
전·현직 에너지부 장관이 연루됐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전 에너지부 장관인 헤르만 갈루셴코 법무장관과 스비틀라나 흐린추크 에너지부 장관이 물러났다.
FT는 "평화 협상 등 중요한 순간에 젤렌스키의 입지가 매우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번 사태로 우크라이나에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계속하고 있는 서방 동맹 사이에 우크라이나의 부패와 지속적인 뇌물 행태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젤렌스키는 지난주 의원들과 비공개 회의에서 예르마크를 해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참석자들은 "의원 수십 명이 예르마크 해임과 대통령실의 광범위한 인사 개편을 지지했다"고 FT는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