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시흥·의왕군포안산 등 행정 절차 지연…보상 '올스톱'
LH 부채 170조원 '위험수위'…보상 재원 말랐다
[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정부가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3기 신도시 후속 지구를 비롯한 수도권 공공택지 개발 현장에서 토지 보상금 지급 이행을 둘러싼 잡음이 커지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제시한 사업 추진 일정에 필요한 재원이 충분히 뒷받침될 수 있을지를 놓고 시장의 의구심이 제기되는 분위기다.
◆ "토지 보상비 20조원인데"…3기 신도시 후속 지구 보상 지연

18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추진 중인 주요 공공택지 개발 현장에서 토지 보상이 당초 계획보다 지연되면서 공급 일정 전반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취약한 유동성이 소극적인 보상 집행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정부는 총 2만 가구 규모의 공동주택 공급을 추진 중인 ′서리풀1·2지구′의 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보상 소요 기간을 1년 이상 단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토지 소유주를 중심으로 한 주민들은 재산권 침해 우려와 보상 대책의 불충분함을 이유로 공공주택지구 지정에 반대하며 집단 반발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서리풀2지구에서는 지난달 24일 예정됐던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초안 공청회가 주민 반발로 무산됐다.
이미 지정이 완료된 주요 공공택지 가운데서도 토지 보상이 사실상 진척되지 않은 곳이 적지 않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후반기에 지정된 이른바 '3기 신도시 후속 지구' 4곳(광명시흥, 의왕·군포·안산, 화성진안, 화성봉담3)의 토지 보상 진행률은 사실상 0%에 머물러 있다. 이들 지구의 총면적은 약 2550만㎡(약 770만 평)에 달하며, 추산되는 보상비만 최소 20조원을 웃돈다.
상황이 가장 심각한 곳은 3기 신도시 가운데 최대 규모인 광명시흥지구다. 7만 가구 공급이 예정된 광명시흥은 서울과 인접한 입지적 강점에도 불구하고 높은 토지 가격이 오히려 사업 추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LH는 연내 보상 착수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지난달에야 토지 감정평가사를 선정한 상태로, 실제 토지 보상 계획은 내년 11월에나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현장에서는 "서울 인접지라는 이유로 기대감만 키워놓고 정작 보상 단계에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대토 보상을 기대해 대출을 받아 인근 토지를 매입한 일부 원주민들은 고금리 부담이 겹치며 재무적 압박에 내몰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GTX-C 노선과 연계된 의왕·군포·안산 지구(약 4만1000가구) 역시 행정 절차 지연에 발목이 잡혔다. 당초 2024년 완료 예정이었던 지구계획 승인 절차는 해를 넘겨 2025년 말 현재까지도 국토교통부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LH는 2026년 하반기 보상계획 공고 등 기존 일정에 맞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통상 지구계획 승인 이후 지장물 조사에만 1년 이상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보상금 지급은 이르면 2027년, 입주는 2030년 이후로 미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LH 부채 170조원 '위험수위'…보상 재원 말랐다
현장에서 토지 보상이 사실상 멈춰 선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사업 주체인 LH의 심각한 재정 여건이 지목된다. 기획재정부의 '2025~2029년 공공기관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 따르면 올해 말 LH의 부채 규모는 약 17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부채비율도 정부 관리 목표치인 200%를 크게 웃도는 226% 수준까지 치솟은 상태다.
문제는 단순한 부채 규모를 넘어 부채의 '질'이다. 과거에는 정책성 기금 등 상대적으로 금리 부담이 낮은 차입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고금리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공사채 등 사채 비중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안정적인 현금 창출원이 부족한 LH로서는 추가 차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이마저도 한계에 직면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LH는 올해 매입임대주택 확대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등 정부의 각종 주거안정 정책을 수행하며 가용 자금을 대부분 소진했다. 그 여파로 연간 토지보상금 집행액은 2022년 약 9조원에서 2025년 1조원대 초반으로 급감했다. 이는 LH가 신규 보상에 나서기보다는 사실상 '동결' 기조로 전환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부족한 재원을 채우기 위해 공사채 발행을 확대하는 방안 역시 부담이 적지 않다. LH가 대규모로 채권을 발행할 경우 시중 자금을 흡수해 일반 기업의 자금 조달을 위축시키는 이른바 '구축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 때문에 LH로서도 무작정 공사채 발행을 늘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같은 여건을 감안하면, 통상 토지 보상부터 착공까지 1~2년, 이후 공사 기간 3년가량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아직 보상이 이뤄지지 않은 공공택지 지구는 2030년 이전에 주택 공급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대로 보상 속도를 높이기 위해 보상 단가를 상향할 경우, 이는 곧바로 LH의 재무 부담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악순환의 배경으로 제도 환경 변화와 공공기관의 구조적 한계를 동시에 지적한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공공 주도 개발에 대해 사회적 수용성이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최근에는 사유재산권 보호에 대한 인식이 크게 강화됐다"며 "법과 제도가 정한 절차를 엄격히 밟아야 하는 만큼 과거처럼 속도전에 의존한 보상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LH의 부채비율 상승과 공사채 발행 확대를 둘러싼 재무 건전성 논란에 대해서도 공공성과 수익성 사이의 구조적 딜레마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서 교수는 "LH는 정부의 주거복지 정책을 수행해야 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수익성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기도, 그렇다고 손실을 감수하지 않을 수도 없는 모순적 위치에 놓여 있다"며 "정부가 향후에도 주거·공공복지 정책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큰 만큼 LH의 재정 여건은 당분간 악화 흐름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결국 보상 속도를 높이려면 보상금을 상향해 협의를 유도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다시 LH의 재무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doso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