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침략에 韓 공식입장은 '미국과 보조 맞추기'
국제법 위반 지적한 '최소한 흔적'이라도 남겼어야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공격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하고 베네수엘라 국정을 '접수'한 것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지지와 규탄 사이에 긴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
가장 선명하게 반대·규탄한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다. 베네수엘라 석유 자원을 놓고 미국과 경쟁해 온 중국은 "미국이 주권국가에 서슴없이 무력을 사용하고 일국의 대통령을 체포한 것에 깊은 충격을 받았으며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했다. 러시아는 자신들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잊은 듯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무력 침략 행위를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중남미 좌파의 리더'인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도 미국의 행위가 용납할 수준을 넘었다고 비판했고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도 미국에 국제법을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반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미국의 작전 성공을 축하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경의를 표했다. 극우 성향의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도 미국을 두둔했다. '남미의 트럼프'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X(엑스)'에 "자유 만세"라고 썼다.
유럽 국가들은 미국 지지 의사를 분명히 밝힌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우려와 신중' 사이에 위치했다. 마두로 정권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미국의 일방적인 무력 행사에 우려가 배어 있는 뉘앙스다.
일본은 유럽보다 더 신중했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는 "우리는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 회복과 상황 안정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촉진할 것"이라고 원칙론을 폈다. 하지만 일본은 외무성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일본은 국제법 원칙에 대한 존중을 일관되게 중시해 왔다"는 입장을 별도로 밝혀 '이중적 메시지'를 발신했다.
한국의 공식 입장은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의사가 존중되는 가운데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대화를 통해 상황이 조속히 안정되기를 희망한다"였다. 일본과 유사한 톤이지만 국제법 관련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다. 일본보다 한 발 더 미국 쪽에 가 있다.
사실 이번 사태는 별다른 고려가 필요치 않을 정도로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다른 국가의 영토적 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무력을 사용하거나 위협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유엔 헌장 제2조 4항을 굳이 상기시킬 필요도 없다. 마두로 대통령이 선거 부정과 마약 범죄 등을 저질렀어도 그것이 국제법에서 군사공격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각국 반응이 천차만별인 것은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 저지른 일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정의 실현의 장이 아니라 냉혹한 정글에 가깝다. 국제적 사안을 객관적인 판단에만 의존해 자신있게 평가할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없다. 한국은 미·중·러 등 강대국이 한반도 정세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처신하기 어렵다. 국제적 사안에 한국 외교부가 내놓는 PG(press guidance)는 여러가지 상황을 모두 고려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물이다.
한국 외교부 PG의 가장 강력한 기준은 '미국'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은 사안은 한국에게는 매우 쉬운 선택이다. 미국이 러시아의 행위를 강력히 비난하고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섰기 때문이다. 실제로 러-우 전쟁 발생 당시 한국은 곧바로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고 국제 제재에 동참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입장을 냈다가 미국이 관여한 뒤 달라진 경우도 있다. 지난해 6월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을 공격했을때 한국은 곧바로 이스라엘의 행위를 규탄하고 자제를 촉구했다. 그러나 열흘 뒤 미국이 이란 핵시설을 폭격하자 한국의 입장은 180도 바뀌었다.
당시 외교부는 미국의 공격에 대해 "우리 정부는 핵비확산 관점에서 이란 핵문제 해결을 중시하고 있다"는 PG를 냈다. 이스라엘의 공격은 규탄했으면서 미국의 폭격을 하자 이란 핵문제 해결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핵비확산 관점에서' 미국의 공격이 정당하다는 입장으로 급변한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외교 슬로건은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다. 국익을 추구하지 않는 외교는 없으므로 '실용외교'라는 말은 사실 동어반복이다. 그럼에도 실용을 강조한 것은 명분에 집착해 불필요한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외교에서 명분을 도외시한 채 실리만 추구할 수는 없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유리한 것만 취하겠다는 외교는 설 자리가 없다. 명분이 없으면 눈앞의 떡도 집을 수 없는 게 외교다. 명분과 실리가 서로 부합해야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외교가 된다. 실리를 추구하는 행위에 어떻게 명분을 갖다 대느냐가 관건이며 외교 실력이다.
지금 대부분의 국가는 미국의 위세에 눌려 먼 산 보며 혼잣말하듯 '국제법 위반'을 언급하고 있다. 한국은 그 조차도 하지 않았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격은 훗날 제대로 된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미국을 비판할 수 없는 현실은 이해하지만,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한국도 일본처럼 미국의 행위가 국제법 위반임을 인정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흔적이라도 남겼어야 했다. 한·미 관계만을 생각하는 것이 실용외교의 길은 아닐 것이다.
opento@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