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 수요예측 실패, 노후화 등 '복합 위기'
해외는 독립기구로 우선순위 평가
대통령 직속 '국가인프라정책위' 신설 제안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인프라가 지역 갈등의 불씨가 될 때마다 대응과 봉합을 반복하는 구조를 바꾸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계획·예산·평가가 부처별로 흩어진 현 체계의 한계를 짚으며, 국가 차원의 통합 조정과 사후관리까지 책임지는 거버넌스를 법으로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다.

9일 대한토목학회는 '국토인프라 기본법(가칭) 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 이 같이 밝혔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인프라를 국가 전략과의 연계, 사회적 포용, 환경적 지속가능성 달성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본다. 여기서의 인프라 거버넌스 계획만 세우는 차원이 아니라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며, 유지·관리까지 이어지는 의사결정 체계를 폭넓게 포함하는 개념이다.
OECD의 '인프라 거버넌스 지표'(Strategic vision)에서 한국은 평균보다 다소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인프라 계획의 조정이나 우선순위 수립 점수는 높았지만 ▲중장기 계획을 둘러싼 정치적 합의 ▲이해관계자 참여 ▲계획과 예산 배정의 일치 등에선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최근 불거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이전 논란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인프라 개발이 지역 간 갈등과 이익 배분 문제로 쉽게 비화하는 구조는 사안별 '땜질'식 대응이 반복돼 생겼다는 주장이다.
진경호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설정책연구본부장은 "실제로 도로와 전력망을 공동으로 건설해 부담을 나누자는 해법이 제시되기도 했지만, 이런 조정안을 제도적으로 굴리고 이해관계자 간 조율을 지속할 '상설 시스템'이 없다는 게 문제"라며 "갈등이 터진 뒤에야 임시 방편을 찾는 구조를 바꾸려면, 국가 차원에서 인프라 정책을 통합 조정하고 사후 관리까지 책임지는 거버넌스를 법으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인프라 정책의 한계로는 무분별한 인프라 확보 경쟁, 수요예측의 한계, 인프라 노후화와 관리 부실, 생활SOC 지역 격차가 제시됐다. 공항 같은 대형 인프라는 지역 요구가 강하게 표출되는 반면, 경전철은 곳곳에서 건설되면서 수요와 적자 규모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등 수요예측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1970~1980년대 집중적으로 지어진 시설이 노후화 시점에 다가오는 상황에서, 큰돈이 들어가는 유지·보수 투자의 효율성 제고도 하나의 과제다.
진 본부장은 현행 인프라 체계에 대해 "계획은 많지만 각각 따로 움직이고, 조정은 예산이라는 도구를 통해 사후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민관 위원이 참여하더라도 실제로는 동의 수준에 머물러, 이를 민간 참여라고 말하기엔 한계가 있고, 공공이 사업을 집행하고 다시 스스로 평가하는 '선수-심판' 구조도 문제라는 것이다.
해외는 다소 다른 구조를 지닌다. 예컨대 호주는 법률에 따라 독립 기구를 두고 증거·데이터 기반으로 인프라 투자와 개혁 방향을 조언하며, 민간 위원이 중심이 돼 투자 우선순위를 목록화하고 대형 사업의 비즈니스 사례를 평가한다. 영국은 정부 조직과 구분되는 독립성을 강조하는 조직을 만들어 인프라 평가와 심층 연구, 이행 모니터링을 수행한다. 미국에선 미국토목학회(ASCE)가 4년 주기로 '인프라 리포트카드'를 내 각 지역·시설의 수준을 과감하게 공개해 투자 필요성을 이슈화한다.
한국에도 국가건축정책위원회, 물관리위원회, 정보통신전략위원회처럼 분야별 위원회가 있지만 인프라 전반을 통합 조정하는 조직은 없다. 업계에선 국토인프라 기본법의 핵심으로 대통령 직속 '국가인프라정책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토인프라 정책의 심의·조정, 개별 기본계획의 독립적 검토·자문, 사업 우선순위 심의와 사후평가, 국토인프라 평가, 표준과 성과 공개 등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국무총리와 민간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연 2회 정도 대통령 전략회의를 개최하되 분과를 별도로 두는 식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제안이 제시됐다.
진 본부장은 "20년 주기의 '국토인프라 정책 기본계획'을 세우고 5년마다 수립·갱신할 필요가 있다"며 "기본계획에는 수요·공급 전망, 투자 우선순위, 재정 시나리오, 승인·평가 절차, 데이터·표준, 지역균형과 기후·안전 목표 등을 포함해 개별 계획과의 정합성과 조정 원칙을 규정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












